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이 17일 한국경제가 IMF사태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 이미 붕괴국면에 진입했다며 정부가 즉각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필상 "주요산업이 식물상태에 빠지고 있다"
경제전문가인 이 전 총장은 이날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 구조는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수출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어 대외 의존도가 높다"며 "이런 구조 하에 세계 경제가 침체하자 건설은 물론 조선, 자동차, 해운, 철강 등 주요 산업들이 식물 상태에 빠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전총장은 이어 "현 상황이 계속될 경우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IMF 위기는 외환 보유액이 부족해 경제가 일시적으로 부도 상태에 처한 국지적인 위기로 부실 채권 정리와 구조 조정을 실시하고 구제금융과 외국 자본을 유치해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내부구조가 취약하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세계 경제 위기가 밀어닥쳐 산업 기반이 붕괴하는 구조적인 위기"이라며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근본적이고 기민한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경제는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며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우리 경제가 이미 붕괴를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며 우리경제 붕괴가 시작됐음을 거듭 경고했다.
그는 화살을 금융권으로 돌려 "은행들의 건전성 지표가 이미 위험 수위에 달했다. 국제결제은행 기준 기본 자기자본비율(tier 1)이 지난 9월 8%대에서 12월 말 잠정 추산 결과 7%대로 떨어졌다. 7개 시중 은행 중에서 국민은행과 SC제일은행 등 두 곳만이 기업 구조 조정을 감당할 수 있는 9% 이상이다.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은 6%대로 하락해 비상상태"라며 "결국 금융권의 수술이 없이는 경제가 붕괴의 수렁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태"라며 공적자금 투입 등 신속한 금융 구조조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또 "해당 은행과 기업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조 조정은 피하고 자금 지원만 받으려 한다. 30개의 건설회사 중 29개 회사가 자금 지원을 받는 것을 보면 구조 조정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와 같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할 경우 경제는 거꾸로 부실 규모를 키우고 총체적인 붕괴를 가져온다"며 한국경제 붕괴를 우려했다.
"부실기업-금융기관 과감히 퇴출시켜야"
이 전총장은 경제위기 대책으로 "은행들에게 자율적으로 구조 조정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며 "구조 조정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부가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해 추진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며 정부가 구조조정의 전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구조 조정 정책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정부 기구인 재무구조개선지원단이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구조 조정을 총괄해야 한다. 여기에 채권단 조정위원회가 측면 지원하는 것이 순리"라며 "이에 따라 부실이 심한 금융회사와 기업들을 과감히 퇴출시키고 최소한의 자금 지원으로 인수와 합병, 자산 매각, 사업 조정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조 조정은 해당 기업의 운명은 물론 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라며 "최소한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단장을 맡고 대통령이 구조 조정의 전권을 위임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구조 조정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기본 철학이 전제되지 않는 한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만들어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글을 끝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