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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인수전 ‘보이지 않는 손’ 누군가?

이경희330 2010. 12. 30. 09:28

   
▲ 정몽구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움켜쥘 뻔했던 현대건설의 새 주인 자리가 현 회장을 떠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가까워졌다.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우선협상대상자 양해각서(MOU)를 해지하고, 현대그룹은 법원에 현대차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및 본 계약 체결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 법원 판단이 남아 있지만 현대차가 우위를 점했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M&A(인수·합병) 때마다 등장했던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이번 현대건설 인수전에도 제기되고 있어 재계를 달구고 있다.

지난 11월 16일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난 후로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이 현대건설 인수 능력과 관련된 여러 논란에 휘말려야 했다. 그중 현정은 회장의 머리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나티시스은행 대출금 1조 2000억 원과 관련한 것이었다.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나티시스은행으로부터 어떤 조건으로 이 자금을 대출받았는지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됐으나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대출계약서 제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채권단은 지난 12월 21일 현대그룹과의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 양해각서(MOU)를 해지하고 매각 협상을 중단했다. 이로써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가능성이 부쩍 높아진 상태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전까지 자금력에서 월등히 앞서는 현대차그룹의 우세를 점치는 시각이 많았지만 채권단은 입찰가를 더 높게 써낸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당시 현대그룹이 제출한 현대상선 프랑스법인 예치금 내역은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MOU 해지를 이끈 채권단을 향해 “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때 더 꼼꼼하지 못 했나”란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채권단이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현대건설 매각 협상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배경을 외압과 연결시키려는 시선도 많아지고 있다. 역대 대형 M&A 때마다 권력층 입김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건설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현대그룹 쪽이 특히 강한 의혹을 제기한다. 지난 12월 22일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이번 인수전은 짜여진 각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외압설은 사실 현대건설 인수전 막판에 현대차그룹이 뛰어들 때부터 예견돼 온 일이기도 하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직을 지낸 정몽준 의원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친동생이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 22.14%를 갖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 의원이 현정은 회장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 4월 현대그룹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이 현대그룹을 재무구조 개선약정 대상으로 결정하면서 배후에 여권 고위인사가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이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다.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라 이 인사와의 관계가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뒤집고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권력층 주변에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색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직후 청와대 핵심인사가 사석에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금액을 감당해낼 수 있겠느냐”란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현대차(5조 1000억 원)보다 4100억 원 높은 5조 5100억 원을 써낸 현대그룹이 과연 뒷감당을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었다. 이 인사는 채권단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기준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내놓았다고 한다.

채권단이 현대그룹과의 MOU를 뒤집는 데 한몫을 한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과거 ‘친이’(친 이명박) 성향의 정치 노선을 걸었던 점 또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재무 관료 출신으로 재경부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유 사장은 지난 2008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대구 달서 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그를 꺾은 상대는 친박연대 소속이었던 조원진 의원. ‘친박’(친 박근혜) 바람이 거셌던 대구에서 친이 세력 지원을 받아 친박 후보와 맞대결을 펼쳤던 유 사장은 낙선 이후 한나라당 정책실장이 됐고 2009년 한국정책금융공사 초대 사장직에 올랐다. 유 사장의 전문성은 높게 평가받았지만 경북고 출신 TK(대구·경북) 인사인 데다 총선 출마 전력 탓에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친 MB’ 성향 인사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는 점도 재계의 시선을 끈다. 2010년 초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된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정책자문단 출신이다. 이 자문단 출신 인사들은 금융권에서 일정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사외이사인 박진근 연세대 명예교수와 우리금융 사외이사인 이두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두희 교수는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재풀 중 하나인 소망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이 교수는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남편이기도 하다. 숙명여대 교수인 박 전 수석은 현 정부 초기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으로 임명됐다가 논문 표절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80여 일 만에 사퇴한 바 있다.

2009년 초 현대제철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된 오정석 서울대 교수는 부총리를 지낸 오명 건국대 총장의 아들로, 이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둘째사위이기도 하다. 50~60대로 구성된 현대제철 사외이사진에 1970년생인 오 교수가 2009년 39세 나이로 합류하면서 파격 인사라는 평이 따르기도 했다.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현대그룹 역시 외연 넓히기에 공을 들여왔다. 현대그룹은 지난 3월 대북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 대표이사로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인 장경작 전 롯데그룹 호텔부문 총괄사장을 영입했다. 현 회장 측이 정치권과 정보기관 유력인사와 친분을 두텁게 다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재계 정보통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런데 현대그룹이 권력층 인맥 덕을 봤다는 이야기가 딱히 들려오질 않는다. 장경작 사장의 경우 이 대통령과 친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대통령과 동기동창이라는 것 외엔 아무 관계도 없다”며 극구 부인해왔다고 한다. 이명박 대선후보 정책자문단 출신으로 현대증권 사외이사였던 박요찬 변호사는 현대그룹 재무약정 대상 발표가 나기 한 달 전인 3월 23일 사외이사 임기 1년 2개월을 남겨놓고 일신상 사유로 퇴임했다.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은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의 경북고-서울대 선배지만 유 사장의 현대그룹을 향한 날선 공격을 막아낼 순 없었다.

재계와 정치권 일각에선 정부 여당과 현대차그룹 간의 관계를 고려한 현대그룹이 민주당 등 야당에 손을 내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간 대결구도가 법정다툼을 넘어 정치권으로 확전될지 두고 볼 일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