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journal사회

'신공안정국' 논란 막후

이경희330 2009. 1. 14. 23:54

들끓는 민심 향해 '모두 동작 그만!'
지난 3월 법무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김경한 법무장관(오른쪽), 임채진 검찰총장(왼쪽)과 나란히 앉아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안 관련 수사가 대폭 확대되면서 불붙은 ‘공안정국’ 논란은 얼마 전 검찰이 아예 공안조직을 대폭 확대할 방침을 발표하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최근 임채진 검찰총장은 공식석상에서 ‘친북좌파를 발본색원하겠다’는 노골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검찰 공안 기능 강화를 천명했다. 수사 기관장이 원색적 표현으로 공안 기능 강화를 선언한 것은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만큼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검찰의 움직임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당연하다”며 지지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유신시대로의 회귀”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이란 일부의 비판까지 받아가면서 공안기능을 재정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공안정국’ 논란을 짚어봤다.


지난 7일 검찰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검찰이 공안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검찰 수뇌부의 의지’를 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사정기관의 공안기능이 대폭 축소돼 친북 좌파 세력, 더 나아가서는 반정부 세력이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내려왔다고 검찰 수뇌부는 보고 있고 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의지도 강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일례로 지난 10년간 간첩 등 대북 관련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이 분위기를 틈탄 친북세력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검찰의 공안 조직은 대폭 축소됐다. 먼저 대검찰청에서는 지난 90년대 초반까지 4개 과로 나눠 운영되던 공안과가 김영삼 정부 시절 3개로 줄었다. 당시 공안 4과 폐지는 기능 축소라기보다는 조직 개편의 의미가 더 컸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에는 공안 3과도 폐지됐고 전국 지검에 있던 15개 공안과도 모두 폐지됐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2005년 당시 공안과를 축소 및 폐지했던 데는 청와대 386세력들의 입김이 컸다고 한다. 이후 공안 1과는 선거사범, 2과는 학원 및 노동사범 수사를 전담하고 있다. 간첩 수사들을 전담했던 3과나 4과는 아예 자취를 감춘 것.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은 최근 3과의 부활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예산도 이미 확보했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공안부도 다시 부활시킬 계획이다.

검찰뿐 아니라 국정원도 대공 인력증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찰도 관련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일단 공안정국의 배후에는 김경한 법무장관과 공안 출신 검사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그동안 공적인 석상에서 이미 공안 기능 강화를 수차례 언급해왔다. 지난달 29일 열린 법무부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는 김 장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을 첫 번째 과제로 꼽았다. 김 장관은 이를 위해 인력과 조직, 예산을 복원하는 등 공안조직과 기구를 정비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보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장관은 부활을 추진 중인 공안 3과에 우수인력을 배치해 공안수사에 역량을 모을 뜻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김경한 법무장관이 공안부장 출신이어서 그런지 공안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김 장관은 서울지검 공안 1부장을 역임하는 등 검찰 내부에서도 공안통으로 통하는 사람이다.

물론 김 장관의 이런 생각과 경험들만으로 공안조직 확대가 곧바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청와대 및 임채진 검찰총장과 어느 정도 조율이 있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안기능 강화 목소리는 반드시 윗선에서만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권 교체 후 고위직에 임명된 TK 출신 검찰 간부들이 노동계나 일부 언론계 등에 좌파 386세력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고 보고 이들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터졌던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다.

386 운동권들이 연루됐던 일심회 사건은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청와대 386의 수사 개입’을 폭로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일심회 사건 등은 배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하지 않고 마무리됐다.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일심회 사건 등 386세력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본격적인 공안정국으로 돌입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사정기관의 공안정국 조성에 대해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좌시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안정국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행위를 위축시킨다”며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공안 사건들에 대한 대응을 보면 기본권을 실현하고 보장한다는 넓은 차원에서 이뤄지기보다는 개별 사건으로 한정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과거 국가보안법 폐기를 논의하던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야당 측에서도 “정부 여당이 공안정국을 조성해 정부의 실정을 감추고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최근 느슨해진 안보의식을 바로잡고 사회 각층에 번진 친북좌파를 색출해 내지 않는 한 사회를 바로잡기 힘들다는 판단이지만 과거 유신시대를 겪은 사람들에게 공안정국은 어두운 그림자를 연상시키고 있다는 것이 야당 측의 주장이다.

과연 ‘친북좌파 발본색원’이 ‘공안정국’으로 이어질 것인지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