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영결식도 마무리되고 이번주에는 '개콘'도 정상적으로 방송된다고 한다. 4천만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대한민국 국민성이라 할 '냄비 근성'대로 한 달이 지나고 월드컵이 막을 올리면 아마 천안함은 까마득한 기억의 저편으로 저물어 갈 것이다. 쌍끌이어선까지 동원해서 바다밑 파편을 수집하겠다는, 소 잃은 뒤 외양간 바닥 뒤지고 있는 국방부의 결연함이 안스럽지만, 눈에 보이는 경제 수치도 괜찮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낼 수 있는 G20이 눈앞인데 "군필즉사(軍畢卽死) 미필즉생(未畢卽生)"의 정부가 천안함 곰탕을 계속 끓여낼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천안함은 그 침몰로써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중에 하나를 든다면 나는 때아닌 공자 말씀 하나를 들겠다. 식(食)과 병(兵)과 신(信) 가운데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면 병을 버릴 것이며, 그 다음에 식이며 마지막까지 남겨야 할 것은 신(信)이라는 말씀이다. 천안함 침몰 이후 대한민국 국방부는 군사 기밀(兵)을 내세웠지만 정작 지켜야 할 군사기밀은 죄 흘려 보내는 가운데 신뢰마저 잃어 버렸다.
없다 했던 동영상이 몇 번 짠 하고 드러난 이래, "두동강 나는 순간의 영상은 없다." 고 국방부가 피를 토한들 '국방부가 아니면 누가 믿으랴" 하는 우렁찬 노래에 묻힐 뿐이었다. 조선일보에 초계함 내부도(탄약고와 포탑, 승무원 위치까지 충실히 기록된)가 자료로 전시되는 마당에, 북한에 미국에 중국에 암초에 심지어 대왕오징어까지 출몰하며 국민들의 시야를 현혹시키는 판에, 기밀과 신뢰 가운데 사수해야 할 것은 과연 어느쪽이었을까.
또 하나 천안함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샴 쌍둥이의 실체를 발가벗겨 놓았다. 샴 쌍둥이 가운데 낯익은 한쪽은 '인간어뢰'론으로 세계 만방에 웃음을 선사하고 ,세상에 바다 속을 헤엄쳐 와서 배를 동강내고 도망친 슈퍼맨 부대가 북한에 있다고 우긴 바 있다. 국가보안법 상 고무 찬양죄가 아직도 살아 있는데 어쩌면 저렇게 태연하게 입에 침 하나 안 바르고 북한을 고무 찬양할 수 있는지, 안보 기능 강화했다는 국정원은 이렇게 월급을 축내도 되는지 모를 일이다.
더욱 안된 것은 "북한의 아무개가 이런 말을 했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이 로이터 통신의 권위를 가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풍경이었다. 국정원도 모르겠고 국방부도 고개를 흔드는데 일부 탈북자 단체나 그 매체들의 민간 스파이망(?)은 경악할만한 것이었다. 국정원은 이런 인재들을 스카우트하지 않고 뭘하는지 땅을 치다 주먹 깨질 일이다.
뭐에 맞았는지도 모르고 누가 때렸다는 증거도 없는 판에, 이 반쪽이들은 그 범인이 "북한"이라고 우겼고 보복해야 한다고 팔뚝을 걷어 부쳤다. 심증만 가지고 사람을 잡는 것은 5공 시절의 막무가내 경찰도 조심하던 행태이지만 이 반쪽이들은 YS의 무식함과 전두환의 뻔뻔함을 체화한 듯 북한이 범인이며 북한이 범인임을 부인하거나 의심하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악을 썼다. 심지어 제한적인 전쟁은 경제에 별 문제 없다는 심각한 망상장애까지 선보였다.
문제를 풀어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내놓고 풀이를 그에 끼워 맞추려고 용을 쓰는 이들을 두고 경상도 사투리로는 "디비 쫀다"라는 표현을 쓴다. 이 반쪽이들은 천안함이 물밑으로 들어간 이래 계속 디비쪼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씹어돌린 반쪽에서 또 다른 반쪽으로 넘어가 보자. 등은 착 달라붙어 있으면서도 이 쌍둥이의 반쪽은 항상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기에 자신은 다른 반쪽과는 종자부터 다르며 때로는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착각을 하기도 하지만, 샴 쌍둥이에게 동시에 유전된 '디비쪼기'는 또다른 반쪽이에게서도 적잖이 발견된다.
이 또 다른 반쪽이가 내놓은 답은 조금은 다양하지만 결국 내놓고 싶어하는 답은 하나다. "북한일 수 없다" 또는 "북한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선 "전지전능"에 가까울 정도로 북한을 고무찬양하던 반쪽이와 정반대로 "전지전능"한 미군과 한국군의 방어망이 강조된다. 이지스함이 판을 치고 수만의 병력이 눈 부릅뜨고 지키는 서해 바다에서 어떻게 어뢰 씩이나 쏘고 도망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매우 상식적이다.
그런데 상식은 반론을 허락하는 것이 상식이다. 훈련 중인 미국 함대가 백령도와는 한참 떨어진 격렬비열도 해상에 있었다는 것은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강화도 앞바다에서 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갔다 왔던 인물들이 버젓이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한미해군의 '철통같은 경계'에 대한 일말의 의심을 품지 않는 순간, 그 상식은 상식이 아니게 된다. 이 몰상식의 근거는 다름아닌 이미 나와 있는 답, "북한일 리는 없다." 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잠수함이 천안함과 부딪쳤다는 설도 그렇다. 하필이면 왜 미국 잠수함일까. 수심 30미터 바다에서 높이 20미터가 넘는 핵잠수함이 항진한다는 것은 유아풀에서 박태환이 자유형하는 것보다 더 우스꽝스럽다는 것도 그렇지만, 왜 미국 잠수함이 훈련 해역에서 엄청나게 벗어나서 북한을 자극할 수 있고 자칫하면 해저에 북 긁혀서 타이타닉 꼴 나기 십상인 백령도 앞바다까지 들어와서 악으로 깡으로 천안함을 들이받았을까.
"북한이어서는 안된다"는 답까지는 그래도 1점은 줄 수 있다. 그 의도가 가상한 측면이 있고 실제로 나 역시 북한이 문제의 당사자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북한 킹왕짱"이라는, 이를테면 금강산에서 사망한 박왕자 씨 사건을 두고 "북한 여군의 비상한 사격술"에 감탄하던 그 자세로, "북한 (천안함 뿐 아니라) 미 핵 잠수함 격침시킨 듯" (링크)이라고 기염을 토하는데에 이르면 앞서의 반쪽이가 보여 준 또 하나의 망상장애가 시전되고 있음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농악대에서 신나게 춤추던, "바보 과대표"의 시인이었던 내 동기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나 그는 인간어뢰론자들과 같은 반열에 서 있다.
예측컨대 천안함은 이제 영구 미제의 수순을 밟을 것 같다. 미군이 최초로 언급했던 대로 "함내 문제"로 피로파괴로 인한 침물이라면 목 날아갈 사람 여럿인 대한민국 국방부와 해군이 제대로 풀어낼 것 같지 않고,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는 어뢰 공격이라면 그 파편이 어느 바닥에 널렸는지를 쉽게 찾기도 어렵고, 또 건졌다고 해도 증명하기 어렵고, 증명한다 해도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안함에서 우리가 알아내야 할 것은 그 정확한 원인 뿐만이 아닐 것이다. 미리 답을 내놓고 그에 맞춰 현실을 분석하려던 '디비쫌'을 극복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전개할 수 있게 해 주는 방법 역시 우리가 천안함을 통해 깨우쳐야 할 일이다. 디비쪼지 말자. 문제를 냉철하게 보고 문제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답을 구할 생각을 하되 그 답에 매몰되지 말자. 천안함에 대하여 부치는 마지막 단상이다.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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