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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감독 김종학 “많이들 본다니 덜컥 겁이 난다”

이경희330 2007. 9. 14. 22:16
 
  • ‘태왕사신기’로 또 대박…
    제작비 430억원 투입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화제
    “교과서에 몇 줄뿐이어서 스토리 만들기 힘들어…
    외유내강형 광개토대왕 배용준이 가장 어울려”
  • 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입력시간 : 2007.09.14 00:06 / 수정시간 : 2007.09.14 03:56
    • 우려가 환호로 바뀌었다. 제작비 430억여원이 투입돼 3년여에 걸쳐 제작된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판타지 사극 ‘태왕사신기’. 수차례 방송 일정이 연기되고, 제작 과정의 잡음과 관련된 루머가 이어지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이 ‘문제작’은 11일 모습을 드러낸 뒤, 180도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2회 만에 시청률 26% 돌파. 브라운관을 떠났던 10~20대들의 눈길도 잡아끌었다. “컴퓨터 그래픽만 현란하다. 구성이 산만하다”는 비판적 의견도 간혹 있지만, 분명한 건, 이 드라마가 대중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김종학·송지나가 함께 만들었던 ‘전설’의 시작과 닮아있다. 뚝심으로 드라마를 밀어붙인 김종학 감독을 13일 오후 충남 태안군 안면도 세트장에서 만났다. 전쟁을 앞둔 고구려 진지를 재현한 이곳에서 김 감독은 청 반바지 차림에 연방 담배를 피워 물며 수백명의 연기자와 스태프를 지휘하고 있었다. “이 신 끝나고 세트 안에 차들 다 밖으로 보내”라며 불호령을 내리던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나긋한 음성으로 빽빽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첫 마디는 “많이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덜컥 겁이 난다”였다.

    • ▲ 김종학 감독은“한국에서 이런 스케일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나, 김종학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 ―기존 드라마들과 차원이 다른 컴퓨터 그래픽이 화제다. 집착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인데….

      “이 드라마는 외국에도 많이 수출해야 한다. 우리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의 전 세계적 성공도 눈부신 비주얼의 힘 아니었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드라마의 깊이를 만들고 있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속에 복잡한 구성의 스토리가 방향을 잃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나도 걱정스럽다. 교과서에 나오는 몇 줄의 역사에 환웅 이야기를 붙였고, 고구려 고분 벽화 속 수호신인 주작, 현무, 백호, 청룡 등도 소재로 삼았다. 솔직히 우리의 상식선을 벗어난 이야기다.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외로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에 단련된 젊은 세대가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예상보다 젊은층 시청률이 높고, 그들 사이에 붐이 형성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왜 광개토대왕을 다루고 있나?

      “광개토대왕은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영토를 확장하며 정복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정복자라고 하면 알렉산더, 칭기즈칸 등 외국 영웅만 생각하지 않나? 광개토대왕에 대한 구체적인 상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런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도전의 역사를 되살려 진취적 기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중국에 수출하기는 힘들겠다.

      “사실 이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중국인데 끝까지 중국 당국에서 촬영 허가를 안 내줬다. 수출도 당연히 안 될 것이다. ‘광개토대왕’도 자기 민족이라고 주장할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흘러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이 드라마를 통해 그들은 ‘우리가 한 때는 한(韓)민족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태왕사신기’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일본 여성들의 압도적 사랑을 받고 있는 국제적 스타 배용준의 변신. 광개토대왕 역을 맡은 그는 “회당 1억원 이상 출연료를 받고 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1년에 세금을 몇백억씩 내는 친구가 출연료에 연연하겠냐”고 했다. “배용준은 드라마 성공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파트너입니다.”

    • ▲ ‘태왕사신기’안면도 촬영현장.

    • ―배용준은 우리가 막연하게 떠올리는 광개토대왕의 이미지에 꼭 맞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정복자’라고 해서, 관운장, 장비 같은 이미지만 앞세울 수는 없다. 드라마에서 광개토대왕은 용맹하면서 지혜로운 인물이다. 외유내강형이라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배용준은 적역이다. 함께 일해보니 그는 시청자에게 정말 솔직한 배우다. 억지로 감정을 만들어 시청자를 현혹시키는 데 동의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다.”

      ―드라마 제작비는 어떻게 조달했나?

      “순수하게 국내 자본들이 드라마에 ‘펀딩’을 했다. 일각에서 일본 야쿠자 자금이 들어왔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일본 자금은 단 한 푼도 없다.”

      ―당신의 드라마 철학은 무엇인가?

      “항상 진솔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그러나 경제, 사회적 배경은 전혀 개의치 않고 결혼, 이혼, 불륜, 고부갈등 등 사람과 사람 간의 이야기만 다루는 드라마는 허황한 것 같다. 현실에 뿌리 내린 사람들의 삶이 내 드라마 인생의 주제다.”

      그는 “제작과정에서 작가, 연출자, 연기자가 생각하는 의견이 달라 격론이 벌어진 적도 많았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아직도 토론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시청률 ‘대박’ 행진 속에도 낯빛과 몸짓에 힘겨운 기색이 가득하다. 분명 아직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한 마디에 힘을 가득 실어 보냈다. “우리의 역사에 엄존하는 자랑스러운 도전과 개척의 정신을 이제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 핏속에 집어넣고 싶습니다.”

    • 13일 김종학 감독이 충남 태안 안면도 태왕사신기 촬영 세트장에서 인터뷰했다. /이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