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가 가져오는 가장 큰 메리트 중 하나는 소위 말하는 ‘권력기관’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지는 않더라도 권력기관에서 수집하는 광범위한 양의 정보들을 고스란히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는 곧 야당의 턱 밑에 칼을 들이댈 수 있을만한 ‘건수’를 손아귀에 넣는다는 의미가 된다. 지난 10년간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지난 25일부로 여당이 됐고 반대로 10년간 여당생활을 한 민주당은 하루아침에 야당이 됐다. 칼자루를 쥔 주인이 바뀐 셈이다.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이런 현실들이 최근 정치판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이명박 특검의 결과 발표가 발표되자마자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검찰에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 수사를 종용하고 있는 것. 반면 민주당 측은 명백한 ‘정치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주 이명박 특검의 수사 발표 이후 정치권에 불고 있는 ‘검찰발 후폭풍’의 진상을 추적해다. < 한국지사 = 박혁진 기자 > |
검찰발 후폭풍이 불어닥친 시점은 이명박 특검이 끝나면서부터다. 이명박 대통령의 BBK 관련의혹이 모두 ‘무혐의’로 밝혀지면서 한나라당은 BBK 의혹을 제기한 정치권 인사들을 정조준하며 그 동안의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로 전환했다. 현재 BBK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과 MB 지지자들이 민주당 현역 의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 고발 건은 무려 50여 건에 달한다.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MB의 ‘무혐의’가 드러난 만큼 이 사건을 주도했던 인사들은 마땅히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통합민주당 의원 줄고발
한나라당의 거론하는 대표적 인물은 통합 민주당의 정봉주 의원, 정동영 전 장관, 박영선 의원, 이해찬 전 총리, 신기남 의원 등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정봉주 의원에 대해서는 △김경준 씨의 횡령 자금이 이 당선인의 LKe 뱅크 계좌로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한 손해배상 청구 △라디오에서 BBK 이면계약서 인감도장 관련 발언을 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 및 손해배상 청구등 7건과 관련해 고발한 상태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11월 말 이 당선인의 BBK 관련 의혹을 적시한 신문광고를 게재해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됐다. 이 의원은 12월 초 이 당선인이 도곡동 땅 소유자이며 그 돈으로 주가조작을 했다고 주장해 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으로 고발됐다. 박 의원은 이 당선인이 역외펀드를 이용해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 유포로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고, 신 의원은 이 당선인의 의혹을 담은 문건 ‘이명박 대통령은 없다’를 제작해 후보자 비방 등으로 고발됐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오가는 의혹제기들은 일반적으로 ‘정치공세’로 규정해 대선이 끝남과 동시에 묻혀지지만 이번만은 다른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반드시 책임소재를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21일 “검찰 수사로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국정 파탄 세력이 대선에 이용하기 위해 또 총선에 이용하기 위해 정략적인 목적으로 특검을 추진했다”며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 때 BBK 저격수로 활동했던 친 정동영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특검 살생부’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도 논란 부추겨
검찰의 움직임은 이런 정치권의 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심상치 않다. 검찰은 이명박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와 동시에 김경준 씨 기획입국설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는 정호영 특검이 마무리되자 김경준 씨의 추가 주가조작 혐의와 기획입국설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BBK 사건을 수사하며 각종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는 담당검사인 최재경 검사는 탄핵까지 당할 뻔 했다. 때문에 BBK 관련한 의혹들에 대해 모든 것을 밝혀 오명을 씻어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달에는 대선 전 김경준 메모를 보도한 모 시사 주간지를 고소한 것도 이러한 의지의 표출로 보인다. 또한 검찰은 지난 해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한 ‘김경준씨와 BBK 동업자’, ‘불교방송 사장교체 압력’ 발언이나 선거방송과 기자회견, 네거티브성 신문광고, 촛불집회 등에서 이 후보를 비난한 혐의 등으로 고발당한 정 전 장관에게 20일 오후 검찰에 나와 조사받을 것을 통보하는 출석요구서를 발부한 바 있다. 의도야 어찌됐든 외곽에서 보기에는 정권교체 시기에 검찰이 한나라당 입장에 유리한 행보를 보인다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는 것. 하지만 야당도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태세는 아니다. 통합민주당은 검찰이 정 전 장관에게 소환장을 발부한 것과 관련, “명백한 정치보복이자 야당 탄압”이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뒤늦게 소환 통보를 한 것은 정치공세적 성격이 짙다는 판단에서다.
민주당 “정치탄압”
우상호 대변인도 “있을 수 없는 정치탄압으로, 이명박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정치탄압을 하겠다고 선전포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같은 논리라면 신당으로부터 고소 고발 당했던 이 당선인도 소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검찰이 이명박 정부에 줄을 서려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 전 장관측도 “지난 87년 대선 이후 후보간 공방 과정에서 오간 발언을 놓고 대선 후 검찰이 낙선자를 소환한 전례가 없다. 명백한 정치탄압”이라고 비판한 뒤 “소환에 응할지 여부는 당 차원의 논의를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이 문제를 당 차원에서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교체로 인해 하루 아침에 공수가 바뀌어버린 한나라당과 통합 민주당, 그리고 이 사이에 끼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써야만 했던 검찰.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이들이 어떤 역학관계를 맺어갈 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