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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 완화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은행들의 소유와 경영이 대거 외국자본으로 헐값에 넘어가 사실상 경제종속상태를 초래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

이경희330 2008. 11. 6. 23:43

[정경뉴스]정부는 기업이 은행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금산분리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관련법의 개정안은 기업이 은행지분을 4%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한 규정을 고쳐 1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모투자펀드를 기업출자비중이 30%만 넘지 않으면 금융자본으로 분류해 기업이 사모투자펀드를 통해 은행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더 나아가 증권, 보험 등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을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했다. 한편 산업자본으로 분류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도 금융자본으로 규정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외국자본의 대항마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은행들의 소유와 경영이 대거 외국자본으로 헐값에 넘어가 사실상 경제종속상태를 초래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은행이 해외자본에 넘어간다는 것은 경제의 심장을 넘겨주는 것으로 산업발전의 흐름을 지배하고 국부를 유출시킨다는 차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자본인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4,000억원에 매입하여 구조조정을 통해 가격을 올린 후 6조원이상의 가격에 매각과정에 있다. 론스타는 5년 만에 3배 이상의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은행사냥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환은행은 산업금융기능이 크게 위축되고 이익극대화를 위한 상업적 금융거래에 치중했다. 이와 같은 피해는 외국자본지분이 절대적으로 많은 모든 은행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

현재 국내 6대 은행의 총 지분 중 외국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55% 수준이다. 국민은행 70%, 외환은행 75% 등이다. 미국 금융위기 등으로 지난해 61%에 다소 축소되기는 했으나 과반지분으로 은행경영을 좌지우지하고 국내 금융산업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자본에게 은행 소유와 경영을 대폭 허용하여 외국자본에 대한 대항마를 기른다는 것이 이번 정부정책의 기본 취지이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최대 주주의 지분이 5%미만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10%까지 은행지분을 사들이면 은행의 소유와 경영이 가능하다.

대기업들은 사모투자펀드를 통해서도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대기업이 10%이상 투자한 사모투자펀드는 산업자본으로 분류되어 은행을 소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조치는 30%이상만 산업자본으로 분류되어 사모투자펀드를 통한 은행소유가 훨씬 쉬워졌다. 여기에 국민연금을 비롯하여 60개의 공적 연기금을 금융자본으로 규정함에 따라 국내은행인수에 국내자본이 총동원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주요 은행들을 국내자본이 소유하고 경제는 외국자본의 지배체제에서 벗어나 공평하고 건전한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다.

대기업의 사금고화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희망사항으로 끝날 수 있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할 경우 국민의 은행이 아니라 대기업들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는 함정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부의 집중현상이 심하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은행지분을 10% 확보하여 최대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확보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10%지분으로 경영권인수가 불안할 경우 계열사나 관계회사를 동원하여 우호지분을 확보하면 어떤 은행의 경영권인수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은행의 경영은 당연히 대기업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자본을 독점하며 경제력집중을 가속화하고 경제전반에 걸쳐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경우 기업들 간의 공정한 경쟁은 가능하지 않다. 자금동원능력을 독점하여 경쟁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은행을 통해 경쟁기업의 정보까지 빼내 고사시키는 전략까지 구사할 수 있다. 은행이 대기업의 지배를 받을 경우 더욱 큰 우려는 국민경제의 부실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경영환경 악화로 부실화할 경우 은행은 소유주로부터 대출금회수가 어렵다. 거꾸로 구제금융을 계속 제공하는 사금고로서 모든 자금을 동원하는 일이 당연 시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동반부도의 상황에 이르러 금융산업과 실물산업이 함께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험이나 증권 등 비은행 지주회사가 제조업을 자회사로 둘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최근 금융산업 중 은행보다 보험이나 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자본시장 통합법을 만들어 증권회사에 은행의 주업무인 지급결제시스템까지 허용할 예정이다. 비은행 금융회사와 제조업회사들의 결합허용은 국가경제의 잠재력 부실화 위험을 더욱 확대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동반부실로 인해 국가 경제가 부도상태에 이를 수 있는데 바로 우리경제가 겪은 IMF위기가 그 예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선진국들은 대부분 금산분리원칙을 확고히 지키고 있다.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의 지배를 받는 은행은 네곳 정도이다. 우리경제는 IMF외환위기를 겪으며 실로 큰 고통을 겪었다. 40년 동안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군 경제를 한시에 무너뜨리며 200만명의 근로자들이 실업자로 길거리에 내몰렸다. 이후 쓰러진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국민들은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부담하며 모든 고통을 집중적으로 떠안아야 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주요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을 외국자본에 헐값에 넘겨주며 경제를 스스로 예속시키며 대규모의 국부유출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조치는 우려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삼성, 현대차, 한화, 롯데 등의 대기업들이 은행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동부, 한화, 흥국, 현대해상, LIG 등의 보험회사들이 비은행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여 제조업을 자회사로 거느릴 가능성이 있다.

한편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은행소유 허용도 문제의 소지가 크다. 공적 연·기금은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어 연·기금이 은행을 소유할 경우 관치금융체제의 복귀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금융시장기능을 정부가 통제하여 다시금 정경유착비리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따라서 은행의 주식 보유는 허용하되 경영권 행사의 허용은 신중해야 한다.

국민소유와 전문경영

외국자본의 지배체제하에서 금융산업의 피해가 심각한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금산분리완화정책은 일리가 있다. 특히 자본이 대기업들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로 하여금 은행지분을 보유하게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은행은 국민이 소유하고 국민이 위임하는 전문가가 경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지배나 산업자본의 지배는 막고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은행경영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으로 보아 산업자본이 은행지분의 10%까지 보유하도록 한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조치는 과도하다. 따라서 산업자본이 은행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지분을 더 늘리도록 하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더욱이 비은행 지주회사의 제조업 자회사 허용도 시기상조이다. 허용한다면 지주회사 전환요건과 감독규제를 대폭 강화하여 불공정한 거래와 경제력집중의 소지를 완전 차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연·기금의 은행 지분 소유도 경영권의 행사를 무조건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각국 경제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심장인 미국 증권가가 붕괴하고 있다. 첨단 금융기술로 자본주의를 고도로 발전시켜온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 등 주요 투자은행들이 집단 도산을 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기업의 인수합병, 증권의 인수와 발행, 파생상품의 기획과 판매 등 고도의 기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세계 경제를 마음대로 휘젓던 시스템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가 아니다. 투자은행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는 것이다. 미 투자은행들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증권시장을 다단계 파생상품 도박장으로 만들어 자본주의를 독극물로 마비시키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스스로 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향후 금융산업은 투자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무게의 중심이 이동되어 대대적인 개편이 일어날 것이다. 더욱이 그동안 자유방임주의로 풀렸던 규제들이 다시 강화되고 금융감독은 더욱 강력한 감시체제로 바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은 금산분리완화 방안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향후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발전을 해야 할 지 기본방향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은행의 소유만 자유화시키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예측이 안된다. 따라서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를 서두를 것이 아니라 금융위기 극복방안과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의 새 방향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글 이필상 고려대학교 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