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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내가 경선에서 박근혜 얼마나 밀었는데..."

이경희330 2008. 4. 23. 23:47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중인 지난해 7월 20일 박근혜 후보가 장애인위원회 전진대회에 참석한뒤 차에 타기에 앞서 강재섭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근혜

 

최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은밀히 지원했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대표가 자신의 주장처럼 경선 국면에서 중립을 지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당 내에서 미묘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강 대표는 지난 17일 대구·경북지역 언론사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11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주례회동을 언급하며 "이 대통령도 공천 결과에 충격 받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강 대표의 발언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일부 지역신문이 다음날 이를 보도한 후 상당수 언론이 <이 대통령 "한나라 공천, 나도 속았다">는 등의 제목의 기사로 보도됐다.

 

당일 오찬에는 대구 출신의 이명규 사무부총장(친 이명박)이 배석했고, 박근혜계의 최경환 의원과 구상찬·이정현 당선자도 뒤늦게 합류했다.

 

"박 전 대표가 밀어 승리... 겉으론 '중립'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친박'"

 

그러나 오찬 참석자들을 정작 놀라게 한 것은 이 대통령의 '공천' 발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이날 강 대표는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국면에서 자신이 박 전 대표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강 대표는 이날 고량주를 여러 잔 들이켰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18대 총선 불출마로 20년간의 의정 생활을 정리하게 된 마당에 고향의 친분 있는 기자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강 대표가 긴장을 늦추고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한 것 같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기자가 "(박 전 대표와의 불화 때문에) 대구에서 강 대표를 곱지 않게 보는 사람이 많더라"고 말하자 취기가 오른 강 대표가 이렇게 답했다.

 

"2006년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가 나를 밀었고, 이 대통령이 이재오 최고위원을 밀었는데 내가 이겼다는 건 다 아는 사실 아니냐? 내가 겉으로는 '중립'을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친박'이었는데 박 전 대표가 그걸 몰라주니 답답하다."

 

강 대표는 이렇게 운을 뗀 뒤 경선 당시의 비화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이명박 양대 캠프는 경선 룰을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우선 경선시기를 놓고 양측 의견이 6월(친박)과 8월(친이)로 엇갈렸지만, 강 대표가 "8월에 선거인단 20만명으로 경선을 치르자"고 제안하자 양측 모두 이를 수용했다. (2007년 3월 중순, 이하 2007년) 강 대표는 "박 전 대표는 당헌당규 대로 '6월-4만명'을 고집했지만, 내가 '여론조사에서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6월에 경선하면 진다'고 설득해서 마음을 돌려놓았다"고 회고했다.

 

강 대표는 경선 기간 내내 자신이 '중립'임을 강조했고 하위 당직자들에게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는 말까지 했지만, 실상 그 자신도 양대 계파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박 전 대표에 대한 강 대표의 '코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선 시기를 합의한 후에도 양측은 선거인단의 20%를 차지하는 여론조사 반영방식을 놓고 지루한 협상을 이어갔는데, 5월 초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아 경선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명박에겐 미안하지만, 중재안 박근혜에게 유리했다"

 

강 대표는 5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인단 수 조정(20만명→23만1652명) ▲국민투표율 최저하한선(67%) 도입 ▲투표율 제고를 골자로 한 중재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강 대표가 중재안을 발표하기 전에 박근혜 캠프에만 자신의 구상을 미리 알려줬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박 전 대표의 측근 A의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A의원이 주판알을 튕기더니 '이 정도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환영했지만, 박 전 대표가 끝내 거부하더라. 하지만 이명박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중재안은 박근혜에게 유리한 안이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5월 15일 상임전국위에서 중재안을 상정하려고 했지만 박근혜계의 김학원 의원(당시 전국위의장)이 "양측의 합의 없이는 중재안 상정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나라당의 분당 위기가 고조됐다.

 

강 대표는 5월 11일 '대표 및 국회의원 사퇴'라는 승부수를 다시 던졌는데, 이때도 박 전 대표에게 "내가 사퇴 카드를 던질 테니 이번에는 중재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언질을 줬다고 한다.

 

강 대표는 "내 전화를 받은 박 전 대표가 '지금 바로 수용하는 건 나로서도 곤란하니 한동안 '반대' 입장을 유지하다가 상임 전국위가 열리기 직전 수용하겠다'고 답하더라"고 술회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제3차 전국위원회에서 당시 이명박,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들과 함께 공정 경선을 다짐하며 손을 들고 있는 강재섭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근혜-강재섭 커넥션'을 모르고 있던 이명박 캠프는 강 대표가 계속 내놓는 카드의 의미를 읽느라 고심을 거듭했다. 이 대통령은 결국 '판을 깨면 안된다'는 온건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상임전국위가 열리기 전날(5월 14일) 저녁 강재섭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캠프는 이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나온 뒤에야 '중재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박근혜는 내가 어떻게 할지를 훤히 알고 있었지만, 이명박은 아는 게 없으니 막판 협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자 친이 성향의 이명규 부총장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도 그 당시에는 정말 섭섭했다"고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오찬에 배석한 이명규 사무부총장은 23일 기자를 만나 "내가 섭섭하다고 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니다. 경선 때 양쪽 모두 강 대표에게 섭섭해하지 않았냐"고 해명했다. 이 부총장은 "강 대표는 자기 나름대로 박 전 대표를 배려했는데, 그걸 몰라주는 심정을 얘기한 것"이라며 "경선 당시 양측 모두에게 (기자회견에 앞서) 중재안을 알려주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18대 총선에 당선)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강 대표가 중립을 지키지 않았고, 당내 사정이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정황은 우리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측 '불쾌'... "별로 해준 것도 없으면서 상처만"

 

경선 룰 협상에 관여했던 박근혜 캠프의 B의원도 "내가 어떤 식으로 얘기하는가에 따라 강 대표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겠다"고 하면서도 "옛날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또한, 강 대표는 "나를 따르는 당협위원장과 당직자들에게도 박근혜를 지지하라고 했지만 둘은 끝내 거부하더라"며 나경원 의원(당시 대변인) 등의 이름을 거론했다고 한다. 나 의원은 한나라당 경선 국면에서 '중립'으로 분류됐다.

 

강 대표가 뒤늦게 자리에 합류한 박근혜계 배석자들에게 "내가 정말 열심히 도와주지 않았냐"고 하자 한 배석자도 "네, 네"라고 답했다는 게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강 대표는 친박 의원들의 대규모 탈당을 불러온 '3·13 영남대학살'과 관련해서도 "김무성·박희태 등 양 계파의 상징적 인사들을 포함시키되 17명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기로 계파 간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는데, 공천심사위원장(안강민 변호사)이 8명을 더해 25명을 잘라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자신이 관여해서 공천에서 탈락된 중진의원의 이름까지 거론했다고 한다.

 

강 대표의 말대로라면 안강민 공심위원장이 양 계파 수뇌부의 의중을 무시하고 공천탈락자 규모를 늘렸다는 얘기인데, 이것이 안 위원장의 소신에 찬 결정인지 아니면 친이 강경파(이재오·이방호)의 입김이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강 대표는 "친박연대가 출범하기 전에만 해도 한나라당 예상의석수가 160석을 웃돌 것으로 봤는데, 영남에서 친박 열풍이 분 후에는 여의도연구소에서도 150석 안팎을 얻을 것이라고 보고하더라"며 "150석 이하를 얻으면 선거패배에 따른 문책론이 나올게 분명했기 때문에 지역구 불출마 카드를 던졌다. 결국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표 측은 강 대표의 오찬 발언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전 대표의 핵심측근은 "강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면 이 대통령에게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고, 박 전 대표와의 관계도 끝내야 할 상황"이라며 "강 대표가 우리 쪽에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마지막까지 박 전 대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은 너무하는 것 같다"고 섭섭함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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