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정치인의 귀향 그리고 봉하마을이 가진 정치적 의미는 |
노무현 전 대통령은 25일 아침 비서실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났다. 비서실 직원들은 떠나는 노 전 대통령에게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아쉬움을 표했다.
17대 대통령 취임식장에 참석한 노 전 대통령은 취임식이 끝난 뒤 이명박 대통령의 환송을 받으며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던 1천여 명의 노사모 회원들에게 입마이크로 "고맙습니다"라며 고마움을 전한 뒤 곧바로 대통령 특별열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이 늦어진 관계로 정식 환송식이 아닌 인사만 하게 된 것이다.
이날 서울역에는 11시경부터 노사모 회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고 환송식이 예정된 11시 30분경에는 1천여명이 넘는 노사모 회원들이 운집했다. 그러나 환송식은 예정된 시간에 치뤄지지 못했다. 11시 20분경에 끝날 것으로 예정되었던 취임식이 12시를 넘겨 끝나는 바람에 노 전 대통령은 12시 20분 가까이 되어서야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흐린 날씨속에 바람마저 부는 가운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노사모 회원들은 연신 아이들을 끌어안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또한 뉴라이트 서경석 목사가 조선족 교회 신자 4~50여 명을 인솔하여 노사모 회원들 앞을 가로막고 서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노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조선족 교회를 찾아 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잠깐의 환송을 받은 노 전 대통령은 KTX 대통령 전용 특별열차편으로 참여정부 전,현직 인사와 청와대 비서관 그리고 기자 등 180여 명이 동승한 가운데 12시 30분경 서울역을 출발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밀양역으로 향하는 특별열차에서 기자들과 짧은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와의 차별화 보다는 스스로의 창조적인 전략을 가지고 창조적인 정치를 해주면 좋겠다"며 충고어린 덕담을 던졌다.
특별열차는 오후 2시 40분경 밀양역에 도착했고 밀양역 플랫폼에 미리 나와있던 김두관 전 장관 내외의 인사를 받았으며 곧바로 밀양역 광장에 준비된 환영식이 이어졌다. 밀양역 광장에는 3천 여명 가까운 시민과 노사모 회원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엄용수 밀양시장이 준비한 밀양역 환영행사는 밀양 제일고등학교 음악과 오케스트라가 준비한 교향곡 '신세계' 연주 속에 정승현(13.밀주초등 3)군과 이혜지(12.여.밀양초등 5)양으로부터 환영꽃다발을 받았다.
환영식 무대 위에 오른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사람들이 저 때문에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을까 고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인사 도중 엄용수 밀양시장을 가리키며 “정치인 노무현 종자도 길게 보면 괜찮다. 종자 씨 말리지 말고 계속 사랑해 달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렇게 밀양역 환영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같이 도착한 일행은 속속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전,현직 참여정부 인사 이외에 지인들도 있었는데 봉하마을 환영식에 노갤런티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며 어깨에 기타와 가방을 잔뜩 짊어지고 서 있는 가수 손병휘씨와 그동안 행사장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영화배우 문성근씨도 함께하고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밀양역 행사가 끝나자 봉하마을로 출발하는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보기 위해 시민들과 노사모 회원, 기자들이 뒤엉켜 승용차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손을 번쩍 들어 그들에게 화답했고 박수를 받으며 승용차에 올랐다.
미리 나와 있던 경찰 오토바이의 안내를 받으며 노 전 대통령이 탄 승용차와 일행들이 탄 4대의 버스는 밀양역을 빠져나와 진영읍을 통과하여 고향마을인 봉하마을까지 내 달렸다. 노 전 대통령의 차량행렬이 도로를 지나는 동안 도로주변에는 일을 하다 달려나온 시민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했고 디카를 꺼내들고 연신 셔터를 누르는 시민들도 많았다.
그러나 진영읍을 통과 할 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도 목격 되었다. 진영읍 대로 주변에 신축건물 공사를 하는 50대 노동자 한 사람이 팔을 쑥 내밀더니 '엿 먹어라' 식의 '팔뚝욕'을 하고는 이내 공사장으로 숨어버리는 것이었다. 참으로 인심 한 번 사납다. 이것이 영남의 현실인가보다.
오후 3시 40분경 진영읍을 지난 차량행렬은 조그만 공단을 지나 봉하마을 어귀에 다다랐고 밀려든 사람들로 인해 차량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제일 앞에 있던 승용차에서 노 전 대통령 내외분이 내렸고 일행들도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서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버스에 동승했던 기자들도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행사장을 향해 달음박질 치기 시작했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부터 사람들로 꽉 차 있었지만 행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끝없이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과 행사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니 어림잡아 1만은 훌쩍 넘어 보였고 2만에 가까운 인파였다. 조그만 시골동네에서 사람끼리 뒤섞이고 발등이 밟히는 일이 이곳 저곳에서 벌이지고 있었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것 조차 쉽지 않아 주변을 빙빙 돌아야 할 지경이었다.
행사장 맞은편에 설치된 텐트는 국밥을 먹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이날 준비한 1만여 명 분의 국밥은 오후 5시경에 동이 나서 행사진행자들은 저녁을 먹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불만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좀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나 역시 저녁밥을 구경할 수 없었다. 다행히 사저 앞에서 나눠주는 이사떡을 하나 받아들고 허기를 달랬다.
(옥의 티 - MBC 9시 뉴스데스크의 오보 : 현장 추산 20,000명 이었다. 경찰 추산 12,000명의 반 밖에 안되는 6,000여 명이 모였다는 MBC 9시 뉴스의 보도는 현장기자의 기분에 따라 방송국의 신뢰가 왔다갔다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공식환영식 행사장 주변에는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내빈들이 여기저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역시 이런 풍경이 마냥 즐거웠는지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노 전 대통령 내외분이 참석한 공식행사가 시작되었다. 한나라당 소속인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김종간 김해시장의 환영사가 있었다. 김 지사는 "오동나무는 100년 뒤에 거문고가 돼 가치를 인정받는다. 노 전 대통령도 이 시대 잘못된 관행을 고치느라 비난을 받았지만 퇴임 이후에는 제대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지역의 어른으로 잘 모시자"라는 의외의 말에 환영식에 참석한 시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은 환호로써 화답했다. 행사 말미에 노 전 대통령이 김 지사에 대해 "다른 당인데도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말을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할 정도로 파격적인 말이었다. 아까 보이는 팔뚝욕의 씁쓸함이 가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의 미덕이다.
노 전 대통령은 행사 내내 마냥 웃었다. 5년간 무거웠던 마음이 고향에 모인 2만여명 가까운 군중들을 보면서 일순간 녹아내린 탓 일까. 노 전 대통령은 인사말 내내 웃음과 여유를 보였다. 향후 활동에 대한 자신감도 묻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제가 지난 5년간 잘했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잘못했다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하하하... 유감스럽게도 잘못했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군중들...아닙니다) 여러분 좀 잘했으면 어떻고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라며 특유의 화답식 연설을 시작했다.
고향에 운집한 수만 인파를 보며 그동안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았는지 20분 정도 예정된 연설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노 전 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보니까 대통령 5년 동안 가장 보람된 시간이 뭐냐 다시 누가 묻는다면 오늘 그렇게 답할랍니다. 마치고 고향 내려가서 고향 사람들 하고, 그리고 저보고 잘했다고 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다함께 모셔놓고 귀향보고를 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하자 군중들은 '노무현'을 연호하며 노 전 대통령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보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고맙습니다. 저는 실패할래야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계신데 어떻게 실패할 수 있습니까. 제가 당선될 때 제가 득표한 받은 표가 전체 유권자의 34%였다. 그러니까 3/1이죠. 그게 제 표였다. 3/1만 잘했다고 하면 본전이죠. 그래도 5년이 지났는데 본전 안 잃고 그래도 이 자리에서 보고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참으로 행복합니다.
여러분 제가 5년 전에 여러분에게 공약했던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개혁한다고 했죠. 했죠. 했으면 됐지. 그렇죠. 제가 뭐 경제살리겠다고 말이나 했습니가. 말 안했지만. 당연히 잘 해야지요. 말 안했지만 7% 못해서 죄송합니다. 7% 못했으면 6%라도 해야되지 않습니까. 아무리 열심히도 안됩니다. 그 순간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아무리 가르쳐 달고 해도 아무도 안 가르쳐 줍디다. 투자를 많이하게 해라고 해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어보니 출총제 폐지하라고 합디다.
그런데 자세히 연구해봐도 출총제하고 투자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 투자를 잘하게 하는 방법은 제가 지금까지 했던 방법은 혁신, 개방, 균형, 사회투자, 사회적자본, 그리고 평화, 한가지 빠졌다. 교육이다. 잘 된것도 있고 잘 안된것도 있지만 6% 못했지만 정권을 넘겨줄때 오르막 경제를 넘겨준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경제성장 그래프가 있다. 모든 정부의 마지막 시기, 다음 정부 최초 시기에 항상 그래프가 급경사로 내려간다. 말하자면 꼴아박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다음정부 넘어갈때 꼴아박지 않고 그대로 갑니다. 저는 분명히 비행기가 뜨듯이 상승곡선을 그리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사고를 쳐버리는 바람에 우리 경제도 까닥하면 미국처럼 사고 칠 뻔 했는데 그래도 열심히해서 사고 안 쳤습니다."라며 5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자평이지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이기도 했다.
이날 환영식은 여러가지 뉴스를 낳았는데 그중에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깜짝 놀랄만한 일이 연설 도중 있었다. 유시민 의원의 등장이다. 물론 유 의원이 자처한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유 의원을 애써 무대 위로 불러 올린 것이다.
"차마 제 얘기만 하고 그냥 못 가겠다. 내가 노무현식 정치를 얘기 했는데,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노무현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정치인인데, 자리가 적절하고 안하고 다 떠나서 제가 꼭 소개를 한 번 하고 싶습니다. 괜챦겠습니까. "라고 말하자 행사장에 모인 군중들은 유시민을 연호하기 시작했고 노 전 대통령은 "나오시오"라는 말로 유시민 의원을 무대 위로 불렀다.
노 전 대통령은 무대위로 올라온 유 의원과 악수를 나눈 뒤 유 의원과 손을 마주잡고 번쩍 들어 군중들에게 화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다시 유 의원을 단상으로 이끈 뒤 "한마디 시킬까요?"라고 말하며 유 의원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유 의원은 사양하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노 전 대통령의 권유가 워낙 강한 탓 인지 단상에 섰다.
"우리 대통령님 귀향하는데 축하해드리려 왔다가 난데없이 나오게 됐습니다. 대통령께서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여러차례 하셨는데 저도 함께 똑같은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대통령님과 저를 비롯한 여러사람에게 5년간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일할 기회를 주셨던 국민들의 5년 전 선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고, 또 한 번 국민들로 부터 사랑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노무현 대통령 퇴임하는 이 행사를 맞아서 국민여러분께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라며 짤막한 인사말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갔다.
노 전 대통령은 "유시민씨 만나보면 제가 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어서 때대로 쓴소리들 많이 한다. 물론 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오늘 (유시민 의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랬듯이 어려울때 (함께하는)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 진짜 정치인이다. 꼭 그 말씀 드리고 싶었다. 여러분 하늘이 도와서 비가 계속오더니 유시민이가 뜨니까 비가 그쳐요. 여러분 제가 말 놓고 한마디 할까요. 아~ 제가 오늘 딱 말 놓고 하고 싶은 얘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야~ 기분 좋다." 며 추임새 같은 톤으로 이 날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의 연설은 끝을 맺었다. 그는 아마 5년 동안 이렇게 편하게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가 부담스럽고 답답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이러한 연설 스타일은 듣는 이로 하여금 푹 빠져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역대 대통령마다 특유의 연설 스타일이 있지만 청중과 화답하며 대화하듯이 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만의 스타일이자 흉내내기 힘든 그만의 것이기도 하다.
오후 6시경 공식행사가 끝났다. 7시 20분경 노사모에서 준비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고, 7시 40분경에는 사저에서 내려와 불꽃놀이를 보고 도저히 안내려올 수 없었다며 제법 굵어진 빗발속에 모여있는 노사모 회원들을 격려햇다. 노사모 회원들이 준비한 선물증정도 있었다. 1,000원씩 모아 만들었다는 '원칙과 상식'이 새겨진 반지, 삼결살을 100인분을 구울 수 있는 대형구이판, 조끼와 검은색 숄 등을 받아 든 노 전 대통령은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숄을 어깨에 두르고 패션쇼를 하듯이 재미있는 동작을 취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잠시 뒤 인사를 나누고 사저로 돌아갔다.
봉하마을의 밤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긴 채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봉하마을은 정치적으로 많은 의미를 낳을 것 같다. 경남이라는 지리적 특징도 있지만 한나라당이 맹위를 떨치는 영남에서 노 전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지역감정이 낳은 대한민국의 기형적인 정치구도를 어떻게 해서라도 바로잡고 싶은 그의 국민통합, 정치개혁 의지가 어떤 모습으로 현실화 될지 궁금해진다.
특히 4월 9일 총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의 영남지역 공천 신청자가 부산 3명, 경남 3명, 울산 0명 밖에 되지 않고 노무현과라고 하는 사람중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사람이 부산 2명, 경남 1명 밖에 되지 않는 이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생활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도 그의 귀향이 가지는 의미를 차분히 생각하며 (어느 날 갑자기 뭔가 찾아 올 수도 있지만??) 긴 호흡으로 정치노정을 꿈꿔야 되지 않을까.
'뜨거운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윤대 전고대총장 부인, 정복주 이화여대 성악과 교수 (0) | 2008.03.05 |
---|---|
이화의료원 서현숙 원장은 2008 인턴 오리엔테이션,고객만족,의료윤리에 (0) | 2008.02.26 |
이화의료원, 6~19% 임금삭감 전격 합의 (0) | 2008.01.27 |
이필상교수 서울신문 "열린세상 필진" (0) | 2007.12.27 |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불교방송 초청 토론회 (0) | 2007.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