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행보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 2008년 9월을 기점으로 활발하게 공개 행보를 시작하면서 이명박 정권을 ‘마케팅’하는 도우미로 활약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오늘의 이명박 대통령이 있기까지 김윤옥 여사의 보이지 않는 내조가 그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다고 본다. 또한 작고한 모친 채태원 여사가 이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면, 부인 김윤옥 여사는 현존하는 이 대통령의 ‘1급 비서’이자 ‘전략 참모’로서 손색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할 수 없을 때에는 부인인 김윤옥 여사를 찾아가라”는 말도 회자될 정도로 이 대통령에 대한 김 여사의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한다. 대통령을 위한 간식 만들기에서부터 중요한 정무적 조언까지, 김윤옥 여사의 안방마님 정치학을 살짝 들여다봤다.
김윤옥 여사는 청와대 입성 초기만 해도 ‘조용하게’ 지냈다. 사실 김 여사는 지난 3월부터 대단한 열정으로 대외 활동을 하고 싶어 했지만 총선과 촛불정국 등의 어지러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본인은 조용히 있는 게 돕는 길’이라고 판단해 바깥출입을 자제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김 여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정국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격려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권에선 “문화를 사랑하고 수줍음도 많은 편인 이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의 여성성이 있는 반면, 김 여사에게 남성적인 기질이 더 많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김 여사를 놓고 ‘눈물이 많고 소녀같이 여리다’는 평을 많이 하는데 그를 잘 아는 측근들은 하나같이 ‘강단이 있고 정치적 감각도 뛰어난 여자 대장부’라고 평가한다. 한 예를 들면, 김 여사가 지난 대선 과정 때 BBK 공방으로 온 방송이 이 문제를 보도하며 난리를 피웠는데도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일정을 무난하게 수행하는 것을 두고 주변에서 놀란 적이 있었다. 이런 ‘대범함’은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그룹 시절부터 주변에서 견제를 받는 가운데서도 초고속으로 성장하면서, 그와 동시에 20대에 대기업 이사 사모님이 된 김 여사도 같이 단련이 됐기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또한 김 여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막내동생 김재정 씨가 도곡동 땅 차명소유 의혹으로 검찰조사를 받는 등 친정식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도 “내가 후줄근하게 있으면 캠프 사람들이 힘 빠진다”라며 화사하게 옷을 차려 입고 캠프에 나와 농담도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던 적도 있었다.
김 여사의 이런 대범한 기질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정국을 넘어서고 경제 위기 극복에 ‘올인’하며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김 여사가 한 사석에서 이 대통령의 장점으로 ‘일취월장’을 꼽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김 여사는 이 대통령에 대해 “무슨 일을 하든지 초기에는 서툴지만 금세 익혀 실력이 늘어간다. 지난 대선 때도 이명박 후보의 연설 실력이 초기에는 엉망이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많이 나아졌더라”라고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권 출범 몇 달 뒤까지 조용하게 내조만 하던 김 여사였지만 청와대 안주인으로서의 ‘하키맘’(자녀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미국의 아줌마를 하는 말) 본능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지난 9월 청와대에 여기자들을 초청한 것을 시작으로 소리 없이 강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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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여사(왼쪽)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많은 정치적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은 대통령 후보 시절의 모습. | |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그룹의 한 관계자는 “김 여사가 겉으로는 옆집 아줌마 같은 편안하고 후덕한 인상이지만 정치인들이 그에게 한 번 찍히면 결코 재기하지 못한다는 섬뜩한 불문율도 있다”라고 말한다. 다음은 그가 전하는 김 여사의 정치력에 관한 일화.
지난해 대선 전 한나라당의 한 친이 의원이 당직을 놓고 중립성향의 아무개 의원과 치열한 물밑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김 여사가 이 친이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농담조’로 “이번에 그 아무개 의원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세요”라고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친이 의원은 김 여사가 ‘공·사석에서 유달리 엘리트 의식이 강하고 잘난 척하는 아무개 의원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해’ 그런 말을 했을 것으로 추측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그 친이 의원은 속으로 뜨끔했다고 전한다. 그는 김 여사의 ‘농담’을 웃으며 받아넘겼지만 속으로는 ‘김 여사가 모르는 것 같아도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소상하게 아는구나’라고 생각해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친이 의원은 결국 당직 경쟁에서 승리했다.
정가에선 김 여사가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직후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놓고 당 내분이 불거졌을 때 김 여사가 남편에게 그의 ‘사퇴’를 강하게 주장했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여권에서 “김 여사에게 밉보이면 ‘출세’는 생각하지도 말라”는 ‘불문율’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 여사가 남다른 정무적 감각을 지녔다는 평가도 내린다. 촛불정국으로 이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진보진영의 견제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김 여사는 당시 쇠고기 파동 때의 마음고생을 입덧에 비유하며 “이제 입덧은 거의 끝나 간다고 본다”라고 간단히 정리해 버려 청와대 정무진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한편 대구 출신인 김 여사는 정치권에 폭넓은 ‘자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대구·경북 출신인 검찰의 핵심 관계자 인사도 김 여사와의 친분을 배경으로 차기 검찰총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김 여사 스스로는 “집안의 야당 노릇을 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조의 선에서 그칠 것이라며 영향력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김윤옥 여사의 ‘장외정치’는 이명박 정권 내내 소리 없이 강한 울림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