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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한국연구재단’과 인문학 소외

이경희330 2008. 12. 29. 22:42
신정부 출범 후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초연구 지원시스템의 효율화 및 선진화, 연구관리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한국학술진흥재단과 한국과학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의 통합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연구지원체제가 분산·중첩되어 연구자들의 편의성과 연구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연구지원기관 통합은 우리나라가 지식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국가 백년대계의 초석이 되는 통합재단은 무엇보다도 학문의 고른 성장과 발전을 담보해야 한다. 또한 어떤 특정분야가 치중되어서도 또 소외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추진 과정과 결과를 볼 때 통합재단의 중립성, 공정성, 전문성의 확보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특히 인문학 분야는 그 학문적 대표성을 보장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립위원회구성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의 시정을 요구한다(문제점과 요구사항은 인문학자들이 모여서 협의한 것임).

먼저 문제점을 살펴보면, 재단명칭과 법안에 학술에 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지난 5월 29일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청회 당시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재단명칭을 학술이란 용어를 포함하여 ‘한국학술·연구재단’으로 요청한 바 있으나 이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법안 내용도 연구개발 지원 중심으로 되어있고 학술과 대학에 관한 지원은 부차적이거나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면, 법안 내용에서 ‘연구개발’이라는 용어는 13회 걸쳐 사용되고 있으나, ‘학술’이란 용어는 4회에 한해서만 사용되고 있다.

둘째, 설립준비위원회 구성은 학문분야별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난 12월 8일자로 교과부에서는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통합에 따른 제반업무를 총괄하고 있으며, 이 준비위원회는 법안 통과와 함께 설립위원회로 운영될 예정이다. ‘한국연구재단 설립준비위원회’ 구성·운영(안)에 따르면 “위원은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 인사를 동수로 구성”한다고 하였지만 위원회에 인문학 인사는 단 1명도 없다.

마지막으로, 연구비 규모면에서 차별적이다. 인문사회계열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홀대는 2009년도 과학기술분야 지원 예산이 30% 증액될 예정인데 비해 인문사회계열 예산은 17% 정도 증액에 그칠 것이라는 데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식하고 정부 차원의 인문학 진흥방안이 나온 것이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 인문학에 대한 학계와 사회적 인식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 ‘시민을 위한 인문학 강좌’ 등이 열띤 호응을 얻으며 이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통합재단 추진과정에서 인문학을 배제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역행하는 일이며 앞으로 확보되어야 할 통합재단의 공정성과 학문의 균형성, 대표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인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시정하기 위해 다음 사항을 정부와 국회 등에 요구한다. 첫째, 통합재단의 명칭을 ‘한국학술·연구재단’으로 할 것. 둘째, 법안 내용에 학술지원의 내용을 보다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대학지원’과 ‘학술단체 지원’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것. 셋째, 설립준비위원회에 인문사회계 인사를 과학기술계 인사와 함께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위원 가운데 인문학 인사 4명을 포함하여 학문적 대표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것. 넷째, 현 정부는 국가 R&D 예산을 지속적으로 늘리기로 한 바, 학문적 형평성과 균형있는 학문 발전을 위해 인문사회분야도 과학기술분야와 같은 정도의 증액을 유지할 것.

인문사회분야와 과학기술분야는 대립적이 아니라 상호 소통하여 공동으로 번영해야 한다. 한국의 기술수준은 이미 세계 10위권에 접어들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는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통섭과 융합이 절실히 필요하다. 역사와 문화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개발과 리더십이야말로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선진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이다. 선진국을 향한 세계적 수준의 연구지원기관 통합과정에서 인문학 분야의 정당한 요구가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김남국 강원대 인문대학장 / 전국국공립대학인문대학장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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