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journal정치

이명박 정부 중국에 붙을까, 미국에 붙을까.. "숙제는 어려워"

이경희330 2008. 9. 2. 00:02

3차 한중정상회담의 지정학적 의미
중국에 붙을까, 미국에 붙을까.. "숙제는 어려워"

25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보다 외견상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한국측은 대만 문제 관련, 2008년 5월 한중 공동성명에서 밝힌 입장을 재천명하고,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계속 견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미 전략동맹'과 상당한 긴장관계에 있다. 전략동맹의 핵심에는 한미동맹이 중국을 견제한다는 내용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한중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킴으로써 한미 전략동맹을 견제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한미 전략동맹이 '하나의 중국' 정책과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숙제를 안게 되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을 타야하는 숙제는 쉽지 않은 문제다. 미국이 2003년부터 한미동맹 재편을 본격 추진하고 이명박 정부가 제안한 전략동맹을 적극 수용한 데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 특히 양안사태(중국과 대만의 충돌) 발생시 주한미군 투입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을 중국견제용으로 재편하려는 미국'과 '미국 주도의 중국포위망을 무력화시키려는 중국' 사이의 힘겨루기에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 문제가 한미 양국이 건설적인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21세기 동맹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며, 21세기 한미관계를 전략동맹으로 격상한 핵심적인 이유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참모진은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한 미국 전문가들에게 중국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피력하면서 한미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필요를 제기했다.
그러자 중국은 발끈하고 나섰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이 대통령의 방중 기간인 5월 하순,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라며 "시대가 많이 변하고 동북아 각국의 상황도 크게 변한 만큼 낡은 사고로 세계 또는 각 지역이 당면한 문제를 다루고 처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전략동맹에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이 발언에 대해 논란이 일자, 중국 외교부는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거듭 확인하기도 했다.

힘 빠진 미국, 힘 커진 중국

일단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는 중국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친 중국은 자신의 부상이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외교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올림픽 폐막 직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한 것 역시 미국 편향으로 기울어진 이명박 정부를 끌어안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미국이 동북아에 힘을 집중하기는 당분간 불가능해졌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은 현재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이다. 이란 핵문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도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고, '테러와의 전쟁'의 핵심적인 파트너였던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의 퇴진으로 '테러와의 전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냉전시대 라이벌이었던 러시아의 귀환은 미국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와 관련해 미국은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황이고, 동유럽 미사일방어체제(MD) 배치 계획 강행 및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로 유럽에서는 '냉전의 부활'이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유라시아의 동쪽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21세기 전략적 중심축'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봉쇄하겠다던 미국의 21세기 전략에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더구나 부시의 레임덕과 미국 대선, 그리고 차기 미국 정부의 구성과 정책 재검토 시간을 고려하면, 앞으로 1년간 미국이 동북아에서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의 공백기를 이용해 북한·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 등 전통적인 우방국들과는 미국 주도의 대중국 봉쇄정책의 부활에 대비해 관계를 돈독히 하는 한편, 한국·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 이들 나라가 미국으로 편중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아울러야 '샌드위치' 벗어난다

유라시아 지정학의 권력이동과 세력재편은 한국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세계질서의 변화와 재편을 정확하게 꿰뚫어보지 못하고 '한미동맹' 혹은 '한미일 삼각체제'라는 과거의 관성에 얽매여 있을 경우, 냉전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유럽의 오늘이 동북아의 내일이 될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있는 한국이 최대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탈미친중이 대안이 될 수도 없다. 미국이 비록 힘이 빠져 있지만, 앞으로 상당기간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반면 중국식 체제는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와 여전히 거리가 멀고, 애국주의 열풍 속에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추구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하기도 어렵다. 
대안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 한국이 '미국에 붙었다가, 중국에 붙었다가' 하는 기회주의적 양자택일의 모습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비전을 가지고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다자외교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는 6자회담 공동성명에도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동의 기반은 이미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만이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 동북아에서 전략적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를 위한 기본전제는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이다.

<본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칼럼입니다.>

sundayjournal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