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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사랑스러운 국가가 아니라 사랑을 강요하는 국가다

이경희330 2010. 5. 25. 11:36

나는 순진한 국민이 되기로 해본다. 지극히 순박한 눈과 귀를 가진 이가 되기로 해본다.

 

주어가 없어서 결백한 전과 14범이 그 수장으로 있는 정권의 주장을 믿기로 한다. 대운하를 파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 그대로 대운하사업 대신 4대강정비사업을 하는 대통령의 신의를 믿기로 한다.

 

벙커로 기어들어가 국민들은 그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말을 숙덕거린 군 면제자들의 말을 모두 믿기로 한다. 행방불명으로 국방의 의무에서 도망친 자가 떠드는 안보의 중요성에 십분 공감하기로 한다. 정권으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받는 신문방송사가 하는 말을 의심치 않기로 한다.

 

수많은 말바꾸기와 현장 은폐, 예고없이 지연되어온 진상규명, 숱한 보도 통제에 대해 나는 궁극적으로는 모두 국민을 위해서, 혹은 선의의 실수로, 그것도 아니면 국익을 위한 고도의 전술에 의해 그런게 아니었겠느냐 하며 넘어가기로 한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도 하필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과 군과 합동조사단에 대해서도 나는,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과 상관없이 정말 그저 사실을 발표한 것일 뿐이라 믿기로 한다.

 

왜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도 자유롭게 부르지 못하는 5.18 30주기 다음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이틀 전에 났는지에 대해, 나는 순진하게도 정부는 확실한 결과가 나오는데로 국민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싶었고, 그게 마침 5월 20일이었다고 믿기로 한다.

 

'결정적 증거'인 "1번" 앞에 있었다는 원래의 두 글자는 왜 없는지, 왜 '1번'만 덩그라니 남았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취향이 독특한 물고기가 혓바닥으로 특정 부위만 오랄을 해서 없앴겠거니 하며 그러려니 하기로 한다. 그게 아니라면 왜 '385-07번'도 '좃선 941호'도 아니고 딱 "1번"인지에 대해, 해당 모델 중에서 사상 최초로 생산되었겠거니 하기로 한다.

 

왜 빨갱이들이 군 보급품의 일련번호를 금속을 파내지도 찍지도 않고 파란색 유성매직으로 기재했는지에 대해 나는, 뭐 가난해서 그랬겠지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북한이 검열단을 파견하겠다 할 정도로 억울해하고, 전면전을 언급할정도로 발끈하는 것을 보며, 나는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않고 그냥 빨갱이들이 내미는 뻔뻔한 오리발에 분노하기로 한다.

 

결국 가해자가 북한이었다면 왜 수치스러운 패배가 애국으로, 전투에 패배한 전몰 장병이 구국의 영웅으로 치장되어야 하는지 나는 따지지 않기로 한다. 왜 패전의 책임을 묻는 군사재판이 열리지 않는지 의심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국군장병을 향한 가카의 애정과 관대함에 놀라기로 한다.

 

나는 조국과 가카를 사랑하기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심에 허우적거리고 분노에 매몰되며 공포에 질식하고 말 것이기에. 그리하여 애국은 연애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우리가 국가를 사랑하게 만들려면, 국가가 사랑스러워야 한다."

- 에드먼드 버크, 1729~1797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은 사랑스러운 국가가 아니라 사랑을 강요하는 국가다. 나는 이 국가를 도무지 자발적으로 사랑하지 못하겠다. 나는 사랑에 빠진 국민이 아니라, 사랑을 빙자한 강간에 희생된 국민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파렴치한 범죄로도 모자라 이왕 이렇게 됐으니 나더러 자기를 사랑하라고, 아니 사실 나는 이미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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