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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만큼 깨끗한 조직이 어디 있느냐."

이경희330 2010. 5. 18. 10:29

<긴급출동 SOS 24>의 열성 팬들 가운데는 좀 색다른 부류가 있다. 다름아닌 제작진의 탐구대상이요 아이템이요 일용할 양식의 밑천인 가해자들이다.  허구헌날 술 퍼먹고 가족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가장이 방송일만 되면 술도 안 먹고 방송에 열중한다는 건 이제 제작진 내에서 가쉽거리도 안된다. 통계를 낼 수야 없겠지만 대체적으로 우리가 지켜봤던 가해자들의 대부분은 자신들과 비슷한 부류가 출연하여 브라운관을 횡행하는 풍경을 매우 즐겨 지켜보고 있었다.  

저윽이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종의 유유상종의 연대감의 표현일까?  세상에 저런 인간이 나만 있는 건 아니구나 안도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방송을 보고 배우고 때로 익히려는 것일까? 여러 썰들이 분분하지만 확실히 내가 아는 한 가지는 이 달갑잖은 열성팬들이 자신을 닮은 가해자들을 향해 열렬하고도 험악하게 욕설을 퍼붓는다는 것이다.

 

밥상 뒤엎고 아내에게 칼 들이민 몇 분 뒤 방송을 보면서 "(방송에 나오는) 저런 나쁜 새끼들은 다 죽여 버려야 돼."라고 흥분하는 모습은 내 눈으로 보았거니와, 지적 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려먹던 어떤 인사는 내가 자신을 몰래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 뭐야 SOS인가 하여간 거기 나오는 사람들 보면 참.....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라고 장탄식을 하여 앞에 섰던 내 간을 콩알의 반쪽으로 만든 적도 있다.  

 

심리학적인 분석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는데 하여간 가해자들은 그렇게 당당하다. 가족들을 짐승처럼 짓밟는 가장이 방송을 보면서는 "저 나쁜 새끼"를 부르짖으며 아내에게 퉁을 친다.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는 저런 또라이가 아니어서." 거기까지는 괜찮다. 자식새끼 앵벌이 시켜놓고 지는 게임방에서 밤을 지새는 인간이 "그래도 나나 되니까 애를 키우는 거지요. 안그러면 어디 시설에 보내 버리지."라고 어깨에 힘을 주는 모습을 보면 어울리지 않는 장갑이라도 끼고 좌우양훅을 날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동네에서 온갖 해꼬지를 다 해 놓고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노라" 부르짖는 '동네 또라이'를 상대하다 보면 혈압강하제를  상비약으로 갖고 다녀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의구심에 동료들의 의견을 물어 봐도 딱히 뾰족한 답은 없다. 그냥 천성적으로 남 탓하기 좋아하고 자기 허물은 볼 줄 모르는, 양심의 가책보다는 자기 합리화에 더 충실한 '인간의 바닥들'이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어정쩡한 합의에 이를 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쟤들보다는 낫다."는 얄팍한 자존심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기울일 뿐이다. 

 

어쨌든 겨 묻은 개 꾸짖는 똥통에 빠진 개들과 유사한 심리, 제 눈에 들보는 못보면서 남의 티끌은 귀신같이 보는 인간 이하의 존재는 그렇게 '바닥'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어제 비슷한 광경을 바닥 아닌 당상에서 보았다. 당상관 중에서도 대사헌급인 김준규 총장님의 옥음을 들으면서 정말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검찰만큼 깨끗한 조직이 어디 있느냐."    

 

 


한 조직의 기강을 세우고 조직원들의 일탈을 감시해야 할 감찰부장의 이름이 '스폰서'의 장부에서 빛나고, 장구한 세월 그 조직원들이 공짜밥 먹고, 공술 먹고, 가끔은 허리 아래도 살가운 배려를 받았다는 의혹이 만천하에 수놓아진지 며칠 안되는 그런 조직의 수장께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도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머리를 가눌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걸 "그래도 응? 우리가 세무공무원이나 응?  경찰보다는 나아 응?" 이라고 자존심을 세우시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하도 남의 티끌만 보다보니 자기 눈의 들보는 못보는 선택적 시각장애에 걸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느 쪽이든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방송을 보는 가해자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던 아내의 심경을 처절하게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방송에 나오는) 저런 나쁜 새끼들은 다 죽여 버려야 돼."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 아내의 머리는 얼마나 지끈거렸을 것이며 오죽이나 혼란스러웠을 것인가. "넌 다행인 줄 알아 내가 저런 또라이가 아니어서."라는 축복(?)을 들을 때는 어제의 나처럼 퍼질러 앉아 비오는 날 미친넘처럼  웃고 싶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개콘의 행복 전도사가 되어 방방 뛰어다니고 싶다. 얼마나 좋은가.   세계에 내놓아도 자랑스럽게 깨끗한 검찰 조직을 우리의 수호자로 두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검찰총장 스스로 우리만큼 깨끗한 넘들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며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 아 행복하다. 그런데 표정들이 왜 이럴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설교하는 이근안 목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아니 표정들이 왜 구릴까.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어"를 부르짖는 동네 또라이를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처럼.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