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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표명한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이경희330 2008. 3. 18. 00:37

"국정 발목 잡는 세력으로 몰려 참담, '사냥감 몰이'식 너무 조급하고 오만

 

  
정순균 방송광고공사 사장.
ⓒ 권우성
정순균

 

17일 오후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사장의 휴대전화는 5분 간격으로 울렸다. 가까운 지인들이 "뉴스에서 봤다" "사퇴하는 것이냐"고 물었고, 정 사장은 이에 "처음부터 마음먹고 있었는데 뭘"이라며 껄껄 웃었다.

 

이날 오전 언론은 정 사장을 포함해 문화계 기관단체장들의 연이은 자진 사퇴를 크게 다뤘다. 지난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이어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까지 나서서 참여정부의 단체장에 대해 사퇴를 종용하고 있는 가운데 내놓은 사직서라, 지인들의 우려는 컸던 모양.

 

정 사장은 이날 오전 문화관광체육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지난 14일 사장직에서 물러난 다음 두 번째 자진 사퇴다.

 

정 사장은 이날 집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이뤄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퇴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마음먹었던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인터뷰 전에 어렵게 성사된 통화에서도 그는 긴 한숨을 쉬며 "할 말은 많지만 나가는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이날 오전 한국방송광고공사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새 정부의 국정에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몰리는 것에 당혹스럽고 참담했다"며 "새 정부의 조급함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사퇴의 변을 남겼다.

 

'노무현 사람'이라는 이유로 직무에 대한 평가 없이 새 정부의 방해 세력으로 지적된 데 억울하다는 것이다. 현직 장관까지 특정 인물을 거론하고 나선 것에 대해 "언급할 만한 것이 아니다"며 선을 그으면서도 "새 정부가 너무 조급하고 오만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3주 됐다. 뭐가 그리 급한 것이냐"며 "마치 사냥감 몰듯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세력을 내쫓는 것이 선진한국을 내세우는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3주밖에 되지 않은 새 정부...기관장이 '발목잡기' 한다니"

 

다음은 정순균 사장과의 일문일답 요지.

 

  
정순균 방송광고공사 사장.
ⓒ 권우성
정순균

-오늘 사표를 제출했다. 시원한가, 답답한가.

"시원하다. 애초부터 (자진 사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자진 사퇴했다.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특별히 오늘 결정한 것은 아니다. 월요일(17일)이라는 시점도 있었고 이미 지난주에 사장실의 개인 물품을 정리했다. 하루라도 늦추는 것은 조직을 위해서나, 여러 가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최근 언론에 거론되면서 조직 내 동요도 있었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는 상황이라 하루 더 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봤다. 오늘 오전 출근하자마자 오전 9시 회의에 실·국장을 소집해서 사퇴의 뜻을 밝혔다."

 

-기관장들의 사퇴에 대한 새 정부의 압박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공기업 사장직을 정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임기가 보장된 자리인데, 정치 쟁점화해서 이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이 문제가 터지기 오래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순간부터 '정권이 바뀌면 나의 거취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누가 봐도 '참여정부, 노무현 사람'이다. 언론 특보, 인수위 대변인, 국정홍보처장 등을 지냈다. 국정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이 다른 이명박 정부 아래서 고위 공직자로 남아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미 오래 전에 사퇴를 결정했다."

 

-하지만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에 대해 새 정부의 문화관광체육부장관이 사퇴를 언급하고 있다.

"그게 잘못이다. 너무 조급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3주 됐다.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뭐가 그리 급한가. 마치 사냥감 몰듯이 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세력을 내쫓는 것이 과연 선진한국을 내세우는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인가.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조용히 해결할 문제다. 너무 서둘 필요 없다. 결국 임기가 보장된 사장이라도 본인 판단에 따라 정체성이 맞지 않는 사람은 나가고, 과거 관료 출신이나 전 정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전문가들은 임기를 채우면 되는 것이고.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둘 일이 아니다. 결국 본인의 판단과 양식에 맡겨 두면 세월 가면서 저절로 조정될 것이다.

 

자기들이 볼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사람이라서 쫓아낸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여유를 주고 배려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10년 민주화 정부를 거치면서 새로운 가치와 질서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4월 공기업 운영에 관한 법령을 통과시켰고, 사장의 임기가 보장되는 등 새로운 가치가 생겼다. 이것을 존중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일어난 혁신의 하나다.

 

굳이 새 정부가 벌떼처럼 일어나서 '당신은 나가라'고 하기 전에 기관장으로 계신 분들이 자신의 정체성, 새 정부 정책, 정치적 소신의 차이 때문에 자기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 아마도 (사퇴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결단을 내릴 것인데, 새 정부는 왜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나.

 

기관장에 대해 평가하려면 정권 출범 이후 3개월 혹은 6개월 이후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고 해야 하는데, 3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발목잡기' 식으로 몰아치고 있다. 기관장들에게 시간을 좀 주면 안 되나. 그저 안타깝고 아쉽고, 실망스럽다."

 

"사퇴 압력, 공개적으로 하고 있지 않나"

 

  
정순균 방송광고공사 사장.
ⓒ 권우성
정순균

- 직접적인 사퇴 압력은 없었나.

"공개적으로 하고 있지 않나(웃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의 고민이었다. 두 번째는 현재 상황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내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코바코는 코바코의 위상 문제, 재정 문제 등이 큰 화두인데, 사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필요한 시점에서 역할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면 내가 자리를 비워두는 게 옳은 도리 아닌가 생각한다.

 

더 이상 조직의 동요를 있게 해서도 안 되고, 혹시 있을지 모를 외풍으로부터 조직원과 조직을 보호해주기 위해서는 이 시점에서 자리를 비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 문화관광체육부 업무보고 때도 출석하지 않았다.

"업무보고는 원래 참석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관광체육부가 '민간 전문가들과 토론 형식으로 업무보고를 한다'면서 참석을 요구했다. 민간 전문가 몫으로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나를 참여하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다가,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어서 안 간 것이지. 다른 산하 기관장들이 다 참석했는데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나만 빠진 것도 아니다."

 

- 일부 언론에서는 임기가 남은 기관장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이른바 '살생부'로 불렸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노무현 사람', '참여정부 인사'라는 이유로 공기업 사장에 부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그 사람이 공기업에서 얼마나 일했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정순균 방송광고공사 사장.
ⓒ 권우성
정순균

-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서 자신을 평가한다면.

"1년 10개월 일했는데, 소신껏 열심히 일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고객만족도 면에서 코바코는 2005년 76.5점(100점 만점), 2006년 92.7점, 2007년 91.3점을 받았다. 경영평가 면에서도 2005년 9등에서 2006년 4등으로 올라갔다. 혁신 단계에 대한 평가에서도 2005년 6단계 중 4단계를 받았다가 2006년 5단계로 끌어올렸다. 코바코의 과거에는 없었던 성적이다."

 

- 한나라당쪽에서는 참여정부의 기관장들에 대해 '보은 인사'라고 폄하한 바 있다.

"그렇게 평가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보일 것이다. 일반인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참여정부 인사 중 공모제 등 새로운 틀과 경쟁을 거쳐 그 자리에 올랐고, 공기업을 충분히 맡을 능력이 으니까 배려를 했을 것이다. 단순하게 '정권 창출에 기여했으니까 보은의 뜻으로 나눠준다'는 방식은 아니었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의 업무에 대해 평가해보면 알 것이다." 

 

- 기관장 자리에 버티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나 됐나. 인수인계의 과정도 있다. 시스템(관련 법 규정)이 바뀌면서 정부가 바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야 한다. 또한 공식 응모를 통해 면접도 실시한다. 적어도 두 달이 걸린다. 옛날처럼 '너 가라' 명령할 수가 없다. 새 정부가 시스템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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