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journal문화

‘BBK사건’으로 드러난 한인언론 현주소

이경희330 2008. 1. 27. 13:08
취재의 ABC도 몰랐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BBK 사건’은 대선정국에서 가장 큰 태풍을 몰고 왔다. 특히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김경준 씨와 그의 누나 에리카 김의 주무대가 로스엔젤레스였다는 점에서 LA 한인언론은 다시 한 번 본국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LA 현지 한인언론들은 사건의 맥을 제대로 짚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물론 국내 언론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이번 BBK 사건을 계기로 LA현지 한인언론들의 취재력이 어느 정도인가가 잘 드러났다. 현지 언론들은 김경준 씨와 에리카 김 씨가 관련된 중요 법정서류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결국 ‘BBK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반면 지난 2004년 BBK 사건을 가장 먼저 보도한 <선데이저널>은 본국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경향신문이 발간하는 주간지 <뉴스메이커>는 최근 기사를 통해 “2007년 11월 한국 언론에서의 BBK 사건보도는 2004년 미주 한인사회의 주간신문인 선데이 저널이 보도한 당시의 BBK사건보도와 비슷한 기사를 대서특필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주간신문은 2004년 ‘에리카?이명박 도대체 어떤 관계’라는 제목 아래 ‘긴급 와이드 대특집 김경준?이명박?에리카 3각 사기 미스터리’라는 기사들이 마치 최근의 한국 신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보도했다.
                                                                                          제임스 최 취재부 기자

 ▲ 지난5일 에리카김 기자회견이 열리기로 했던 윌셔 플라자 호텔 앞. 호텔직원이 안내문을 보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대부분 한인언론들이 ‘BBK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BBK사건’과 관련해 이곳 현지 한인언론들의 보도태도는 국내 언론들이 보도한 수준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만큼 이곳의 취재력이 국내 취재진보다 훨씬 뒤쳐졌다는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볼 때, 에리카 김씨와 관련한 취재는 이곳의 언론들이 국내언론들보다 한발 앞서야 했다. ‘BBK 사기사건’은 한국에서도 이루어졌지만, 에리카 김씨가 관련된 위조사건은 대부분 LA와 네바다주에서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카 김 씨와 관련한 한인언론들의 보도는 본보가 지난 2004년부터 보도한 내용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만약 이곳의 언론들이 ‘BBK 사건’과 관련해, LA소재 연방법원과 연방검찰, LA카운티 지방법원과 검찰을 상대로 기초적인 자료수집과 관계 수사팀과의 인터뷰만 제대로 했다면 사건의 실체를 어렵지 않게 파악했었을 것이다. 연방검찰의 수사기록과 연방법원의 기록에는 김경준씨와 에리카 김씨의  사기 위조 행위가 잘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언론들이 애초부터 ‘BBK 사건’의 사실(Fact)관계를 잘 모르고, 정치적으로 변질된 의혹사건으로 떠오른 후에야  본격적으로 이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본보는 이미 ‘BBK 사기사건’을 2004년부터 의혹사건으로 보도했으나, 대부분의 이곳 한인언론들은 이를 ‘주간지의 가십성 기사’로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대선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언론이 본보 기사를 인용해 사건을 확대하자 그때서야 이곳 언론들도 국내언론 보도를 따라 가기에 이르렀던 것.
더군다나 국내언론들도 ‘BBK 사건’보도에서 사실(Fact)보도 보다는 정치적 의혹사건으로 확대시키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큰 여권지향적인 3대 TV 매체(KBS, MBC, SBS)들은 ‘이명박 죽이기’로 ‘BBK 사건’을 소재로 삼기에 열을 올렸고, 여권성향의 인터넷 매체들도 하나같이 ‘이명박 죽이기’를 위한 기사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본질 파악도 못 해

또한 에리카 김 씨가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배려하는 언론을 고르고 있다는 소위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언젠가 그녀와의 인터뷰 성사를 위해 대부분의 언론들은 ‘BBK사건’과 그녀에 대해 부정적 기사를 보도하는데 주저했으며, ‘김경준 가족’에 대해 동정적인 기사를 실리기에 바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에리카 김 씨의 눈치를 보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에리카 김 씨는 한국의 MBC-TV와 MBC라디오, 한겨레신문, 주간지인 시사in 등과 주로 인터뷰에 나섰다. 이들 언론들이 충실하게 자신의 주장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들 언론들의 입장은 처음부터 ‘이명박 후보가 이번 사건과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라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미국법정에서 나타난 김경준 씨와 에리카 김 씨의 사기혐의 등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명박 후보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자료를 김 씨 가족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수단으로 접근해 갔던 것이다.
지난달 20일 이보라 씨가 참석했던 기자회견과 지난 5일로 예정했다 취소된 에리카 김의 기자회견은 에리카 김 씨가 얼마나 언론을 우습게 보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첫 번 기자회견에 당연히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에리카 김씨의 불참에 대해 어느 언론도 ‘왜, 그녀가 나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취재는 거의 없었다.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는 가족도 나오지 않고 아예 회견 자체가 취소가 되었는데도 그 이유에 대해서도 언론들은 추적을 거의 하지 않고 추측성 기사만 남발했다. 국내언론들이 그나마 내놓은 내용들은 ‘한국검찰이 추가로 에리카 김 씨의 송환을 미국정부에 요청했다’, ‘김경준씨가 기자회견을 열지 말 것을 요구했다’, ‘검찰발표에 대한 반박자료의 미비했다’는 식의 기사였다.
일부에서는 “에리카 김 씨가 여성으로서 마지막 자존심까지 버리고 최후의 카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호기심까지 발동을 시키기도 했다. 그 바람에 한때 설로 나돌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할 것이란 소문도 타운에 퍼져 나갔다. 이같은 소문과 함께 떠도는 다른 소문의 내용은 “그녀는 절대로 남녀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재혼을 앞둔 몸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에리카 김씨는 지난 5일 예정된 기자회견을 취소하는 쪽지를 윌셔 플라자 호텔과 자신의 사무실 문에 부착했다. 그런데 사무실 문에는 아직도 ‘에리카 김 법률사무소’라는 간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남가주변호사협회 규정에 따르면 변호사직을 사퇴하거나 제명다한 경우에는 즉시 간판이나 공식문건에 변호사임을 나타내는 일체의 문건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아니면 말고’ 식 보도

한편 지난 11월20일 기자회견을 전후한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지면은 마치 호외를 방불케 하는 보도로 지면을 장식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김 씨의 부인인 이보라 씨가 공개한 ‘이면계약서’가 사실인양 대서특필하면서 특종보도라고 자랑했다. (이 신문은 나중 한국검찰의 ‘이면계약서’ 가 위조문서라고 발표했어도 이와 관련 자신들의 보도에 대해 해명이 없었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김경준 가족으로부터 ‘이면계약서’에 관련된 자료수집에 개가를 올린 것 만은 사실이지만, 수집된 자료에 대한 보도에 있어 김 씨 가족들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한 것은 객관성을 지키지 못한 보도행태이다. 그처럼 중요한 수집자료를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해 한국검찰이 위조라고 결론내리기 전에 중앙일보가 지적했더라면 그야말로 ‘특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목을 집중시킨 “문제의 ‘이면계약서’를 수집했다”는 ‘특종’을 성급히 보도함으로써, 다음단계인 심층취재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사건 취재에서 이곳의 한인언론들은 ‘김경준씨 송환’과 관련한 취재에도 미숙함을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미국정부의 범인송환절차에 대한 기본절차도 알지 못했다. 이번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른 송환에 대해 한미정부가 범인을 비공개로 송환한다는 당연한 절차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곳의 한인언론과 국내에서 파견된 취재진들이 LA공항 KAL 카운터와 Asiana 항공 카운터 앞에서 무턱대고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오버액션’이었다. 여기에서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에리카 김 씨가 전해 준 소식을 듣고 김경준 씨가 연방구치소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도 이곳 한인언론들이 추적하지 못한 보도 중에는 ‘왜, 그토록 송환을 거부하던 김경준씨가 갑자기 송환을 결심하게 되었는가’이다. 문제는 김 씨 자신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빼돌린 횡령자금이 현재 미정부에 의해 압류 당한 실정인데, 이 돈을 어떻게 회수하느냐를 두고 송환과 연계를 하는 것이 더 본질에 가까운 취재였을 것이다.


 ▲ 하성욱 제작국장

‘BBK사건’이 주목받는 것과 맞물려 라디오코리아의 새 시사프로그램인 ‘투데이 포커스’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현재 코리아타운에서 3개의 한인 라디오방송 프로그람 중에서 본격적인 시사프로는 라디오코리아의 ‘투데이 포커스’가 유일하다. 이 프로는 하성욱 제작국장이 진행하며, 이정원PD가 연출한다.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1시간 동안 방송된다.
점심 후 나른해지기 쉬운 시간에 한인사회의 이슈가 되는 주제를 놓고 각계 의견과 취재기자의 분석을 곁들이며 진행하고 있다.
라디오코리아 측은 ‘투데이 포커스’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한인사회의 현재가 있습니다.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우리들의 얘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가식을 벗고 진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일반적으로 시사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시사프로그램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전달받은 정보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대중 전체가 오류를 저지르는 상황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 물론 시사프로그램인 것처럼 하면서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지도록 하는 역작용도 있을 수 있다.
이 프로를 진행하는 하성욱 제작국장은 “한인사회에서 제대로 된 시사프로를 개발하기 위해 편성한 것”이라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하면서 커뮤니티를 발전시켜 나가는 촉매작용이 되기를 바란다”고 포부를 말했다.
하 국장은 1991년 KBS에서 PD로 활약했으며, 95년에 YTN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다 99년에 미국에 유학와 2001년에 라디오코리아에 입사해 보도국에서 근무하면서 보도팀장을 맡으면서 ‘기자수첩’ 등을 통해 심층적 뉴스 개발에 노력했으며, 이후 제작국장을 맡아 이번에 본격적인 시사프로 개발에 나섰다.
이 프로가 방송되면서 애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워지고 있다. ‘티파니’라는 ID의 네티즌은    
 “특히 진행하시는 하성욱 국장님의 날카로운 질문과 특유의 목소리가 시사 프로그램의 전문성을 더욱 살려 주는 것 같다.”면서 “기자 수첩에서 들었던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 너무 반갑고 롱런하기를 바란다.”고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네티즌은 “에리카 김 기자회견 생방송과 논평은 타방송사에서는 할래야 할 수도 없는 수준높은 방송이었고,최대 관심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감 있게 연결했고, 기자들의 리포트도 완벽했으며, 또한 하성욱 앵커의 날카롭고 무게있는 진행과 논평은 시사 프로의 진수를 보는 듯 했다.”고 말했다.

sundayjournal제임스 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