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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 자진 사퇴하라"

이경희330 2008. 3. 11. 23:22

독재정권 연상케하는 안상수 원내대표 발언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11일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안상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통합민주당에 대해 11일 '국정파탄세력'이니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이니 하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서 비난했다. '주요 당직자회의'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국정 파트너'인 야당을 향해 이처럼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안 원내대표는 "국정파탄세력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분에 관해서 말씀드리겠다"고 운을 뗀 뒤에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들은 구 집권당인 다수야당 그리고 정부조직·권력기관·언론사·방송사·문화계·학계·시민단체 등 국가사회의 각계각층의 중요자리에 광범위하게 남아서 이명박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고 경제 살리기를 위한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조직법 개혁을 무산시켰고 국무위원 후보 흠집내기로 아직도 조각조차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방송 등 중요 자리에 각종 개혁 작업의 발목을 계속 잡고 있다. 지금도 방송통신위원장·국정원장의 인사청문회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에 이런 예는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추종세력으로서 아직도 국정의 발목을 잡고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은 정권을 교체시킨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그래서 하루빨리 그 자리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사퇴하는 것이 옳다. 만일 그들이 끝까지 국정의 발목을 잡고 사퇴하지 않을 경우 국민이 그들을 물러나게 할 것이다. 아울러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한나라당에게 주어서 국정의 발목을 잡는 세력을 엄중히 심판할 것이다."

 

두 가지 메시지 - 사퇴하라, 아니면 총선에서 표로 심판?

 

안 원내대표의 발언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는 구집권당인 다수당과 정부조직·권력기관·언론사·방송사·문화계·학계·시민단체 등의 요직에 광범위하게 포진한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은 사퇴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국민은 이번 총선에서 표로 심판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가운데 후자는 총선을 앞두고 집권당에 과반수 의석을 달라는 흔히 있는 정치 공세이지만, 전자는 그 뉘앙스가 다르다.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하루 빨리 그 자리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사퇴하는 것이 옳다"라고 공개적으로 사퇴를 종용하는 발언이다. 듣기에 따라서 독재정권에서나 들을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우선 그는 다수당과 정부조직·권력기관·언론사·방송사·문화계·학계·시민단체 등이라고 사퇴할 자리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정부조직'과 '권력기관' 말고는 집권당이 바뀌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언론사'와 '방송사'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이다. 그런데도 안 원내대표의 발언은 그 자리를 '자기 편'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문화계·학계·시민단체 등은 애당초 제도적으로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곳이다. 요컨대 그의 발언은 시민사회도 'MB 완장'을 찬 보수단체와 뉴라이트 일색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건강연대,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여성단체연합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5일 오전 청와대 입구인 서울 청운동사무소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논문 표절 및 중복게재·부동산투기·미국 국적 자녀 건강보험 부정수급·공금유용 등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이 장관후보자와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의 교체를 촉구했다.
ⓒ 권우성
김성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미 관가와 정가에서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얘기가 중론이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장(長)은 대체로 임기직이어서 새 정부가 출범해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새 대통령에 대한 부담을 덜어 준다는 차원에서 '용퇴'하는 게 관례였는데 이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국정운영에 '차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총선 민심과 '역풍'을 의식해 청와대가 이들에게 대놓고 나가라는 얘기는 못하지만 총선만 끝나면 대대적인 '인사태풍'이 불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예를 들어 <매일경제> 신문이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공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299개 공공기관장 임기를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공공기관 299개 중 최소 124곳 이상 기관장이 올해 안에 바뀐다. 이미 청와대와 정치권에선 ▲개별기관 경영평가 ▲개별기관장 성향 ▲여당 총선 낙선자 수에 따라 인사 향방이 정해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홧김'에 우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청와대와 상당한 '교감' 뒤에 나온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의 발언이 나온 '타이밍'이 미묘하기 때문이다.

 

검찰 간부 인사 직후에 나온 사퇴 종용 발언

 

우선 검사 출신인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검찰 간부 인사 다음 날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검찰 등 이른바 5대 사정기관을 영남인맥으로 도배한 것으로도 모자라 11일자로 단행한 검찰 간부 인사에서 김경한 법무장관을 포함한 검사장 이상 53명의 간부 가운데 11명을 경북고 출신으로 채웠다. 노태우 정부를 '검찰공화국'으로 부르게 했던 이른바 'TK 검찰의 부활'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과 이런저런 '악연'이 있는 검찰 간부들은 대부분 불이익을 받았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책을 유권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혐의로 이 대통령의 선거운동원을 기소한 박철준 서울중앙지검 1차장, 2003년 한나라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모금한 '세풍'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이승구 서울동부지검장 등이 사표를 냈으며,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수사를 지휘했던 박영관 전주지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좌천'됐다.

 

따라서 검사 출신의 안 원내대표로서는 정권이 바뀌면 자리가 바뀌는 검찰의 인사관행이 공기업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통'을 느낄 법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청와대가 공기업 감사에 착수하고 검찰이 주요 보직에 특수부 출신을 전진 배치해 공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보물 줍기' 발언 이후 영남 '공천 화약고' 터지기 전에 나온 발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자료사진).
ⓒ 이종호
대선잔금

또한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시기적으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이삭줍기 아닌 보물 줍기' 발언 이후에 한나라당 공천의 '화약고'인 서울 강남-영남지역 공천심사 발표 이전에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총재는 10일 기자회견에서 공천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 탈락자들을 '이삭'이 아닌 '보석'이라고 칭하면서 "보물을 줍는 마음으로 같이 참여하겠다는 원칙에는 변함 없다"고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또 이미 공천에서 탈락한 4선의 이규택 의원 등은 함께 탈락한 의원들과 함께 '무소속 연대'를 구성해 출마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약고'인 강남-영남 공천결과까지 나오면 한나라당은 걷잡을 수 없는 공천 후유증에 시달린 것이 뻔하다.

 

이들이 대거 선진당에 입당하거나 무소속 연대를 구성해 출마하면 이번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려는 한나라당 총선 전략은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들의 반발을 무마해 주저앉히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데 공천 탈락의 대가로는 '신이 내린 직장'으로 통하는 공기업만큼 좋은 게 없다.

 

결국 안 원내대표의 발언은 공천 탈락 반발세력을 겨냥한 '당근 전술'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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