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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규 목사가 고통스런 마음로 말하는..목사 개혁이 곧 교회 개혁이다

이경희330 2010. 12. 12. 21:26

헌 집을 새집처럼 고치는 것은 새로 집을 짓는 것보다 더 어렵다. 21세기의 교회 특히 한국인의 이민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본국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겠지만 어려운 과제이다. 필자도 수십 년 간 목회하고 은퇴하고 나서 역시 목사란 칭호를 벗을 수 없는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 미처 몰랐던 것을 많이 깨닫게 되고 또 현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난제가 많아서 루터처럼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현실에 대해서는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목사의 자기 성찰

첫째 강조할 것은 교회 개혁의 핵심은 목사 개혁이다. 목사가 새로워 지지 않으면 교회는 새로워질 수 없다. 목사에 대해 말하기 조심스럽고 부끄러우나 전도하다가 만나는 사람이 목사를 욕하는 것을 보면 얼굴을 들 수 없다.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져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는 자신의 관찰이 어렵다. 왜냐하면

 

첫째, 당면한 목회 생활이 분주하여 매일 교육, 심방 등 그 과업에만 신경을 쓴다.

 

둘째, 제도에 편승하여 따라간다. 당회장으로서, 노회원으로서 총회 소속으로서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면서 따라간다.

 

그리고 자기 자리에 대한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를 떠나면 살 길이 막연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지키고 안주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하나의 타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타성적인 목회, 그것이 영적 침체를 필연적으로 가져오고 교회 부조리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목사는 자기를 돌아보지 않을 때 실족하기 쉽다. 목사는 늘 자기를 채찍질하며 성찰하여야 한다.

 

목사의 자격

그뿐 아니라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목사가 된 경우도 많다. 목사의 타락은 신학교의 부정 그리고 목사 안수 과정의 부정과 연결 된다 그래서 우선 강조되어야 될 것은 아무나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 목사가 되기 위한 동기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목사가 되지 않고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주님으로부터 교역자가 되라는 소명이 확인되었고 그 사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교역자로 헌신하여야 하고, 신학교의 입학 사정에서 그리고 신학교 교육 과정을 통해서 또 목사 안수 과정을 통해서 부적격자는 퇴출시켜야 한다.

 

특별히 목사가 되는 것을 생활 수단의 방편으로 혹은 사회에서 대접받는 지위를 차지하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질과 지위를 탐하는 사람들을 가려내어 신학교에 입학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학교의 교육의 질과 교과 과정 등이 조정되어 양질의 목회자를 양성하여야 한다. 신학교의 수가 많기로는 한국이 최고이고 목사의 숫자도 그렇고 신학 계통의 박사가 많기로도 한국이 세계 제일일 것이다. 특히 목회학 박사 장사가 미국 신학교에서도 성업 중이고 그 대상의 일호가 한국 목사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학교가 정리되지 않으면 목사 개혁은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신학생의 지적, 영적, 도덕적 수준이 졸업하기 전에 점검되어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특별한 사명감이 없으면 특별히 M. Div 학위는 주지 않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목사 안수 절차가 엄격해야 한다. 여기서도 몇 개의 시험과 형식적인 인터뷰로 목사 고시가 치러질 것이 아니라 인격과 사명감이 검증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미국에 오면서 목사가 되었다는 비아냥거림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목사를 안수할 수 있는 교단의 숫자가 줄어야 하고 교단들에게 목사 안수 절차를 까다롭게 해 달라는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해야 한다.

 

좋은 목사의 선택과 목사에 대한 요구

좋은 목사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교회와 교인들이 좋은 목사만을 선택하고 좋은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여야 한다.

 

첫째 처음 믿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지 모르지만 목사를 잘 선택해야 하고 목사를 대하는 태도에도 조심해야 한다. 우선 눈에 나타나는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 이야기 하여야 한다. 목사가 공인된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공인된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고, 가정이 모범되고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가가 점검되어야 한다. 세상에 가짜 신학교도 많고 부실한 교단도 많다. 어디서 안수 받았는지도 모르는 소속 불명의 목사나 소속이 분명하다고 해도 몇 사람들로 모아서 자기 마음대로 교단을 운영하며 사립 자가용 제사장들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

 

둘째 목사를 감시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독교 언론 기관일 수도 있고 기윤실 같은 시민 단체일 수도 있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교회 연합회와 같은 자체 감시 기구가 감독 기구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터넷, 교계신문, 일반 신문, 소책자 등의 지면을 빌려 계속 글을 쓰고, 경고나 질문을 게제하고 교회 개혁에 대한 스티커 등을 만들어 눈에 잘 띠는 곳에 부착하는 방법을 써서 목사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성도들을 계몽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예를 들어 목사의 자격에 대한 질문이 다음과 같으면 어떨까 한다.

1.목사님은 교회와 사회로 부터 존경 받고 계시다고 생각합니까?
2.목사님은 정규 신학교 수료하셨죠?
3.목사님은 공인된 교단 소속이시지요?
4.목사님은 여자관계가 깨끗하시지요?
5.목사님은 이혼하신 적이 없으시지요?
6.목사님은 금전 관계가 깨끗하지요?
7. 목사님은 도박 안 하시지요?
8. 목사님은 거짓말 안하시지요?
9. 목사님은 십계명을 잘 지키고 가르치시지요?
10 목사님은 구제 사업 잘 하시지요?
11. 목사님은 사도신경을 잘 가르치시지요?
12. 목사님은 성도들의 헌금을 마음대로 사용하시지 않지요?
13. 목사님은 모든 행동이 모범적이시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1. 당신은 당신의 목사님이 어느 신학교 출신인 줄 아세요?
2. 당신의 목사님은 영혼을 사랑하는 설교를 하십니까?
3. 당신의 목사님은 목사를 잘 섬기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까?
4. 목사님의 제자 훈련이 예수의 제자가 아닌 목사의 제자를 만드는 훈련은 아닙니까?
5. 당신은 당신의 헌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아십니까?
6. 당신 교회의 목사님의 여자관계는 깨끗합니까?
7. 당신은 목사님께 사기 당한적은 없습니까?
8. 목사님은 성경, 사도신경, 십계명을 잘 가르치십니까?
9. 목사님은 전도하라고 가르치십니까?
10 목사님은 겸손하십니까?
11. 목사님은 구제에 신경 쓰십니까?
12. 목사님의 가정은 화목합니까?
13 목사님은 교회 헌금을 마음대로 사용하지는 않습니까?
14. 당신은 목사님께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15.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 받습니까
16 목사님은 설교와 그의 생활이 일치 합니까?
17. 당신은 목사님을 신임하십니까?

 

교회 안팎의 감시기구

목사 개혁을 목사들에게만 혹은 목사들이 운영하는 신학교에만 맡겨 둘 수만은 없다. 평신도가 목사들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와 연결해서 평신도의 역할을 살펴보자.

 

교회 밖에서는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지 못하므로 성도들 자신들이 목사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교회 안에서 목사를 감시하는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목사 평가 위원회가 교회의 중진에서부터 각 부서의 대표들로 구성되어 정기적으로 담임목사를 평가하는 제도를 제안한다. 목사가 스스로 교인들로부터 평가 받고 싶다고 이런 제도를 만들자고 제안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목사는 바로 충성하는 결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목사로 하여금 취임 혹은 이임식 때에 교인과 하나님 앞에서 선서하게 하면 어떨까 한다.

‘ 저 ooo 목사는 본 교회를 담임하면서 사기, 횡령, 간음, 이단행위, 거짓말, 기타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를 할 경우 반드시 사임할 것이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떠한 법적 제제도 달게 받을 것임을 선서합니다.’

 

만일 이런 서약을 교인 앞에서 한다는 것이 목사의 권위를 실추시킨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같은 내용의 서약서를 목사가 날인하여 교회에 제출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목사가 교회를 담임할 때 평신도들이 무엇 무엇을 주문하면 그런 것은 상식이 아니냐, 목사의 인격을 믿어 달라 해놓고 정작 부임하여 교회에 뿌리를 내린 이후에는 상식적인 것까지 무시하고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예를 종종 보기 때문에 아예 목사의 윤리 지침을 제도화 문서화 시키자는 것이다.

 

또 강조될 것은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재산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재산을 쌓아두는 곳이 아니다. 지금 교회는 바벨탑 대신에 빌딩을 세우고 성을 쌓아 재산을 불리고 있다. 물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불의가 있고 부패가 있고 분열이 있게 마련이다.

 

목사가 교회를 자식에게 상속하려는 목회 세습이나 초대형 교회 목사 자식들이 교회 소속 기관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추태를 보면서 성도들의 눈물, 콧물이 젖은 연보가 하늘의 재판장님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교회의 재산은 최소화시키고 예산의 대부분을 성도와 구제로 쓰자는 결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땅에다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고 가르치고 헌금이 모이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교회가 있다면 예수님이 책망하실까?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을 약속하셨기에 책망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추수 때이다. 주고 또 주고 없으면 채우고 또 채워 주실 것이다. 교회의 직원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우고, 구제와 봉사를 위해 관리 직원을 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권징이 살아나야 한다. 교회의 역할은 첫째 말씀의 선포, 둘째 성례의 집전, 그리고 셋째가 권징의 실시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는 교인들의 잘못을 꾸짖는 일에 너무나 약하다. 이 권징은 평신도뿐만 아니라 교역자에게도 똑같이 오히려 더 엄하게 실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영혼을 살리려면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성례를 바르게 집전하고, 권징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 특히 교인들이 이탈할까봐 권징을 하지 않는 최근의 목회 트렌드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잘못할 때는 매를 쳐야 함은 신구약을 통해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가르침이다. 권징이 없이는 교회의 순결을 지킬 수 없다. 나무가 바로 자라도록 가지를 치듯 징계를 하지 않으면 자식을 버리는 것 같다.

 

제대로 목회하기

그러나 결국은 목사 개혁은 목사들이 해야 할 일이다. 목사가 사명감을 갖고 목회를 바로 하면 교회는 개혁된다. 목사들은 스스로가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는 목회를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목사는 물을 뿌리지만 목사 사역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 선행의 열매, 전도의 열매 순으로 나타나게 마련인데 오늘날 목사들은 앞의 두 가지는 제쳐놓고 전도의 열매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전도보다 다른 교회 교인 데려와 교세 불리기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십계명을 바로 가르쳐야 윤리가 확립된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십계명이 잘 가르쳐 지지 않는다. 이것이 제대로 가르쳐 지지 않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실용적인 이야기만 하는 교회가 많으니 기둥을 세우지 않는 결과이어서 성도라는 사람들의 윤리 도덕이 무너지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리가 있다.

사도신경이 구원론의 완성이라면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완결이고 기독교 생활 철학과 윤리의 완성이라고 해야만 옳다. 사도신경을 바로 가르치고 십계명을 바로 교훈하여 성도가 복을 받게 해야 한다. 그리고 목사가 먼저 십계명을 철저히 지켜야 제대로 된 목회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목사가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앞의 제안들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목사의 자격을 위해 신분증 같은 제도도 이미 일부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면죄부의 역할을 할 가능성까지 있다.

 

목사회나 교회 협의회 같은 곳도 목사들을 칭찬하기는 쉬우나 꾸짖기는 힘들어 한다. 그래서 목사들은 서로 서로 채찍질 하고 권면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하여야 한다. 한 달에 한번 씩만 목회서신을 읽으며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사님들이 소그룹으로 모여서 목회 서신을 읽으며 자신의 목회를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모세의 의분이 그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면 누구도 자만은 금물이다. 그래서 목사들은 가까운 관계일수록 아나니아나 삽비라처럼 같이 망하지 말자고 서로를 충고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필자 역시 목사로서 서로를 충고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구본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