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5일로 딱 귀향 6개월을 맞았다. 퇴임 전 지지율이 30%를 넘지 못하던 노 전 대통령의 인기는 퇴임 후에는 오히려 그 주가가 치솟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노간지’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상종가다. 노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벌써 6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한 달에 10만명, 한주에 적어도 2만 5천명 이상이 다녀갔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6개월간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도 있었지만 퇴임 후 그가 고향에서 가진 행보들은 국민들에게 친근감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처럼 평온한 봉하마을에 조만간 사정폭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이 사정기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정상문 전 비서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이미 조사가 시작된 지 오래다. 현 정권은 촛불 정국과 올림픽이 마무리된 만큼 조만간 사정작업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지난 6개월의 행적과 조만간 불어닥칠 사정폭풍의 내막을 취재했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에서도 바쁘게 지내고 있다. 매일 방문객을 맞다가 한 때 가벼운 몸살을 앓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4월부터 매주 월요일은 방문객을 만나지 않고 쉰다. 하루 서너 차례, 많게는 아홉 차례까지 사저를 나와 방문객들 앞에 선다. 학생들이 단체로 봉하마을에 수학여행을 오기도 한다. 외국인들도 노 전 대통령을 찾고 있다. 알제리 전 외무장관이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을 예방했으며, 지난 13일에는 중국 하얼빈공대 부속고등학교 학생들이 찾기도 했다. 최근 20대가 선택한 대중문화 전반의 핫 아이콘을 선발해 상을 주는 '제2회 Mnet 20's 초이스 컴백스타 부문'에서 노 전 대통령은 1위를 차지했다. 김국진·신애·박미선·박찬호 등 스타들을 누르고 1위에 오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하기 전 봉하마을은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노 전 대통령은 귀향 직후인 지난 3월 6일 장화를 신고 봉하마을 하천에 들어가 갈고리로 쓰레기를 건져내는 작업을 벌였다. 전직 대통령이 쓰레기 줍기에 나서는 모습은 우리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비친 것이어서 더 관심을 끌었다. 봉하마을 앞 들녘에는 지금 오리가 농사를 짓고 있다. 경남권에 AI가 발생해 한때 오리농법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봉하마을 사람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오리를 논에 풀었다. 가을에는 다 자란 오리는 '봉하마을 전통 테마식당'에서 음식으로 제공하고, 무공해 쌀도 생산할 예정이다.
전직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뒤에도 많은 곳을 다녔다. 서울만 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부산 민주공원과 5·18묘지를 찾아 민주영령들에게 '대통령 퇴임 보고'를 했으며, 진주에서 열린 산림박물관을 찾고, 함평 나비축제 행사장을 찾기도 했다. 이창동 전 장관 등과 함께 밀양 연극촌을 찾기도 했으며, 지난 여름에는 강원도에서 휴가를 보냈다. 진주시 집현면의 우수 조림지, 야생화 군락지와 희귀한 연꽃밭이 있는 양산 통도사 서운암, 김해 생림면의 장군차밭인 선곡다원 등도 그의 발자국이 찍힌 곳이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여러 활동과 행동이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마을 가게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라든지, 개량한복을 입고 방문객을 맞는 모습, 지난 7월 강원도 초원에서 썰매를 타다 넘어지는 장면도 많은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자전거 타는 전직 대통령 모습도 그는 보여주었다. 때로는 비서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마을과 논길 산책에 나서기도 하는데, 방문객들을 만나면 내려 악수를 하거나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노 전 대통령은 낙동강을 개선하기 위한 모임인 사단법인 '맑은물사랑사람들'(상임대표 이봉수) 고문직을 수락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으로 시민사회단체 고문을 맡은 것이어서 더 관심을 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11일 김해한우농가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 오찬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온 나라가 촛불시위로 뜨거울 때, 한나라당은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열었다. 한나라당은 미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시식회를 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한우를 찾아 대조를 보여 누리꾼들로부터 관심을 끌기도. 봉하마을 방문객이 많다보니 부작용도 생겨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내지 봉하마을의 단체를 사칭한 단체들이 생겨난 것이다. 한때 경찰이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정치현안 발언 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요즘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발언하고 있다.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노사모 정기총회에 참석했던 그는 연설을 통해 "촛불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정연주 KBS 사장의 배임 논란이 불거지자 노 전 대통령은 '즉석 강연'을 통해 "정연주 사장이 배임을 했다는 것은 해괴한 논리"라 하고, "감사원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건국절 제정 논란과 관련해 그는 "건국은 광복에 따라오는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관련 발언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웹사이트 '민주주의 2.0'에 관심이 높다. 이 사이트를 통해 시민민주주의 발전 차원에서 건전한 토론문화를 이끈다는 목표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이 사이트 기획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6개월을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친노(親盧)'라는 정치세력과 지지기반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김해 을'에서 최철국 의원(민주당)이 재선에 성공했는데, 노 전 대통령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6월 실시된 남해군수 보궐선거에서는 참여정부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홍보담당관을 지낸 정현태 군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30여 명이 25일 남해에서 모임을 갖고, 다음 날 봉하마을을 인사차 방문하기로 해 관심이 높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정치 세력화의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참여정부 참모진과 노 전 대통령 측은 "순수한 모임이며 인사"라고 밝히고 있다.
사정바람부나
이렇듯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6개월간은 비교적 평온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조만간 봉하마을이 시끄러워질 가능성이 높다. 사정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조만간 노 전 대통령의 측근과 후원자 등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펼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세청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회사 측은 정기적인 세무조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정기관에서는 지난 2006년 태광실업의 휴켐스 매입과정에서 불거진 농협의 헐값매각 의혹으로까지 조사가 확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화살은 박 회장만이 아닌 정대근 전 농협 회장으로 향할 가능성도 높다. 또한 현 정권이 박연차 회장 소유의 사업체에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고도 볼 수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전·현 정권 간의 정면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청와대 행정관이 특정 업체가 대형공사를 수주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5일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실세에게 청탁해 대형공사를 수주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건설사로부터 9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서 모 씨(55)를 구속했다. 경찰은 수주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이 개입했다는 서 씨의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어서 권력형 로비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특히 경찰에서는 전 정권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는 만큼 총력을 기울여 수사에 나서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8년 후배이자 후원회 사무국장 및 비서를 지낸 홍씨는 1996년 12월부터 노 전 대통령이 사실상 인수했던 장수천 대표를 맡았으나 이 회사의 빚 변제와 매각 과정에서의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홍 씨는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수송담당 행정관(3급)으로 발탁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정상문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과 동기로 2003년부터 5년간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청와대의 안살림을 책임졌고, 사석에서 서로 말을 놓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1978년 지방직 7급 공무원으로 관계에 입문해 2002년 서울시 감사담당관을 지낸 정씨는 참여정부 말기 S해운 이사였던 전 사위 이모 씨(구속기소)로부터 여행용 트렁크에 담긴 현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정씨는 이 밖에도 국가기록원의 고발로 노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에 관여한 혐의에 관해 검찰로부터 별도로 수사를 받고 있는 처지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위의 두 사건의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노 전 대통령이 곤혹스런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승부사적 기질의 노 전 대통령이 이대로 밀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최근 들어 친노세렵이 결집하고 있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가을바람과 함께 불어올 사정바람으로 신구권력이 대충돌은 불가피하게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