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이 참여정부 권력형 비리로 확전될 경우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진이 대형공사 입찰과정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이른바 ‘건설비리’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및 홍경태 전 총무행정관(수송담당 3급)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건설사 등으로부터 거액을 챙긴 브로커 서 아무개 씨를 구속한 데 이어 8월 28일 정 전 비서관을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은 서 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연루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쥔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홍 전 행정관이 8월 23일 ‘도피성’ 해외 출국을 한 것으로 밝혀져 수사에 적잖은 차질이 예상되고 있지만 경찰은 검찰 등 사정당국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이번 사건을 철저히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특히 사정당국은 홍 전 행정관이 청탁 대가로 노 전 대통령이 연대보증한 ‘장수천’ 채무를 탕감 받은 혐의가 있고 한국토지공사와 대우건설 등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비리 사건으로 국한되지 않고 ‘참여정부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이 크고 나아가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초기에 불거진 ‘장수천’ 사건으로 적잖은 곤욕을 치른 바 있는 노 전 대통령이 장수천 문제가 건설비리 사건과 연계되면서 또 다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정 씨와 홍 씨가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건설비리 사건은 S 건설 장 아무개 대표의 제보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제보를 접수한 경찰은 8월 22일 브로커 서 아무개 씨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다음날(23일) 서 씨가 강남경찰서에 구속·수감되면서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경찰에 따르면 서 씨는 S 건설이 토지공사와 대우건설 등의 공사를 하청 받을 수 있게 해주고 10여 차례에 걸쳐 9억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서 씨는 이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참여정부 실세로 통했던 정 씨와 홍 씨와의 친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서 씨와 홍 씨는 10여 년 넘게 인연을 맺어 오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홍 씨가 노 전 대통령이 투자한 생수업체인 ‘장수천’ 대표로 재직할 당시 생수 자동화 설비기계 업체를 운영하던 서 씨가 장수천에 기계를 납품하면서 알게 돼 이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서 씨에 대한 경찰 조사 과정에서 홍 씨의 범죄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비리 차원이 아닌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나아가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 일고 있다.
실제로 홍 씨는 서 씨가 S 건설이 2005년 부산 신항만 공사와 2006년 영덕~오산 간 도로공사와 관련해 일부 공사를 하청 받도록 해달라며 토지공사와 대우건설 관계자들에게 청탁하는 과정에서 만남을 주선하거나 전화로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홍 씨는 또 도로공사 부정입찰 의혹의 또 다른 핵심 인물로 지목받고 있는 정상문 씨와 서 씨를 연결시켜주는 매개 역할을 한 의혹도 사고 있다.
경찰은 8월 20일 체포한 서 씨로부터 홍 씨가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즉각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결국 홍 씨의 해외출국을 막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홍 씨가 21일 통화에서는 매우 신사적인 태도로 ‘곧 출석하겠다’고 답했고 22일 통화에서는 ‘월요일(25일)에 가겠다’고 약속해 기다렸다”고 해명했다. 주요 범죄 피의자의 경우 소환통보와 동시에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게 수사 관행임에도 경찰은 홍 씨의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그가 해외로 떠난 후 뒤늦게 출금을 요청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쥔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홍 씨의 출국으로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하지만 법무부와 검찰 등 사정당국과의 긴밀한 협력체제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특히 경찰은 정 씨와 홍 씨가 청와대 재직 시절에 서 씨와 청와대에서 만난 사실을 확인하고 회동 빈도 및 만남 목적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또한 8월 28일 공사 수주와 관련해 토지공사 김 아무개 전 사장에게 청탁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진 정 씨와, 청와대 참모진의 외압을 받고 특정업체가 대형건설공사 수주를 받을 수 있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대우건설 박 아무개 전 사장을 잇달아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8월 28일 오후 4시께 경찰에 자진출두한 정 씨는 이날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도 “홍 씨와 함께 서 씨를 같이 만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또 “토지공사 김 아무개 전 사장에게 내가 먼저 전화를 건 적은 없다. 김 전 사장에게 전화가 와서 이야기를 하던 중 김 전 사장에게 ‘서 씨를 한번 만나보라’고 이야기를 한 것 같은 기억이 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
건설공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홍경태 전 총무행정관(왼쪽)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
사정당국도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홍 씨가 청탁 대가로 노 전 대통령이 연대보증한 ‘장수천’ 채무를 탕감 받았다는 진술이 확보된 상태고 토지공사와 대우건설 등도 이번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수천 납품과정에서 홍 씨로부터 5억 원을 받지 못해 현금보관증으로 대신 받았는데 이 보관증에 연대보증인으로 노 전 대통령도 들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는 경찰의 요청이 있을 경우 출국한 홍 씨의 신병 확보를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서 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 기한(10일)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사건이 송치될 경우 본격적으로 관련 혐의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선 경찰은 8월 29일 박 아무개 전 대우건설 사장과 신 아무개 상무에 대해 입찰방해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박 전 사장과 신 상무(당시 부장)는 2005년 말 홍 씨의 부탁을 받고 서 씨를 만나 부산 신항만 공사의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의 입찰가를 보여주는 수법으로 S 건설이 최저가를 제시해 낙찰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박 전 사장은 경찰 조사에서 “신 상무에게 서 씨를 도와주라고 했지만 사장실에 사람이 많이 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 말이었지 구체적인 지시는 아니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와 관련, 대검의 한 관계자는 8월 28일 기자와 만나 “건설비리 사건이 단순한 개인비리가 아닌 참여정부 게이트 사건으로 확전되고 있는 만큼 검찰이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핵심 참모진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먼저 나서는 것보다 경찰 수사를 지켜본 뒤 사건이 넘어오면 경찰과 연계해 수사진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이 참여정부 권력형 비리로 확전될 경우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 장수천 문제가 연계돼 있고 건설수주 과정에서 서 씨가 S 건설로부터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사례비 명목으로 2억 3000여만 원을 받아갔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게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따라서 홍 씨가 청탁 대가로 장수천 빚 5억 원을 탕감받은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인지’ 했는지 여부와 서 씨가 S 건설로부터 받은 9억여 원 중 일부가 당시 청와대 참모진이나 여권 실세에게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는 이번 사건의 향배를 가늠하는 또 다른 핵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8년 후배인 홍 씨는 노 전 대통령 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2002년 대선 때는 선대위 국민참여운동본부와 함께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후원금을 조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선대위 주변에선 홍 씨가 노 전 대통령의 숨은 살림꾼이자 보이지 않은 실세로 통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홍 씨가 노 전 대통령이 야인시절에 벌였던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을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도 관리했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96년 장수천을 인수한 후 첫 대표이사 자리를 홍 씨에게 맡겼다는 사실도 두 사람의 각별한 신뢰관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홍 씨는 또 ‘썬앤문 게이트’의 핵심인 문병욱 씨로부터 ‘노 대통령에게 세배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고 2003년 1월 4일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 전 대통령 부부와의 명륜동 자택 점심 자리를 주선할 정도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6월 보은·정실 인사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홍 씨를 청와대 총무행정관으로 임명한 것도 두 사람의 끈끈한 인연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홍 씨는 이후 2년 6개월가량 청와대에서 근무한 뒤 2006년 말 소리소문 없이 청와대에서 물러났다. 당시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홍 씨가 사직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관련해 갖가지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도 보호할 수 없는 대형 비리사건에 홍 씨가 연루된 게 아니냐는 등 미확인 소문이 떠돌았던 것.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건설비리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2005년 10월부터 2006년 7월 사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홍 씨의 근무 기간과 건설비리 사건 발생, 명확치 않은 홍 씨의 사임 이유와 사임 시점 등을 종합해볼 때 당시 정보기관 주변에서 나돌았던 소문이 터무니없는 낭설에 그칠 것 같지 않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당시 청와대 핵심부가 정 씨와 홍 씨가 건설비리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인지하고 파문 차단 차원에서 홍 씨를 조용히 물러나게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또한 만약 홍 씨가 장수천 빚과 연계된 건설비리 문제 때문에 물러난 것이라면 노 전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 든 홍 씨 문제를 보고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섣부른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건설비리 사건이 참여정부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전되면서 그 불똥이 자칫 노 전 대통령에게 향할 수도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한 ‘친노’ 인사는 홍 씨 등의 비리 혐의에 대해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의혹이 연계되는 데 대해선 “의도성이 있는 정치적 음해”라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홍 씨의 도피성 출국으로 수사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검·경의 칼끝이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지 사정당국 움직임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