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두 개의 리스트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일단 박연차 리스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모양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에게 박 회장의 돈 50억원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망을 좁혀 들어가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번 수사를 통해 노무현 정권에 대한 도덕적 무장 해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혐의를 밝혀내기 위해 수사력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50억원이 검찰의 추측대로 대가성이 있는 돈이라면 지난 정권은 영원히 정치권에서 발을 떼야 할 정도로 치명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검찰이 현 정권에 쏠려 있는 의혹에 대해서는 미적거리고 있다며 편파수사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반면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본지가 보도한대로 이미 재계와 언론계의 유력 인사들이 장 씨의 유족으로 고소당했음에도 경찰은 조사를 늦춘 채 리스트의 진위 여부 가리기와 전 매니저만을 조사하고 있다. 때문에 네티즌과 기자들 사이에서는 경찰이 유력 인사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 섞인 눈초리로 경찰을 지켜보고 있다. 두 리스트를 수사하는 수사 기관의 행동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현 정권과 맥이 닿아 있는 인사들에 대한 조사가 미진하다는 것이다.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이 그렇고 유력일간지 사장이 그렇다.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듯 천 회장에 대한 의혹이 다각도로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도 검찰은 수사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터넷 언론사 대표의 회사에는 현 임채진 검찰총장의 딸이 기자로 일하는 점은 이런 의혹을 부추긴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번 수사의 문제점을 <선데이저널>이 짚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외형적으로만 보면 박연차 리스트를 수사하는 검찰의 스탠스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 이정욱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전 열린우리당) → 송은복 김해시장 (한나라당) → 박정규 민정수석 (노무현 정권 참모) →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 이명박 정권 참모) → 이광재 의원 (민주당) → 박 진 의원(한나라당) → ? > 전 정권과 현 정권, 여권과 야권이 번갈아가며 구속되거나 소환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대내외적으로 ‘성역 없는 수사’를 원칙으로 내세우며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전 정권을 향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최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언론을 통해 부쩍 자주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검찰의 최종목표가 어디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권 실세 수사는?
반면, 검찰은 현 정권 실세에 대한 수사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이다. 현재 천 회장은 지난해 7월 현정권의 첫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이종찬 변호사,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사돈인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과 함께 태광실업 세무조사 대책회의를 했다는 의혹과, 한나라당 박진 의원과 박 회장간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천 회장은 지난해 3월 박 회장이 주최한 베트남 국회의장 환영만찬에 박진 한나라당 의원을 초대해 축사를 하도록 주선한 것으로 확인됐다. 천 회장은 박 회장과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로, 사업적으로도 깊게 얽혀 있다. 태광실업의 해외출장 업무는 천 회장의 여행사가 도맡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이 태광실업 계열사인 휴켐스 사외이사를 맡았고 전 태광실업 중국법인 대표이사가 2006년 천 회장 회사의 대표이사로 영입되기도 했다. 또한 지난 주 <선데이저널>이 보도했던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기간 당에 냈다는 특별당비 30억원의 출처도 천 회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역시 별다른 언급이 없다. 천 회장이 이 돈을 어디서 마련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소문들이 검찰 주변에 파다한 상황이다. 이런 구체적인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천 회장에 대한 수사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다. 물론 천 회장에 대한 수사는 녹록치 않다. 기업인은 정치인과 달리 대가성 없는 돈을 받았다고 해서 처벌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대가성 입증 여부다. 천 회장이 박 회장 구명로비 대가로 돈을 받았다면 알선수재가, 정치권에 제공할 목적으로 중간에서 돈을 받았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의 공범이 될 수 있다. 이미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회장이 이명박 정부에 '보험'을 들기 위해 천 회장을 통해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천 회장 뿐만이 아니라 이종찬 전 민정수석, 여당 원로 국회의원 등 현 여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 얘기는 쏙 들어간지 오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사자들이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구체적인 증거없이 박 회장의 자백을 위주로 수사를 진행한다면 법원에서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증거제일주의가 적용되면 법정에서 피의자의 진술은 법적인 효력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검찰은 역풍을 피할 수 없다.
경찰 수사의지 의심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경찰의 수사도 초미의 관심거리다. 이미 장 씨의 유족들이 성매매 혐의로 유력언론사 대표를 비롯한 몇몇을 경찰에 고소했으나 여기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경찰의 탤런트 고 장자연 사건 수사가‘부적절한 접대’의혹 인사들의 소환으로 이어지며 급물살을 타는 듯 했지만‘접대강요 혐의 입증’에서 멈칫 거릴 조짐이다. 경찰은 “고인이 문건만 남기고 사망한 상태에서 형법상 강요나 교사, 방조혐의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소환 조사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사실상 소환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경찰이 유력인사 소환을 스스로 제약하거나 소환조사 자체를 포기할 수 도 있는 상황을 고려 복선을 깔고 있다는 해석마저 낳게 하고 있다. 이명균 경기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은 30일 브리핑에서 “휴대전화 통신수사를 통해 장씨와 전 소속사 김 전 대표, 문건에 올라 있는 수사대상자 중 일부가 술자리에 동석했다는 걸 확인했다”면서도“술자리에 있었다는 것 하나로 범죄혐의가 입증됐다는 건 아니다”며 수사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이어 “문건에 나오거나 고소됐다고 해서 모두 범죄혐의가 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한 시각”이라면서 “술자리 강요 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증인이 숨진 데다 사건 당사자인 김 씨도 일본에 있어 신병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미리 난관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했지만 실체를 증명해줄 전 소속사 대표 김 씨의 신병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소환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내비친 셈이다. 경찰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 주말 “피고소인과 문건 등장인물의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혐의와 관련 참고인 조사를 한 결과 접대 장소와 일시가 상당히 파악됐다. 소환에 앞서 통화내역 확인 등 최종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수사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찰은 또 수사대상 확대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이 계장은 “김 전 대표가 누굴 만나 어떤 접대를 더 했는지 아직 수사할 계획이 없다”고 전제한 뒤 “물론 본 수사와 관련이 되면 하겠지만 김 전 대표를 만났다는 이유로 왜 만났는지 물으면서 시작하는 그런 수사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수사 중인 인물들의 혐의를 밝히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 인물까지 수사대상에 넣는 건 부담스럽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 수장의 딸이 리스트에 언급된 인터넷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임채진 검찰총장의 딸은 한국의 모 월간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결혼과 함께 그만뒀다 얼마 전 이 언론사에서 운영하는 방송사에 기자로 입사했다. 이런 수사기관의 이중적 태도로 인해 국민들은 이번 수사의 진정성에 상당히 의문을 가지고 있다.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성역없는 수사로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 직원 성매매도 ‘은폐’(?)
경찰이‘청와대 행정관의 성접대 사건’을 수사 초기부터 은폐 혹은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 달 31일 청와대 방송통신위원회 경찰 등에 따르면 국정기획수석실 산하 방송 통신비서관실 김 모(43)행정관은 지난 25일 밤 신촌의 한 룸살롱에서 술을 마신 뒤 인근 모텔에서 여종업원과 함께 있다 적발됐다. 특히 당시 술자리에는 장 모 행정관과 방통위 모 과장, 케이블 방송업체 관계자 등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그러나 당시 취재 기자들에게“김 행정관(당시엔 A씨로 표현) 적발된 장소는 안마시술소”라고 입을 맞추다 30일 오전에야 “성매매 혐의로 잡힌 A씨는 청와대 행정관인 김 모씨가 맞고 모텔에서 붙잡았다”고 뒤늦게 번복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행정관은 25일 밤 10시 30분쯤 마포구 노산동에 있는 G모텔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관에게 적발됐다. 이날 밤 일행과 함께 인근 D유흥주점에서 접대로 의심되는 술자리를 가졌던 김 행정관은 이 주점에서 일하던 여성과 함께 ‘룸살롱 2차’를 나가 성매매를 하려다 근처 모텔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모텔 앞에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중 여성이 먼저 들어가고 이어 한 남성이 따라 들어가자 성매매를 의심하고 10분 뒤에 방 안에 들이닥쳐 여성과 함께 있던 현장을 적발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경찰이 안마시술소였다고 했다가 뒤늦게 모텔로 말을 바꾼 이유는 사건발생 초기 청와대 행정관이 낀 접대성 술자리를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더욱이 일부 언론이 성매매 당사자가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최근까지 안마시술소에서 성매매를 하다 잡힌 전혀 다른 인물을 거론하는 등 사건 자체를 희석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마포경찰서 김형덕 생활안전과장은 이와 관련“김 씨가 청와대 행정관인 것이 뒤늦게 확인되는 과정에서 기자들과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사표를 낸 김 전 행정관을 재소환해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단순 성매매 사건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포경찰서 역시 “당시 콘돔 등 증거물이 발견되지 않은데다 김 행정관과 여종업원 모두 성매매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혐의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경찰 수뇌부는 이례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성매매 혐의로 적발된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만 수사할 것이며 물증이 없어 성매매를 했는지 여부도 입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선 적발 당시 동영상 등 충분한 증거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청와대 인사가 낀 성접대 의혹 사건을 단순 성매매사건으로 서둘러 종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짙은 상황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