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필상 고려대학교 교수
경기부양정책의 성공조건
정부는 18대 총선이 끝나자 대대적인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선거정국에 발이 묶인 경제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임시국회를 열어 규제완화와 감세정책 등 경제살리기를 위한 각종 법안을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기업투자촉진, 내수확대, 서민생활지원 등 경기활성화 대책을 실행에 옮긴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선거에 미칠 파장 때문에 미루었던 한반도대운하건설도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여 여론수렴을 거친 후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같은 경제살리기 대책에 대해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최근 우리경제는 경기불황이 심화되어 기업도산과 실업이 늘고 국제원자재 가격상승으로 물가불안이 심각하다. 여기에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어 서민경제가 부도위기에 빠지고 있다. 실로 막막한 상황이다.
국민의 신뢰회복 그러나 과연 정부의 정책이 경제를 살릴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있다. 정부는 출범 후 국민 앞에 몸을 낮추고 국내외 경제여건의 어려움을 솔직히 밝힌 다음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여 국민과 함께 경제살리기를 추진해야했다. 그러나 인수위원회의 독선, 특정인맥인사, 결격각료들의 억지 임명 등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 정부구성을 서둘렀다. 이어 현실성이 부족한 선거공약에 얽매여 정제되지 않은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총선을 치루며 집권세력들간에 이전투구의 권력싸움을 벌이며 스스로 분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혼란에 빠뜨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4·9총선은 짧은 기간이긴 하나 이러한 정부의 실책에 대해 심판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200석까지 예상했던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의석수가 153석에 머물렀다. 국민들이 아슬아슬하게 과반을 넘겨준 셈이다. 그동안 잘못을 시정하고 경제를 올바르게 살리라는 채찍과 요구의 뜻이 함께 실린 선거 결과이다. 그렇다면 향후 정치권과 정부가 얼마나 정직하고 올바른 정책을 제시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가에 따라 경제살리기의 성공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지고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을 것이다.
한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정책에 대한 부작용의 우려가 크다. 특히 정부가 핵심적인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규제개혁과 감세정책의 허점이 많다. 정부는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기업의 출자총액제한을 완전히 풀기로 했다. 또 상호출자와 채무보증금지기준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자유롭게 세우고 가공자본(의제자본, Fictitious capital)을 만들어 무한 증식하겠다는 것을 허용하는 조치이다. 현재 우리경제는 국경 없는 무한경쟁 속에서 대기업들이 이끌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들의 손발을 묶었던 정부규제들을 과감히 푸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규제개혁은 중소기업기반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수직적 하청관계이다. 대기업들의 불공정거래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당하는 구조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납품가 후려치기, 발주계약취소, 원가부담전가, 대금지불지연, 기술탈취 등 대기업의 횡포가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경제는 중소기업들의 붕괴와 해외이전으로 산업공동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살아남아 있는 중소기업들도 빈사상태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부도위기의 중소기업이 열 곳 중 네 곳이나 된다. 이에 따라 경제의 고용창출능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실업자가 양산되어 경제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대기업 규제만 풀어주면 어쩌자는 건가?
중소기업과 민생안정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감세정책을 내놓았다. 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년에 3%포인트, 2013년에 2%포인트 내려 20%로 하향조정한다. 연구개발투자 세액공제를 7%에서 10%로 높인다. 또 관계회사의 이익과 손실을 합산해 세금을 부과하는 연결납세제도를 도입해 손실이 나는 회사가 있으면 세금을 덜 내도록 한다. 더 나아가 정부는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물가가 오르면 세금계산 시 그만큼 소득공제를 더 해주는 물가연동공제제도를 도입한다. 논란이 큰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부담도 크게 줄인다. 일반적으로 기업과 개인의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와 소비가 서로 맞물려 살아나는 경제활성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효과 때문에 최근 세계 각국은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세금인하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양극화로 인해 이런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우리 경제는 기업간, 소득계층간 양극화가 심하다. 이런 상태에서 감세정책을 펼 경우 그 혜택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서 투자와 소비가 늘어난다고 보기 힘들다. 대기업들은 이미 대규모의 유휴자금을 갖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에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어도 추가적 소비가 미미한 사람들이다. 이 경우 세수감소로 인해 정부부채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미 300조원이 넘는 정부부채가 더 증가할 경우 정부의 정상적인 재정운영이 어렵다. 이렇게 되면 경제를 살리려는 감세정책이 경제회생을 막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렇다면 정부가 경제를 살리고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면 중소기업 회생과 서민경제 안정이 전제조건이다. 우선 정부는 규제개혁과 감세정책을 펴기 앞서 중소기업활성화 대책부터 내놓아야한다. 대기업 하도급횡포의 근절, 서비스산업육성 등 중소기업기반의 확대, 금융과 기술지원, 인력공급 등 중소기업들이 살아날 수 있는 근본적인 조치들이 절실하다. 이렇게 하여 경제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고용창출능력을 높여야 한다.
다음 실업, 물가, 부채의 3중고로 인해 파탄으로 몰리고 있는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모든 정책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생활필수품에 대한 가격관리, 공공요금동결, 부가가치세 인하 등 갖가지 조치를 내놓고 있다. 또 국민연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빚을 갚는 신용회복대책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정책으로서 타당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 민생안정에 크게 도움이 안된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문제 해결, 자영업활성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부처간 정책조율 경제정책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관료들의 구시대적 편싸움이 심각하다. 최근 경제의 핵심변수인 환율과 금리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당장 수출을 늘리고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환율을 높이고 금리를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리거나 환율을 올리면 물가 불안이 걷잡을 수 없으며, 수출이나 투자증가 효과도 사라진다는 논리이다. 싸움은 이것뿐이 아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국책은행민영화를 놓고 충돌을 빚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산업은행부터 민영화하여 금융시장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획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을 합쳐 대형화부터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부처들이 정책보다는 힘겨루기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되면 고통 속에 헤매는 민생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마치 풍랑을 맞아 표류하고 있는 배위에서 선원들이 편을 갈라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실로 걱정은 향후 국정이 여야대결이나 계파간 권력투쟁으로 정치 혼란 속에 빠져 다시 5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회복불능의 상태로 쓰러지고 만다. 그렇다면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여 권력을 행사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아픔을 몸으로 느끼며 헌신하는 진정한 머슴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제를 살리는 정책의 생산과 조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인위적인 부양정책을 펴는 것은 금물이다. 우리경제는 양극화가 구조화된 상태에서 투기거품이 많아 내면적 불안이 큰 상태이다. 여기에 금융불안과 원자재대란이 밀어닥치자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경기 불황이 심화되어 실업이 늘고 물가상승이 통제 불능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추경을 편성하거나 금리를 낮추고 환율을 올려 억지로 투자와 수출을 활성화시키려 한다면 이는 물가와 투기 거품을 확대하여 경제를 더 어려운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한반도대운하건설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운하건설의 타당성 여부를 무시하고 선거공약실천과 경기부양차원에서 무조건 추진할 경우 환경파괴는 물론 경제를 되돌리기 어려운 거품경제로 만들 수 있다. 실로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마음은 타고 있다. 경제는 살아나지 않고 민생은 불안하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권력투쟁의 수렁에 빠지고 경제부처들은 주도권 싸움에 여념이 없다. 정치권과 정부는 총선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경제살리기에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