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칼럼

양극화 놓고 세금논쟁만 할건가!

이경희330 2006. 2. 6. 22:23
[경제비평]양극화 놓고 세금논쟁만 할건가

양극화 해소를 놓고 세금 논쟁이 분분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세금 인상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금 인상을 하지 않되, 재정구조와 조세 개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즉 정부가 예산을 아껴 쓰고 조세감면 축소와 세원 확대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어떻든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정 확대 정책을 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정반대이다. 박근혜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극화의 주범은 참여정부가 만들어놓은 경제불황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감세와 규제혁파를 통해 작은 정부를 실현하여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도록 하여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재정을 반대로 축소하고 시장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어떤 정책이 바람직한 것인가.

현재 우리 경제에 나타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현상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여 부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 구조조정은 경제가 스스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낳았다. 구조조정이 실업자를 양산하고 실업자 양산은 내수를 침체시키며, 내수 침체는 기업 경영을 악화시켜 다시 구조조정을 반복해야 하는 덫에 걸린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재정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안일한 상황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양극화가 스스로 심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임기응변식 대책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소비와 투자가 함께 부진하여 동력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세 부담이 늘어날 경우 경제의 동력인 투자와 소비가 더 위축될 수 있다. 그리하여 성장률이 떨어지고 일자리도 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면 실업자와 빈곤층이 확대되고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재정구조개혁에 앞서 전제조건으로 필요한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정부는 투자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고용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무수한 일자리를 만들고 근로자 모두가 떳떳하게 일하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투자와 고용의 선순환 체제를 구축하면 양극화의 악순환 고리는 자연히 끊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정정책 기능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현재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생계 불안을 느끼는 빈곤층이 800만명에 달한다. 인구 6명당 1명 꼴이다. 이 사람들의 최저생계 유지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정부는 재정지출을 가능한 한 늘려야 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정부의 예산 낭비를 줄이고 불합리한 조세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당연히 추진해야 할 과제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지나치게 미흡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예산 절감과 소외계층 지원 확대가 함께 필요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여야가 뒤엉켜 싸움만 벌인다면 이는 양극화 해소 대신 경제난을 더 심화시키는 것밖에 안 된다. 더욱이 증세는 분배론자들의 주장, 감세는 성장론자들의 주장이라는 이념적 색깔 씌우기 현상이 나타날 경우 자칫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세금 논쟁이 경제발전 기반을 흔드는 독이 될 수 있다.

결국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일자리 만들기에 나서 경제가 새로운 성장의 궤도에 들어서게 한 후 재정과 조세구조를 선진화하여 분배 문제를 개선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양극화 해소의 수순이다. 경제가 성장동력을 회복하여 모두가 다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희망을 찾는다면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양극화 해소이며, 여기에 재정정책이 보완책으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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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고려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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