증권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는 것은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증가에 활력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증권시장이 활황세를 보여 주가가 오르면 기업은 높은 가격에 주식을 발행하여 필요한 투자자금을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다. 그러면 기업투자가 증가하여 경제성장률을 높이게 된다. 한편,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들은 주가가 오른 만큼 이익을 벌 수 있다. 그러면 소득이 많아지면서 소비가 늘고, 늘어난 소비는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이렇게 하여 증권시장의 활황은 투자와 소비가 서로 맞물려 증가하는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구축한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오랜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으며 활력을 잃었다. 따라서 4% 수준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일자리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청년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 여기에 빈익빈부익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가계부채가 증가하면서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가구가 40%에 육박한다.
증권시장의 활황은 우리 경제가 성장 동력을 되찾고 도약을 가져오는 활력소로서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과연 최근의 증권시장 활황은 우리 경제에 이러한 순기능을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증권시장이 국부유출을 대거 유발하는 것은 물론 기업들을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게 만들고 많은 소액투자자들을 희생자로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 증권시장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외국인의 강한 매수세가 가장 큰 요인이다. 지난 해 11조원에 이르는 외국인의 순매수가 올 들어도 4조원 가까이 이른다. 2006년 전세계경제성장률이 5.4%로 1980년대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이를 배경으로 풍부한 유동자금이 전 세계 증권시장을 가열시키고 있다. 2003년 이후 3년간 중국증시는 170%, 러시아증시는 360%, 미국증시는 70%, 일본증시는 105% 등이 각각 올랐다. 이러한 증권시장 열풍 속에서 우리나라 증권시장에도 외국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160%의 오름세를 보인 것이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 끝에 경영구조가 건실한 기업들의 주식이 주로 거래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기업들의 주가가 아직 국제적 기준에 따르면 저평가되어 있다.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비율(PER)이 12배 수준으로 미국의 19배, 일본의 20배, 독일의 16배등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다. 여기에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이 완전 개방단계에 이르러 외국자본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이 높은 대기업들 주식을 중심으로 외국자본매수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한편, 내부적으로 경기가 기지개를 펴며 기업실적이 호전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한국개발연구원은 1분기에 4%를 기록한 경제성장률이 2분기에는 4.4%로 올라갈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분위기속에 부동산 시장의 안정세로 인해 갈 곳이 없는 600조원의 부동자금이 증권시장으로 방향을 돌려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해외부동자금과 국내부동자금이 함께 유입되면서 증권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증권시장 활황은 산업자본을 공급하여 기업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기능과는 거리가 멀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외국자본지분이 50%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경영권 위협이나 적대적 인수합병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성장을 위한 투자 증가보다는 자사주 취득이나 배당금지급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5년간 증권시장에서 기업공개나 유상증자를 통해 기업들이 신규조달한 자금은 30조 7천억 원 수준이다. 이에 반해 기업들의 자사주취득은 22조 2천억 원, 현금배당은 47조 4천억 원으로 증권시장에 돌려준 자금이 69조 6천억 원에 이른다. 증권시장이 활황세를 보여도 투자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자본을 되돌려주는 자금역류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주가가 상승할 경우 경영권보호를 위해 자사주매입을 위해 투입해야하는 자금이 늘어 기업들의 부담이 커진다. 또한 특히 단기이익의 실현을 주요목적으로 하는 외국자본들의 압력이 거세어 현금배당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주가상승이 기업 투자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증권시장의 본연의 기능을 극도로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 증권시장이 활황세를 보여도 개인투자자들은 돈을 번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돈을 빼앗기는 봉 노릇을 한다. 증권선물거래소가 2001년 이후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에 대해 외국인, 기관, 개인별로 월 평균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개인이 외국인과 기관을 앞선 적은 한 번도 없다. 조사대상 76개월 중 74개월은 꼴찌였다. 특히 손실을 기록한 달이 59개월에 달했다. 반면, 외국인은 꼴찌를 한 적이 없다. 평균수익률이 1등인 횟수가 43회, 2등인 횟수가 33회이며 손실을 본 횟수는 14회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의 접근성과 분석능력이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들이 장세를 주도하며 가격을 올려놓으면 나중에 매수에 나서 결국 외국인들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시장이 기업들의 실적을 투자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해주는 역할 대신 개인투자가들의 부를 외국인들에게 이전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재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시가총액 중 외국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나 된다. 이들 외국자본은 우리경제를 이끄는 주요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의 지분을 집중 매입하여 시장을 좌지우지하며 수시로 대규모 이익을 취한다. 한마디로 외국자본의 잔칫상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증권시장의 양대 기능인 산업자본공급과 기업이익의 공정한 분배는 사실상 발휘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형태로 증권시장이 계속 활황세를 이어갈 경우 경제는 활력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생명력을 잃게 하는 역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증권시장이 건강을 잃은 경제에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번 증권시장의 활황세는 고성장률과 풍부한 유동성이 뒷받침 되는 세계적 흐름과 함께 나타나는 동조현상이라는 측면에서 대세상승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장세를 낙관할 수 없다. 이번 세계 증권시장 상승세를 주도하며 주식 거래대금규모 세계 2위로 올라섰다.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긴축정책 등으로 중국 증권시장이 조정을 겪으면 세계증권시장이 흔들리면서 우리나라 증권시장도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증권가격 상승에는 뚜렷한 재료가 없다. 기업환경이 개선되어 투자가 늘거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획기적인 기술개발이나 신산업발전은 더욱 눈에 띄지 않는다. 큰 폭의 조정이 얼마든지 가능한 장세이다. 증권시장이 흔들릴 경우 기업들의 산업투자위축은 더욱 심화되고 투자자들은 외국인과 개인들 사이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앞으로 증권시장의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 개선책이 필요하다. 이런 견지에서 우선 기업들의 경영권 보호정책이 요구된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과도한 개방정책으로 인해 소유권이 대거 외국자본으로 넘어갔다. 언제든지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는 불안한 상태이다. 따라서 차등의결권제도 등을 도입하여 국내기업과 금융기관에 불리한 적대적 인수나 합병의 방어장치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S&P 500 대기업 중 93.6%가 경영권 보호장치가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어있다. 여기에 기업규제를 최소화하여 증권시장을 이용하여 산업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적극적으로 조성하여야 한다. 한편, 금융기관들은 증권 투자와 위험관리이론과 기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금융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해야한다. 투자자들은 추격매수나 매도를 자제하면서 증권시장의 활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자제와 지혜가 필요하다. 외국인 투자에 휘둘리지 않고 성숙한 장기투자 자세로 시장을 자생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 통과 등 증권시장관련법과 제도개선을 서둘러 증권시장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출처:정경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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