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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각계에서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금융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올 들어 우리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등 대형 금융사의 수장을 꿰찬 ‘친 MB계’ 인사들과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금융권 실세들이 주목을 받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인지 이들의 성적표는 좋지 않다. 더구나 이런 저런 좋지 않은 소문도 들린다. ‘친 MB계 금융권 실세’들의 현주소를 조명했다.
지난 11월 13일 청와대는 “방문객 및 직원들이 이용하게 될 구내 입점 은행으로 농협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부터 벌인 청와대 입점 1호 은행 유치심사에서 농협과 경쟁을 벌여온 우리은행은 당초 유리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는지 상심이 더 커 보인다.
우리은행은 현 정부 들어 ‘친 MB계 금융실세의 산실’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6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이팔성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교향악단 대표를 지냈다. 이 회장에 앞서 박병원 현 청와대 경제수석은 우리금융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2001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우리금융지주 총괄 부회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우리은행이 청와대 입점 은행으로 선정되면 특혜시비가 불거질 것’이란 말이 나돌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농협의 손을 들어주면서 ‘금융권 단체장 낙하산 논란을 낳아온 정부가 구설수를 피하려다보니 농협을 택했다’는 평을 듣게 됐다.
청와대 입점 경쟁에서 우리은행을 제친 농협엔 이 대통령의 동지상고 후배인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있다. 그런데 청와대 입점 1호 은행 선정에 대한 축포를 당장 터뜨릴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농협을 향한 검찰의 수사 칼날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까닭에서다. 농협은 정대근 회장 시절이던 지난 2006년 세종증권을 인수해 NH투자증권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비리 의혹을 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실세인사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이익금을 챙겼다는 구설수와 함께 농협 자회사였던 휴켐스를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연차 회장에게 헐값에 넘겼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 노 전 대통령 친형인 노건평 씨 연루 가능성이 커지면서 수사당국의 노 정권 실세 사정한파가 불고 있다. 이는 최원병 회장과는 관련 없는 일이지만 금융기관으로서 농협이 받는 타격은 만만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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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최원병 농협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왼쪽부터). | |
현 정부 출범으로 기존의 금융권 실세 중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꼽혔던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요즘 표정 밝을 날이 없어 보인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61학번)인 김 회장의 하나금융은 지난해 정기세무조사를 통해 국세청으로부터 ‘2002년 서울은행과 합병 당시 하나은행이 편법으로 법인세 1조 7000억 원을 내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과세적부심사 끝에 지난 6월 국세청이 지난해 결정을 뒤집으면서 세금 폭탄을 피하게 됐다. 때마침 외환은행이 매물로 재등장하면서 외환은행 인수 성공시 국민 신한 우리 등 금융지주사들과 더불어 국내 4대 금융지주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지난 9월 태산LCD 워크아웃 사태로 공격적 경영은커녕 유동성 위기설까지 맞게 됐다. 수출대금에 대한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하나은행과 통화옵션 계약을 맺었던 태산LCD가 환율폭등 속에 부실화하면서 하나은행이 수천억 원의 변제를 떠안을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김 회장은 최근 서울시 교육감 선거 당시 공정택 교육감에게 후원금을 건넨 것 때문에 검찰 조사를 받았다. 서울 은평뉴타운에 자립형사립고 설립을 추진 중인 하나금융의 김 회장이 인가권을 가진 공 교육감에게 어떤 목적으로 돈을 줬는지가 수사 초점이다. 태산LCD 사태 여파로 주가 폭락이 이어지면서 위기 타파에 앞장서야 할 김 회장이 수사당국 조사까지 받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일 듯하다.
지난 7월 KB금융지주 회장직에 오른 ‘검투사’ 황영기 회장은 금융지주사 간 대등합병 추진과 외환은행 인수 의지를 불태우며 메가뱅크로의 도약을 천명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장기화 속에 KB금융 주가가 반 토막 나면서 한숨만 내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상장 당시 4만 7000원을 기록한 KB금융 주가는 11월 말 2만 2000원 대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3만 원 선을 회복한 상태. 황 회장은 주가가 크게 떨어진 국내·외 우량기업의 주식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자사주를 처리해 주가 상승기에 대비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시장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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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박해춘 국민연금 이사장(왼쪽부터). | |
이뿐만 아니라 조직 내에서 황 회장의 입지와 관련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황 회장 입성 당시엔 KB금융지주 회장직을 놓고 겨뤘던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황 회장 입성으로 강 행장이 2년가량 되는 행장 잔여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릴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은행부문 전문가인 황 회장의 글로벌 금융위기 타파 능력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은행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강 행장의 입김이 조직 내에서 다시 커질 조짐을 보인다는 평이 대두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 6월 국민연금공단 입성으로 황 회장과 더불어 현 정권 금융실세로 떠오른 박해춘 이사장 역시 된서리를 맞는 중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 한 달 동안 증시에서 1조 8000억 원을 날리는 등 올 들어 수조 원의 주식투자 평가손실을 입어 ‘증시 총알받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얼마 전 대우조선해양 입찰과정에선 재무투자 참여 의사를 밝혔다가 입찰 막바지에 투자 철회를 선언해 재계와 금융권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박해춘 이사장은 또 우리은행장 재직 때, 지난 27일 워크아웃을 신청한 C&그룹에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2274억 원을 빌려줘 역시 친 MB계인 후임 이팔성 회장에게 부담을 안겨준 셈이 됐다.
황영기-박해춘 두 사람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기간 동안 경제정책을 이끈 이른바 ‘이헌재 사단’ 일원이었다가 현 정부 출범을 계기로 친 MB계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뭔가 보여주지 못하는 친 MB계 인사들에 대한 금융권의 시선 또한 차가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