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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 손익계산서 박근혜 뒷짐 지고 대박 정몽준 두팔 걷고 쪽박

이경희330 2009. 5. 6. 23:51

대권 잠룡들 4·29 재보선 손익계산서
박근혜 뒷짐 지고 대박 정몽준 두팔 걷고 쪽박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여의도 정가를 달궜던 4·29 재보선이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 속에 여야 모두에게 ‘민심’이라는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긴 채 끝이 났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진검승부를 펼친 수도권 지역구인 인천 부평을에서 ‘MB정권 심판론’을 내세워 승리했으나 계파 갈등으로 텃밭인 호남 지역구(전주 덕진, 완산갑)를 잃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 역시 수도권은 물론 안방 격인 경주마저 친박 무소속 정수성 후보에게 내주며 ‘5 대 0’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쥐게 됐다.

이번 재보선은 여야의 싸움을 넘어서 ‘대권 잠룡’들에게도 치열한 전쟁터였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친이 VS 친박’ 성격의 경주대첩에서 ‘간접적’ 승리를 거둔 반면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원사격’에 나섰던 울산 북구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또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자신의 이름값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화려한 귀환’에 성공했고, 잠행을 깨고 수도권에서 백의종군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역시 부평을의 승리로 정계복귀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성과가 이들 잠룡들의 머나먼 대권가도에 약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상황. 잠룡들의 재보선 손익계산서 그 앞면과 이면을 들여다봤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재보선을 통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또 한 번 과시했다. 경주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박’ 정수성 후보가 ‘친이’ 정종복 후보를 예상외의 큰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된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수성 후보는 5만 1545표(45.88%)를 얻어 4만 982표를 얻은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36.48%)를 9.4%p(포인트) 앞섰다. 일각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패한 것보다 아픔이 더 크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한나라당 주류가 입은 내상은 심각하다.

‘박 전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 하나로 이끌어낸 정수성 후보의 승리는 고스란히 박 전 대표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박 전 대표로서는 직접적인 지원을 하지 않고도 얻은 결과이기에 그 열매가 더 달 듯하다. 한 정치분석가는 “박 전 대표는 공개적으로 정수성 후보를 지원하지 않은 채 이번 재보선에서 사실상 뒷짐만 지고 바라만 보았다. 그럼에도 정수성 후보가 압도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박 전 대표의 위력을 다시 한 번 과시한 셈이다.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도왔다면 그 효과는 오히려 덜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재로 존재를 증명했다’는 일각의 평가가 박 전 대표의 위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

박 전 대표가 정수성 후보를 위해 ‘나서지’ 않은 것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득보다 ‘한나라당 당원’인 박 전 대표가 ‘지지’를 표함으로써 돌아오게 될 부담이 더 컸다는 계산. 선거 기간 중 불거진 정수성 후보의 후보사퇴 종용 논란과 관련해 “우리 정치의 수치”라는 한마디로 자신의 의중을 넌지시 내비친 것 또한 ‘선거의 여왕’다운 순발력이었다는 평가다.

한 친박 인사는 “사실 팽팽한 대결을 예상했었는데 정수성 후보의 낙승은 기대 이상이었다. ‘영남 수장’으로서의 박 전 대표의 위상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고 평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재보선을 통해 이상득 의원의 입지를 축소시킨 ‘덤’까지 얻게 됐다. 당분간 한나라당 내 차기 대권주자 경쟁에서도 박 전 대표의 위상을 흔들 만한 ‘사건’이 일어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하지만 재보선의 침묵 행보로 박 전 대표에게 ‘득’만 남은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계파 수장이나 영남 맹주로서는 자신의 영향력을 다시 과시한 셈이지만, 작은 이익을 위해 재보선에서 뒷짐을 진 것으로 비칠 수 있어 전국정당인 한나라당의 리더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점수를 깎인 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받은 재보선 성적표는 박 전 대표의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0패’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인 한나라당은 특히 부평을과 울산 북구에 전력을 집중시켰다. 이 가운데 울산 북구는 당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단일화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한나라당이 내심 기대를 걸었던 곳. 하지만 양당의 후보단일화가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한나라당의 힘겨운 싸움이 예상됐다. 선거 하루 전인 4월 28일 폴리뉴스·모노리서치의 공동조사에서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가 44.3%의 지지를 받아 한나라당 박대동 후보(32.6%)를 11.7%p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선거 결과 역시 완패에 가깝다는 평이다.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는 2만 5346표(49.2%)를 얻어 한나라당 박대동 후보(2만1313표, 41.37%)를 7.83%p 차로 제치고 승리했다.

울산 북구의 패배로 깊은 내상을 입은 이는 다름 아닌 현지에 살다시피 하며 박대동 후보에 대한 지원유세에 나섰던 정 최고위원. 그는 사실상 이기기 어려운 싸움판에 나서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역으로 박대동 후보가 이기거나 적어도 박빙의 승부를 펼치기만 했어도 정 최고위원에게 수훈이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정치분석가는 “박근혜 전 대표와 비슷한 상황에서 박 전 대표는 아무런 한 일도 없이 최대한의 이득을 취한 반면, 정몽준 최고위원은 노력에 비해 잃은 것만 많다”고 평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번 재보선 결과를 두고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친이 주류 측에서는 친박 세력이 부상할 수 있는 ‘악조건’에서 지도부 퇴진론이 불거지는 것은 득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정 최고위원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중을 밝힌 바 있지만 당 지도부가 재보선 후유증으로 인해 당장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 하지만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대권주자로서의 도약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득 의원의 입지 축소로 인해 이재오 전 최고위원으로 친이계의 축이 넘어갈 경우 정 최고위원의 위상은 더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몸을 낮추고 있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재보선 후폭풍 속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그 기회가 호기로 다가올지는 미지수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은 4·29 재보선 참패로 인해 인적 쇄신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그간 현실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있던 이 전 최고위원으로서는 컴백의 기회를 맞은 셈. 실제로 그는 오는 10월 서울 은평을 지역에서 재보선이 실시될 경우 출마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친박세력과의 껄끄러운 관계 등 걸림돌도 적지 않아 이 전 최고위원의 컴백 방법 및 시기를 둘러싼 여권 핵심부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재보선에서 계파 싸움으로 인한 출혈을 보였다면, 야권에서도 심각한 계파 갈등이 재연됐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공천 문제로 ‘정 VS 정’ 대결을 벌이며 정치무대에 복귀한 정동영 전 장관은 이번 재보선에서 ‘최대한 얻을 수 있는’ 점수를 받아냈다는 평가다.

정 전 장관은 자신의 승리뿐 아니라 ‘무소속 연대’를 결성한 전주 완산갑 무소속 신건 후보의 동반 당선까지 이뤄내는 값진 결과를 얻어냈다. ‘전북맹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해 세력화를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 전 장관은 화려한 컴백을 한 셈. 또한 호남에서의 두 석을 모두 빼앗으며 현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심판론을 불러왔다는 점도 이득이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이 대권주자로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다시 마련하기까지는 아직도 가시밭투성이라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민주당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 전 장관이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는 점은 그의 향후 정치행보에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탈당과 선거 과정에서 더욱 깊게 패인 당 주류 측과의 앙금도 암초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정 대표와 주류 측은 정 전 장관과 신건 당선자의 복당 문제에 대해 ‘원칙론’을 고수하면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어 복당을 둘러싼 당 내홍을 어떻게 수습할지도 정 전 장관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정세균 대표는 이번 재보선 최대 승부처였던 인천 부평을과 경기도 시흥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등 갖가지 악재 속에 전패 위기감마저 감지된 상황에서 수도권 2곳을 모두 승리해 일단 ‘책임론’에서 벗어난 게 최대 수확이고, 당을 재정비해 대권가도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텃밭인 전주 지역 2곳을 모두 무소속(정동영·신건) 후보에게 내줌으로써 호남맹주 및 ‘포스트 DJ(김대중 전 대통령)’ 전초전에서 정 전 장관에게 완패를 당했다는 점은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민주당의 한 축인 호남맹주 자리를 선점하지 못할 경우 당 대표로서 입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고 ‘대망론’에도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호남 민심을 잡아야 하는 당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정 전 장관의 복당 문제도 암초다. 전북 민심을 등에 업고 당선된 두 사람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복당을 허락할 경우에는 지도력에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형국이다.

당의 요청으로 재보선 지원유세에 나섰던 손학규 전 지사의 역할론도 힘을 얻고 있다. ‘손 전 지사를 움직이게 한 것은 지도부가 아닌 정동영’이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당의 위기상황에서 구원 요청을 받아들인 손 전 지사의 자세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 많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지난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손학규 전 지사의 정계 복귀와 관련해) 당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당을 위해 옳은 길”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경기 부평을에서의 민주당 승리는 손 전 지사의 공이 크다는 평가가 높다. 선거기간 내내 부평 을과 시흥시장 선거에 전력투구했던 손 전 지사는 두 지역 모두에서 승리를 가져오며 민주당의 ‘0패’를 막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호남에서 모두 패했지만 부평에서 승리하며 체면을 세운 것 아니냐. 정세균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앞으로 손 전 지사와 손을 잡고 가야 한다는 필요불가결성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배지를 되찾은 정동영 전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의 계파 다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반면, 손 전 지사는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며 관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점도 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 못지않은 최대 수혜자는 손학규 전 지사다. 당내 주류로부터 정세균 대표 체제가 흔들릴 경우 손학규 전 지사가 대안이 될 수 있는 확고한 입지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 희생하는 이미지를 보여준 손 전 지사는 당분간 나서지 않고 10월 재보선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춘천으로 돌아간 손 전 지사는 민주당이 재보선 후폭풍을 거치는 동안 차분히 ‘공식 컴백시기’를 가늠해보는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