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칼럼

우리 사회는 대학입시 위한 사교육에만 투자, 막상 대학에는 투자 안한다

이경희330 2011. 4. 26. 20:19

 

 

 
카이스트 학생들이 올해 들어 4명이나 목숨을 끊었다. 패배자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징벌성 학점제도가 아까운 영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제도는 경쟁력을 기른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형틀로 작용하고 있다. 상대평가를 전제로 하는 이 제도는 재적인원의 최대 3분의 1, 그리고 학기당 최고 750만 원의 벌금형 등록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온몸을 던져 경쟁을 하다가 낙오자가 된 학생들은 자신을 지킬 수 없는 패배감과 가족에게 미안한 죄책감 때문에 목숨까지 끊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카이스트 사태는 학생들을 학점 순으로 줄을 세우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모순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취업난이 극심한 상태에서 학점이 일정수준 이하이면 입사원서도 제출하지 못하는 무서운 칼이 학생들의 목을 겨누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야 자신이 살 수 있는 생존경쟁 속에서 학생들은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한다.

 

대학에서 학점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학은 진리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교수와 학생이 존경과 칭찬을 나누며 마음껏 연구하고 공부하는 열정의 공간이다. 여기서 학점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게 하는 교육의 수단이다. 교수는 학점 제도를 통해 학생들이 결함을 보완하고 미래에 나아갈 길을 확인하게 하며 스스로 채찍질을 하게 한다. 이런 학점을 학생의 모든 것으로 간주하고 운명을 재단하는 것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특히 학생들을 학점을 잘 받는 기능공으로 만드는 것은 개성과 잠재력을 파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교수의 책임도 크다. 정년만 보장되면 연구를 멀리하고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연구하고 가르쳐서 학생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꿈을 펴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고 학점의 노예로 전락시켜 자기 파괴의 고통에 뒹굴게 하고 있다. 입시지옥에서 어렵게 빠져 나온 학생들을 다시 돌파구가 없는 학점지옥으로 내몰아 끝내 목숨까지 던지게 만드는 죄를 짓고 있다.

 

더욱 문제는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싸고 생활고가 가중되어 학생의 신분유지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대학등록금이 80%나 올라 연간 1000만 원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번다. 그러나 아무리 밤을 새워 일을 해도 등록금 마련이 쉽지 않아 아예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여기에 생계자체가 불안하다. 밥값이 많이 올라 세 끼 대신 두 끼로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이 많다. 더욱이 하숙비가 올라 살 곳이 없는 학생들이 도서관이나 친구집을 전전한다.

 

우리 사회는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에만 투자를 하지 막상 대학에는 투자를 안 한다. 우선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보조금 비율이 4% 수준으로 OECD평균의 1/3 수준이다. 더욱이 기업들은 대학투자에 인색하다. 학교보다 더 큰 연수원을 지을망정 기부금과 장학금 내는 것에는 등을 돌린다.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대학의 앞날이 아득하다. 대학캠퍼스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아름답게 피었다. 꿈과 낭만을 잃고 반값 등록금 공약 실현을 외치는 학생들의 모습이 절박하다. 대학당국과 정부는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들의 절규에 답을 해야 한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