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대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한나라당 경선이 8월 20일 막을 내린다. 지난 6월 11일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후보 등록으로 70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던 한나라당 경선은 7월 21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 이후 13차례의 합동연설회와 4차례의 TV 토론, 한 차례의 검증청문회를 거쳤다. 지난 5월부터 정책 토론회도 4차례나 가졌다.
이번 경선은 대의원·당원·일반국민이 참여한 23만여명의 선거인단(여론조사 포함)이 참여하는 매머드급 경선이었다. 2002년 대선의 경우 한나라당 경선 선거인단은 4만5000명 수준이었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는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의 사생결단식 네거티브 선거전이 거의 매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후보를 둘러싼 10여건의 고소·고발전도 펼쳐졌다. 야당 역사상 최초의 ‘진짜 경선’이라고 평가받는 한나라당 경선은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당 안팎의 관계자와 전문가 6명으로부터 의견을 들어봤다.
-
“후보 자질·정책 검증 기회
경선일정 예측 가능하게 룰 정해야” 김일영 교수 _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YS·DJ의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이후 야당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경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회창 후보 때도 그랬지만, 일방적으로 한쪽이 앞서가는 재미없는 경선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경선은 재미있고 유권자의 관심을 끌었다.
경선 과정을 통해 후보의 개인적 비리와 자질 문제를 사전에 거른 측면도 있었다. 반면 경선이 정책과 비전 제시로 흐르지 못한 것은 문제다. 폭로와 네거티브 선거가 주가 된 것은 아쉽다. 유권자들의 관심도 네거티브에만 집중됐다.
경선 일정도 비정상적이다. 한나라당은 당초 6월에 경선을 치르기로 했다가 후보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경선을 늦췄지만 여야를 불문하고 비슷한 일정을 밟아 8월 말이면 후보가 결정돼 있는 게 상식적이다. 예측 가능한 경선 룰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하지만 법으로 정당의 경선을 일일이 규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이인제 방지법’도 엄밀히 따지면 위헌 요소가 있다.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통해 경선 룰이 자연스럽게 제도화돼야 한다.
여론조사를 경선에 도입하는 것도 바뀌어야 한다. 진성당원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여론조사를 도입한 고충과 취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론조사의 오차와 조작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여론조사 결과를 경선에 반영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것도 우리나라만의 기형적인 경선 룰이다.
승자와 패자를 포함해 한나라당은 경선 이후 혁신을 해야 한다. ‘화합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나 화합의 모습만 보여준다고 한나라당이 본선에서 이길 수 없다. 이번 대선도 30만~40만표 차의 승부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끌어올 수 있도록 당의 체질과 콘텐츠를 혁신해야 한다.
-
“국민 여론조사 결과 도입하는 것은 ‘정당정치’ 본질 훼손하는 것”
이상일 _ TN소프레스 이사
2007년 대선의 전반전은 한나라당 경선을 위한 무대였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정당이,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보유한 정당이 이탈과 분열 없이 경선을 치러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경선의 규칙을 정하는 과정부터 마지막 경선 투표까지 토론과 합의의 절차를 거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인물 중심으로 정당이 재편되고 선거구도가 바뀌던 풍토가 ‘경선’이라는 틀을 통해 정당 중심의 선거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이번 한나라당 경선을 통해 한 단계 더 진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 경선은 내용 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국정수행능력이나 비전 같은 정치적 자산의 대결이 아니라 ‘도덕성 공방을 내세운 네거티브 설전과 여론조사 방식의 득실계산’ 같은 낮은 수준의 전투가 주종이었기 때문이다.
제도적 측면에서도 개선되어야 할 과제를 남겼다. 대의원·당원 중심의 당심(黨心)과 함께 국민 전체의 민심을 비중 있게 반영한 시도는 좋았지만 국민 선거인단 구성의 적절성과 타당성, 그리고 여론조사 지지율의 득표수 환산방식은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여론의 지지·선호만 받으면 누구든 공당의 주요 선거 후보로 선출될 수 있고 그것이 적법한 절차로 인정된다면 결국 ‘정당정치’의 본원적 의미는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개월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나라당 경선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오월동주(吳越同舟)의 대혈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오월동주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뜻도 있지만,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급한 상황에서는 서로 돕지 않을 수 없다’는 뜻도 담겨 있다. 패자를 끌어안지 못하는 경선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경선이 끝나는 순간, 승자와 패자 모두 ‘왜 경선을 치렀던가?’를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
"국민 관심 끌며 당에 활력 불어넣어 네거티브 게임, 지지율엔 부정적”
신지호 _ 자유주의연대 대표
한나라당 역사를 보면 이번 경선과 같은 다이내미즘을 찾기 힘들다. 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는 측면에서는 경선은 일정 부분 성공한 측면이 있다.
한나라당에는 지지율 1, 2위 후보가 있다는 게 행운이지만 행운의 패러독스도 분명 있다. 지지율 1, 2위 후보가 있음으로 해서 ‘예선의 본선화’라는 부정적 측면이 생겼다. 제살 깎아먹기식 이전투구가 경선 기간 내내 흠으로 작용했다. 경선의 다이내미즘이 포지티브 섬(positive sum) 게임으로 이어지면 최선이고 최소한 제로섬 게임은 됐어야 했는데 결과는 네거티브 섬 게임으로 끝났다. 경선이 오히려 한나라당이 얻을 수 있는 지지율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경선의 제도화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 어느 당을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은 본선 투표일 6개월 전에는 끝나야 한다. 경선 전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이 있었고,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결별 가능성이 계속 거론됐다. 범여권의 경우는 탈당과 창당을 반복하다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해프닝도 벌였다. 이런 정당정치의 불안정성을 극복해 경선의 제도화를 일궈나가야 한다.
한나라당은 경선 이후 혁신과 화합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과제를 등가치적으로 나열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혁신에 방점을 찍고 ‘혁신 속의 화합’을 이뤄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경선에서 나타난 네거티브적 요소를 극복할 수 있다. 무턱대고 미봉책으로 당의 화합을 이루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인적·이념적·정책적 변화를 이뤄나가야 한다.
-
“당원 자발적 참여로 한 단계 성숙 의원들 줄서기 없어져야”
최구식 의원 _ 당 경선관리위원회 대변인
한나라당 경선은 우리 정당사상 처음 해본 경선이었다. 2002년 민주당 경선의 경우 경선의 꼴은 갖췄지만 ‘DJ의 보이지 않는 손’ 등 권력의 막후 작용이 있었다는 의구심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경선은 진짜였다. 당의 힘이 온통 양 캠프에 가 있었고, 경선의 권위가 오직 선관위로부터만 나왔지만 당원의 자발적 참여와 자율 조정을 통해 경선을 치렀다. 당이 속 빈 강정 같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선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은 한나라당 소속원의 민주적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선을 통해 한나라당은 제대로 된 정당으로 한 단계 더 성숙했다.실제 경선 현장을 다녀본 결과 언론의 부정적 보도와는 달리 대체적으로 모범적 경선이었다고 평가할 만했다. 첫 제주합동연설회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 지지자 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선관위에서 바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합동연설회 등 경선 일정이 너무 많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픈된 공간에서 후보들이 모이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과열과 혼탁을 막을 수 있었다는 측면도 있다. 공식 선거 일정 대신 후보들이 각개약진하는 기회가 많았다면 문제가 더 많았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의원들의 줄서기 부분이다. 이명박·박근혜 후보는 양김씨 시대의 인물이 아니다. 줄서기와 줄세우기는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는다. 미국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의원들의 줄서기가 없다. 후보와 개인적 인연이 있는 몇몇 의원이 팀을 꾸려 도와줄 뿐이다. 나는 이번에 지역구 조직원에게 ‘각자 판단해서 찍으라’고 얘기했고 끝까지 이를 지켰다. 의원들이 줄서기를 하지 않았으면 당 중심의 선거가 됐을 것이다. 경선 게임에 몰두한 사람들은 후보 개인이 선거를 치르는 줄 알지만 대선은 당이 중심이 된 선거가 돼야 한다. 범여권의 경우 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집권세력이 흔들려 나라가 엉망이 된 게 아닌가. 경선 후 가장 중요한 과제는 패자의 승복이다.
-
“ ‘근친살인’식 싸움은 불행했지만 치열한 내부선거 의미 커”
전여옥 의원 _ 이명박 캠프 선대위 부위원장한나라당이 정권 교체를 위해 치열하게 내부 선거를 치렀다는 점을 평가하고 싶다. 야당이 이처럼 치열한 내부선거를 치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선은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우선 같은 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동지도 적에게 팔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과거 YS·DJ 때만 해도 서로의 치부를 낱낱이 알고 있었지만 금도를 지켰다. 한 정당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근친살인은 안 된다’는 정도의 금도는 지켰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이 불행한 정당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제도적 측면에서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다. 경선이 지나친 세(勢) 과시로 흐르고, 팬클럽 등 열성 지지자들이 설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책토론회 4번, 합동연설회 13번, TV 토론회 4번을 거쳤는데 이는 지나치게 많다. 정치적인 소모전이고 후보들 또한 이런 식의 경선을 치르면 본선에서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차분하면서도 내실있는 정책토론에 집중하는 효율성 있는 경선을 치러야 한다.
앞으로 한나라당의 가장 큰 과제는 경선을 뛰었던 후보 4명이 양심을 걸고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일이다. “승리 후보를 돕겠다”고 선언하면 가장 좋지만 뒤에서 몽니를 부릴 바에는 “돕지 못하겠다”고 솔직히 밝히는 게 오히려 낫다. 정치적 허위를 벗어던지고 국민 앞에 경선 참여 후보들이 자신의 향후 진로와 입장을 당당하게 밝혔으면 좋겠다. 후보를 중심으로 당의 환골탈태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많은 유권자는 한나라당의 변화 없이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
“대권·당권 분리 등 일정부분 성공 기간 너무 길어 과열 부추겨”
최경환 의원 _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
한나라당 사상 가장 치열한 경선을 치렀다. 후보의 정책과 자질을 검증했고, 국민적 관심도 끌었다. 그런 점에서는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하지만 경선이 너무 오랫동안 지루하게 이어졌다는 점은 문제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한다는 혁신안이 관철된 것이 벌써 1년 반 전이다. 사실상의 경선 국면이 1년 반 동안 이어져온 셈이다. 당권·대권 분리의 취지는 좋았지만 너무 오래 경쟁을 하다 보니 선거 양상이 과열되고 후보 진영 간의 갈등을 과잉 노출했다. 국민에게는 지루함과 식상함을 안겨준 측면도 있다.
앞으로는 경선 일정을 타이트하게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여과 없이 검증할 수 있는 당내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번 경선의 경우 당내 검증기구가 오히려 실질적 검증을 가로막은 측면이 있다. 후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을 때 검증위에 맡겨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치열한 토론과 조사에 제약을 받았다.
경선 과정에서 네거티브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많았지만 네거티브는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것’이고 후보의 과거 행적과 도덕성, 정책에 대해서 정당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네거티브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선거 과정의 90%가 이런 문제에 집중된다. 국민의 최종 선택도 결국 이런 부분이 좌우한다. 경선 과정에서 실질적인 검증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경선 후에는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치유하는 게 급선무다. 당이 중심이 돼 힘을 모아 정권교체에 나설 수 있도록 갈등을 이른 시일 안에 치유해야 한다. 경선 승리 후보가 마음을 열고 포용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openjournal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박, 박근혜 敗者가 더 크게 이길 수 있는 날 (0) | 2007.08.19 |
---|---|
문국현, 킴벌리클락과 관계 정리 … 대선행보에 날개 (0) | 2007.08.19 |
김 대통령님, 이쯤에서 물러서십시오 (0) | 2007.08.19 |
李ㆍ朴의 ‘경선 승복’ 말 말 말 (0) | 2007.08.19 |
70%대 높은 투표율..누가 유리한가 (0) | 2007.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