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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교수가 만난 CEO 민계식 현대重 부회장 “기술 개발해야 지속성장 가능”

이경희330 2008. 9. 2. 00:31
“대학이 지식기반 창출해야 세계와 겨룰 기술력 생긴다”
“인재중시 경영, 주택 보급률 95%...직원 복지에도 최선”

1972년 조선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현대중공업이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설립 11년만인 1983년 수주·건조량에서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당당히 세계 1위를 차지한 뒤 25년간 정상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5조5330억원, 영업이익은 1조7507억원에 달했다. 미국경제 전문지 포춘지가 선정한 ‘2008년 세계 500대 기업’ 순위에서는 378위, 기계·중공업 분야에서는 세계 6위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이 세계 조선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것은 탄탄한 기술력 덕분이다. 현대중공업은 선박용 엔진과 프로펠러, 발전기 등 주요 기자재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기업으로 꼽힌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의 탄탄한 기술력을 가능케 한 인물이 민계식 부회장이다.

민 부회장은 1990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기술개발본부장·기술부문사장(CTO)을 거쳐 2001년 대표이사 사장, 2004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미국 MIT에서 조선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대표적인 이공계출신 CEO다.

민 부회장은 “제조업의 성장 동력은 기술개발이 뒷받침 한다”며 “고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 정신과 끊임없는 기술개발이 오늘날의 현대중공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경영학, 전 총장)가 민계식 부회장을 만나 그의 경영철학과 대학에 바라는 점을 들어봤다.

이필상 : 얼마 전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날개 단 선박’을 개발해 화제가 됐다. 부회장께서 배에 날개를 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 기술을 개발하는데 중심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어떻게 이런 획기적인 생각을 하게 됐나.

민계식 : 어릴 적부터 문학을 하는 형의 영향으로 책을 많이 읽었다. 다섯 살 때 에디슨 전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평생 에디슨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MIT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했지만, 사실 미국으로 유학 가서 가장 먼저 전공한 게 우주항공공학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보잉사에서 비행기 날개를 설계해 본 경험이 있어 이 경험을 활용했다. ‘날개 단 선박’은 배의 프로펠러 뒤에 비행기처럼 날개를 달아 추진력을 향상시키고 에너지 손실을 4~6% 줄인 것이다. 8000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선박을 기준으로, 연료를 4%만 절감해도 기름이 하루 20톤 절약된다. 하루 1만 달러가 넘는 비용이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기존 선박에 날개만 장착해도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현재 70개 정도의 주문이 밀려 있다.

                                                               <현대중공업 민계식 부회장, 교려대 이필상 교수>

이필상 : 부회장께서는 ‘연구하는 CEO’, ‘발명하는 CEO’로도 유명하다. 발명특허만 해도 300여건, 연구논문은 240여 편에 이르고, 주요 R&D 과제도 직접 맡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하는 CEO가 기업에 미치는 장단점은 뭔가.

민계식 : 연구개발에 주력하다보면 아무래도 경영에 소홀할 수 있지만, 기업이 성장하려면 성장 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게 기술개발이다. 제조업은 기술력과 생산규모로 경쟁한다.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고 남이 안 가진 핵심 고유기술을 확보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제조업 경영자도 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이 앞으로 상용화될 지, 그 가능성을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고도 어렵다.

이필상 : 현대중공업은 72년 3월 22일 조선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11년 만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뒤 25년간 왕좌를 지켜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나.

민계식 :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남겨 준 기업가 정신과 현대의 기업문화가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명예회장께선 현대중공업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많은 뒷받침을 해줬다.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들어보고, 그것이 타당하면 전사적인 지원을 받아 연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 현대 정신인 창조적 예지, 적극적 의지, 강인한 추진력이 더해져 오늘날의 현대중공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필상 : 요즘은 대학에서도 CEO형 총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부회장님의 기업경영·조직관리에 관한 철학을 말씀해 달라.

민계식 : 인재를 중시하고 고용 창출과 안정을 꾀해야 한다. 그리고 기술개발로 성장동력을 강화해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고 국가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기 전부터 기술 개발·핵심역량 집중·자체 브랜드 수출이 필요함을 강조해 왔다.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도 그렇고 국가 발전 측면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직 관리에 있어서는 원칙을 중시하고 직원복지를 살피며 인화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94년 이후 무분규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켰기에 가능했다. 대신 사원들에게 회사 주변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절반 가격으로 보급했다. 95%의 높은 주택 보급율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임금도 전체 평균 연봉이 9500만원이다. 신입사원도 5000만원이 넘는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후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3년 안에 모두 내 집을 장만하고 있다.

이필상 : 대학생들에게도 현대중공업은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다. 현대중공업이 바라는 인재상은 무엇인가.

민계식 : 뛰어난 학벌 보다는 회사를 위해서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신입사원 연수에서도 겸허한 자세로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갖추고, 회사를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필상 : 대학 교육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민계식 :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들은 세계 일류 기술·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잘 파악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금세기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정보화 와 세계화다. 이 두 가지 중 기업에겐 세계화가 중요하다. 자동차만 하더라도 전 세계 5~6개 제조사로 시장이 개편되고 있다. 모든 시장이 다 그렇게 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을 대학이 창출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세계 1위 상품이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00개 제품이 세계 1위였는데 지금은 170개만 남았다. 이것을 창출하는 게 급선무다. 기업, 정부, 학계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학계는 기초 지식기반을 확보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좋은 인재도 길러진다고 생각한다.

이필상 : 대학생 중 고시 준비에 매달리거나 이공계를 기피하는 학생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공계 출신 CEO로서 한 말씀 해 주신다면?

민계식 : 이공계 기피현상은 국가의 잘못이다. 공과대학 나온 사람은 40대가 되면 퇴직 대상자가 된다. 공대 출신으로 기업에 입사해도 빛을 보기도 어렵고, 수명이 길지 못하다. 개인에게도 잘못이 있다. 기술발전을 따라가려면 자기 개발을 해야 하는데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가 기업에게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기업은 이공계 출신에게 기술교육과 인문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필상 : 요즘은 대학들도 산학협력을 확대하며 현장실습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산학협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가.

민계식 : 학계와 기업체의 협력이 유기적으로 되지 않는다. 독일이나 일본은 공과대학 교수가 되려면 산업계에서 5년 이상 일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론만 갖춘 사람보다는 산업체 유경험자가 교수가 돼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산업계와 학계가 정례적으로 인력을 순환시켰으면 좋겠다.


민계식 부회장은...

1942년 서울 출생이다. 65년 서울대 조선항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대학원에서 석사(우주항공학)를, 미국 MIT에서 박사(조선공학)학위를 받았다. 74년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MIT 연구원을 거쳐 79년 대우조선공업에 입사했다.

대우조선공업에서 전무이사로 재직할 당시의 ‘삼고초려’로 90년 현대중공업 기술개발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술부문 사장을 거쳐 2001년 공동대표이사 사장, 2004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경영학 교재에서 기업의 정의를 이윤 창출이 아닌 공동사회의 향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할 만큼 기업 활동이 국가발전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새벽까지 자신의 집무실에서 연구에 몰입하는 ‘연구하는 CEO’다. 발명특허만 해도 300여건, 연구논문은 240여편에 이른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의 기술력은 그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리=신하영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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