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남아공 월드컵 8강 진출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지난 23일 [한국-나이지리아] 조별 3차 예선전 결과 ‘대한민국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16강 진출의 환호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런저런 착잡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경기가 끝난 직후 가진 ‘공식기자회견 인터뷰에서’ 허정무 감독이 ‘병역 혜택’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캡틴 지성’ 또한 ‘병역 혜택’을 말했기 때문이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축산업협동조합과 오해 없으시길 : 글쓴이 주) 회장 역시 ‘병역혜택’에 관한 안건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역설했기 때문이다.(아래 기사 참조)
잔치상 단골메뉴 병역면제 - [출처] 한겨레 인터넷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427164.html
이러한 논란이 벌어진 것은 “우루과이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 배경이다.
허정무 감독의 ‘병역 혜택’ 논리는 이러하였다.
“16강 진출은 해외파 선수들이 큰 도움이 됐다.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공로가 상당하다.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서 뛰고 싶어 하지만 병역 문제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융통성을 발휘해 선수들이 나중에 공익근무로 병역을 대체한다든지 하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캡틴 지성’의 ‘병역혜택’ 논리는 이러하였다.
“원정 월드컵 16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했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계속 강팀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선 (병역 혜택이) 필요하다”
조중연 축협회장의 ‘병역혜택’ 논리는 이러하였다.
“병역 면제가 선수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공식적으로 정부에 건의하겠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좋다. 다 좋다. 대한민국 축구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들, 아주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다. 그런데, 이것 하나, 나는 몹시 궁금하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박지성, 김남일, 이영표, 차두리, 안정환 등이 ‘병역혜택’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논리대로라면, ‘병역혜택’을 받았으니 지금쯤 그들이, ‘세계적 스타플레이어급’이 되었어야 하지 않은가? 또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 어떤 팀과 붙었어도 프로페셔널한 플레이를 펼치며 발굴의 기량을 발휘했어야 하지 않은가? 어떤가? 정말, 솔직히 심장에 손을 얹고 한 번 이야기 해 보자.
미안하다. 내가 워낙에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 자체에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박지성 외에는 그다지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급으로 성장한 선수가 없다고 보는데, 8년이라는, 요즘 군대복무 기준으로 3번은 입.제대를 할 무궁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내 기억으로 2002년 이전까지는, 축구선수 혹은 축구선수 출신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온 것이라고는, 내 학창 시절 박치기왕 김일과 더불어 막연한 우상이었던 차범근씨가 우유광고에 나왔던가 하는 것 밖에는 기억이 없다. 그런데, 그 이후, 2002년 월드컵 이후, 당시 ‘병역혜택’을 받았던 선수들의 행보는 어떠한가. 일단의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였음은 물론 포상금에 연금에 광고출연 혹은 지도자코스 등 수많은 메리트를 가지게 되었지 않은가.
부디 나의 오해이기를 바란다. 현재 불거지는 ‘병역혜택’ 논란이, 기득권을 가진 선배들이 의리상 후배들을 챙겨주는 것이 아니기를. 아니면, 선배들의 기득권의 전철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후배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어서가 아니기를. 아니면, ‘축구선수하면 이렇게 인생 풀린다.’라는 것을 자라는 새싹들에게 강력하게 각인시켜 주고자 하는 어떤 멍청한 인간들의 발상이 아니기를.
비판(합리적. 객관적)과 비난(즉흥적. 감정적)을 구분하자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한 히딩크가 말했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그때,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나마저, 그때 히딩크의 포효를 들으며 전율을 느꼈다.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벅찬 감동이었다. 하여, 한 번 물어보자, 2010년 태극전사들이여! 그대들, 아직 배가 고픈가? 벌써 고픈가? 이제 16강에 진출하였을 뿐인데, 그것도, 솔직히 말해서 실력으로써가 아니라, 소위 말해서 ‘손 안대고 코 푼’ 격인 어부지리로, 힘겹고도 어렵게, 간신히 무승부를 기록하여 16강 진출을 한 그대들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한다는 말들, 마치 서로 사전에,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아예 작정하고 서로 입을 맞춘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나오는 한 목소리의 언어들, 그대들 진정 배가 고픈가?
그렇다 치자, 그래, 그대들의 ‘병역특례’에 관한 논리들, 맞자고 하자.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02년 월드컵 4강에서 축구선수들에게 ‘병역특례’를 주었다. 하여, 2006년 처음 열린 세계야구클래식(WBC)에서도 4강에 진출한 야구대표팀에게도 병역 혜택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러면 다른 종목은?” 하면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하여, ‘병역특례’에 관한 규정을 2007년 말 아예 폐지했다. 현재는 올림픽 금·은·동메달과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에게만 병역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데, 다시 뜯어 고치라고, 법을, 그것도 이 허리 잘린 한반도에서 가장 민감한 병역법을? ‘신의 자손’들만이 감히 누릴 수 있다는 그 ‘병역혜택’을? 그대들, 태극전사들을 위하여? 그러면, 이후 또 다시 불거질 ‘형평성’ 논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또 폐지하고? 또 만들고? 또 폐지하고?... ...하란 말인가?
걱정마라, 태극전사들이여!
그대들은 군대에 가도 어차피 체육부대이다. 상무팀 소속의 축구선수이다. 훈련 열외다. 비행기 타다 떨어지고, 헬기 타다 꼬나 박고, 군함 타다 두 조각 나고, 탱크 타다 엎어질 일일랑 하늘이 두 쪽 나도 결코 없다. 그대들은 군대 가도 그저 열심히 공만 차면된다. 이러한 그대들의 갈 길에 누군가 매우 염려를 한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사회라 제 실력이 안 나올뿐더러 실력이 쌓이지도 않는다.”라고. 역시 걱정마라 그대들. 그렇다. 대한민국 군대가 친일군대의 전통을 이어 받아 엄격한 상명하복에 약간의 구타 혹은 욕설 같은 것들이 아직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이 지금껏 어려서부터 축구부에서 배운 상명하복 혹은 그 무지막지한 운동부의 살인적인 구타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이제 군대 갈 나이면 인생 한참이다. 까짓 거 2년 군대 갔다 온다고 실력 줄지 않는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혹여 군대 2년 갔다고 줄어들 축구실력이라면, 내 감히 충언하건데, 일찌감치 대학에서 학위 열심히 따서 지도자 코스 밟으라. 그리고, 이것은 국내에서, 우리끼리만 해야 할 이야기이지, 혹여, 외국에 나가서 20대 중.후반 혹은 30대 이상의 프로들에게는 입도 뻥끗하지 마라. 욕먹는 것은 둘째 치고 쪽팔리니까 말이다. 특히, 섹스하다가도 전쟁나면 바로 침대에서 뛰쳐 나간다는, 축구 시합 중에도 전쟁나면 바로 보따리 싸고 조국으로 돌아가 총을 잡는다는 이스라엘 선수들 앞에서는 제발 부탁인데, 우리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해 달라.
그리고, 한 마디 더하자면 그렇다. 감투라는 것 혹은 상이라는 것은, 본인들이 먼저 나서서 달라고 하는 것 아니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생각한 다음에 알아서 주는 것이다. 하나 더, 그대들이 외국에 자주 다니다 보니 코쟁이들 어설픈 생각에 물들어서 그런가 본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매우 합리적이다. 그대들이 진정 최선을 다하고 혼신의 열정을 보여주면, 그대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론이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 16강 진출의 상황을 헤아려 보라. 그대들이 지금껏 보여준 플레이를 보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밤을 꼴딱 새워가며 온 나라가 빨간 티를 입고 방방곡곡에서 외치며 보여 준 가슴 터지는 뜨거운 열정의 응원에 과연 부응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가? 정말, 그런가?
‘캡틴 지성’, 그대는 우리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로마공화정 말기, 허울 좋은 자리의 집정관 안토니우스 위에, 로마의 실질적 통치자인 종신 독재관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있었다. 그가 정적들에게 암살당하는 자리에, 14명의 암살범들 중에 자신이 그토록 총애하던 카시우스 롱기니우스 부루투스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를 옥타비아누스에 이어 두 번 째 후계자로 유서에 남겨 놓았다. 그런데, 그런 부루투스가 자신을 향해 칼을 찌르는 것이었다. 그때, 카이사르가 외친 말이 그것이다. “부루투스, 너 마저도... ...”
물론 나는 카이사르가 아니다. 역시 그대도 부루투스가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은 ‘신뢰’이다.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그대, 이미 그대는 ‘박지성’이 아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이요 미래의 한 지표이다. 더 없이 우울하고 짜증나는 이 모진 시대를 살아가는, 가진 것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의 청량제이다. 그대는, ‘의리를 지키는 축구부 주장’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정대세가 ‘인민 루니’ 이듯, 그대는 우리들의 ‘캡틴 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스포츠 스타들의 과도한 광고출연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마저도 그대의 전천후 광고에는(오늘, 6월 25일자 한겨레신문의 <롯데백화점>.
그대의 입에서 나온 ‘병역특례’, 여러 여건상, 상황에 떠밀려 한 말이라 믿고 싶다. 2002년의 대한민국 정치상황과 2010년의 정치상황을 혼동하지 않는다 믿고 싶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라는 말을 결코 그대에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대가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면, 위안 삼으라. 그대는 시대와 사람을 정말이지 절묘하게 잘 만난 것이다. 그러한 그대의 천운(天運)을 그대의 후배들에게 모두 누리게 하려 하지 마라. 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대가 가진 ‘캡틴 지성’의 상징성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대, 8강 진출전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껏 만큼만 뛰어주길 바란다. 묵묵히, 우직하게, 바지런히, 당차게 뛰어서 우리 대한민국이 운이 좋아서 16강 진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인들에게 꼭 보여주기 바란다. 그리고, 바란다, 진실로, 그대에게. 16강까지 오면서, 기도도 드렸고, 아기도 얼렀으니, 다음 골세레모니는, 남아공 경기장에 자랑스럽고 힘차고 당당하게 태극기를 휘날려주기 바란다. 더불어, 가여운 우리조국,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허리 잘린 한반도를 위하여, ‘인민 루니’가 끝내 못해낸다면, ‘캡틴 지성’이 ‘조국통일 세레모니’를 마저 완성시켜 주기 꼭 바란다.
베를린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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