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미국발 신용경색을 풀지 못한 채 헤매고 있고 우리나라도 역시 경기침체에 이어진 환율 파동에 타격을 입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도 다음주 월요일(13일)에 방송될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금융 경제 위기에 대해 이야기 할 예정이다.
◈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은 좋다. 청와대는 당연히 라디오를 가장 많이 듣는 월요일 아침 7시 30분 즈음에 7분 내지 10분을 할애해 달라 요청하고 있는데 이대로 고정 편성한다면 사실상 방송사 차원에서는 프로그램 개편 작업에 해당한다. 방송사마다 아직 결정들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듯.
물론 라디오 방송사들이 방송하든 말든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라고는 하는 데 방송사로서는 부담스럽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례방송으로 국민 통합에 크게 효과를 봤다고는 하는 데 영 미덥지 않다.
라디오 주례연설은 권력을 쥔 사람에게 나름 매력이 있다. 이미지를 강조해 전달하는 텔레비전보다 세세한 정책 설명과 속이야기를 정감 넘치게 전달하는 데는 라디오가 이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초 2003년 6월에 이를 추진하려 했다. 매체비평지 <미디어 오늘>이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설을 찾아냈다.
- 2003년 6월 30일 자 조선일보 사설
KBS가 이번 프로그램 개편에서 장애인 프로그램은 폐지하고 황금 시간대에 대통령 주례 연설방송을 신설하려는 것은 공영방송이 표방하는 정치적 중립성과 소외 계층 배려라는 기본 책무에 크게 어긋난다. 만일 대통령이 주례 방송 연설에서 특검법 거부나 파업에 대한 정부 입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한다면 방송의 존재방식 자체가 정치문제화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예를 드는데 미국은 대통령에게 준 것과 똑같은 방송기회를 야당에도 주고 있다. 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대통령 연설부터 방송하겠다는 것은 사서 시비를 만드는 것이다. 당장 전면 철회하라.
-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
그간 공영방송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던 KBS 제안의 순수성부터 의심스럽다. 탈 권력과 정치적 중립이 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KBS가 또 다시 샛길로 빠지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이해를 구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도 말이 넘쳐서 구설이 끊이지 않는 대통령에게 또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자리가 필요한가.
대통령에게 비판적이거나 비우호적인 세력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식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개인적인 문제를 해명하거나 특정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식의 연설 역시 부당하고 불필요하다.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전달하는 것도 불공정하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더욱 크다. 야당을 포함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반론기회가 동등하게 허용되지 않으면 주례연설은 오히려 소모적인 정쟁과 국론분열의 우려가 크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KBS가 추진한 것이고 이번에는 청와대가 모든 라디오 방송사에 보낼테니 처리하라는 것인데 강도가 다르다. 조선 동아가 이번에는 어떤 사설을 쓰나 기대해 볼 일이다. 방송이 집권 세력의 정치적 홍보용으로 남용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조선동아 사설의 취지였는데 이번에는 그럴 우려가 없을까?
각 방송사가 자율 결정할 문제니까 청와대가 보내 온 방송을 미리 들어보고 판단하여 결정하면 될 일이긴 하다. 그런데 대통령 정치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내려 간 YTN이라면 어찌 하겠나, 한바탕 소동을 겪고 보복인사가 몰아치는 KBS는 어떨까?
◈ 저도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위원장입니다
또 하나 우려가 되는 것은 방송을 감독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존재다. 정확히는 방송통신위원장의 존재.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민주당 장세환 의원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촛불 정국이 시작된 5월 6일부터 국무회의에 본격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9월 30일까지 23 번의 국무회의 중 87%인 20회를 참석했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만 놓고 따지면 11회, 100% 참석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무회의 참석률은 52%. 국가정보원장만 해도 국무회의 참석 고정멤버가 아니다.
|
|
|
|
|
▲ 변상욱 대기자 |
|
|
방송통신위원장의 행보가 이렇다면 과연 방송통신의 정치적 중립성이 유지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YTN 사태만 해도 구본홍 YTN 사장이 최시중 위원장과 청와대 박선규 비서관을 밖에서 따로 만난 사실이 어제(9일)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청와대는 아무 개입 없다고 하면서 결국 이리 저리 얽히는 게 보이지 않는가. 혹시 청와대 회의에 꼭 나가고 청와대를 빈번이 출입하는 게 아니라 아예 가서 의견을 내놓고 국무회의를 좌우한다면?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후속 프로그램으로 '안녕하십니까 위원장입니다' 이런 프로그램 나오는 것 아닐까.
변상욱/기독교방송 보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