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6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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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남다른 애증(愛憎)의 감정을 갖고 있다. 그는 내가 1965년 기자가 된 후 처음 겪은 대통령선거(1971년)에서 야당의 후보였고, 나는 그의 선거유세를 취재하며 전국을 누비는 ‘야당기자’의 영예(?)를 얻었다. 말하자면 나는 그의 정치투쟁을 통해 권력을 비판하는 안목과 체질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그와 한자(漢字)까지 똑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도 결코 작은 인연은 아닐 것이다. 그의 지금 이름은 원래 김대중(金大仲)에서 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1961년인가 강원도 인제에서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까지는 이름 끝자가 中(가운데 중)이 아니라 仲(버금 중)이었고 이름을 바꾼 후에 당선됐기에 이름에 관한 한 내 이름이 더 오리지널(?)이다. 옛 정치인들은 다 아는 얘기다.
나중에 기자들이 동명(同名)으로 누가 득(得)을 봤느냐는 우문을 던졌을 때 그는 “내가 정치활동을 할 때는 기자 김대중이 내 덕을 봤을 테고 내가 정쟁법에 묶여 정치활동을 못했을 때는 내가 김 기자의 덕을 봤겠지”라고 재치있게 답을 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이름이 정쟁법으로 인해 신문지면에서 사라졌을 때 신문에 난 나의 이름은 그의 존재를 되살려 주었음 직하다. 어떤 사람은 “그가 정치를 그만두고 기자가 됐나 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나는 김 전 대통령에게 이유 없이 호의적인 기사는 쓰지 않았다. 말하자면 ‘DJ 기자’는 아니었던 셈이다. 1980년 ‘정치의 봄’ 대선 때 관훈클럽 청문회에서 “김 후보는 선거에 나올 때마다 제출한 이력서에서 왜 매년 최종학력이 다르게 돼있는가?”라는 질문을 해 그를 당혹하게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김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언론인(나를 포함해서)들을 결코 멀리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역시 금도(襟度)를 지닌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금도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인 그는 조선일보 주필인 나를 두 번 청와대로 불러 독대했다. 한 번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나중에 알았지만) 전이었고 또 한 번은 회담 후였다. 앞서는 조선일보가 당신의 햇볕정책에 찬성하고 지지해줄 것을 당부하는 자리였고 나중의 것은 북한 김정일의 답방을 방해하는 글을 쓰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전후는 기억에 없지만 당시 조선일보 사설은 김정일의 답방은 약속한 것이기에 실행돼야 하지만, 답방 시 그는 6·25전쟁, 1·21사태, 울진공비침투사건, 아웅산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에 대한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부터 DJ는 조선일보와 비판신문에 전방위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DJ정권은 마침내 조선일보 측에 몇몇 필진을 교체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디어 세무조사의 칼을 뽑아들었다.
지금 와서 새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조선일보와 나의 수난사를 들먹이자는 것이 아니다. 근자에 들어 대북관계에서 무소불위로 개입하고 나서는 김 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북한에 대한 아집에 가까운 그의 집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DJ는 사실 1970년대부터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대북문제, 구체적으로는 통일문제에 그의 정치적 역량의 전부를 걸다시피 했다. 그의 햇볕노선에 동의하느냐, 그의 대북정책이 온전한 것이냐의 판단과는 별개의 문제로였다. 그는 자나깨나 ‘통일대통령’으로서의 역사적 업적에 몰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도 바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자신이 “몸소 통일을 실행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정치인으로서 또 분단국가의 지도자로서 분단을 해소하고 나라가 통일되는 것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그러나 분단의 해소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북한이라는 상대가 개재되는 일이다. 따라서 노력과 희생과 열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된다.
DJ의 문제는 바로 물불 안 가리는 ‘대북 올인’에 있다. 그는 통일을 지향하는 일에 이성적으로 헌신하는 선을 넘어 그 일에 스스로 포로가 된 느낌이다. 남북문제에 관한 한 자신이 챔피언이며, 그 문제에 관한 한 어떤 발언을 해도 어떤 불법을 해도 면책되는 만고불변의 ‘통일지상주의’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현직 대통령이 “당신의 시대는 지났고 나의 문제입니다”라는 식의 사인을 보내도, 그리고 자신이 만들고 키운 정당이 자신의 대북노선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해서 가차없이 차버리는 배반의 정치도 아랑곳하지 않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통일의 꿈을 안고 그것을 이 시대의 담론으로 이끌어온 공로가 있다면 이제 그는 그 꿈에 대한 아집과 분수 없음으로 인해 민주화에 기여한 정치인으로서의 명성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주역으로서의 영예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사람들은 때로 TV에서 김 전 대통령이 많이 늙었음을 본다. 늙었으면 뒤로 물러나 앉는 것이 인간만사의 순리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가리지 못하는 것은 그가 늙었음을 방증한다. 그것을 어기고, 보기에도 불편한 몸으로 여기저기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는 모습은 안쓰럽다 못해 고개를 돌리게 한다. 그리고 그의 대책없는 훈수는 그의 모습만큼이나 비틀거려 보인다. 이제까지 한 그의 열정과 노력을 헛되이 무산시킬 정도다. 김 대통령님, 이쯤에서 물러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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