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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사랑의 천재화가 고흐 [재미있는 性이야기]

이경희330 2008. 11. 3. 23:57

Woman Sitting by a Cradle
 
Spring, 1887
Vincent Van Gogh ( Paris )

 

 

1890년 7월 태양이 쨍쨍 내리쬐던 어느 날, 한 사나이가 보리밭을 걸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보던 그는 권총을 머리에 대고는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처절한 자살장면이다. 《해바라기》 《자화상》 등의 작품이 수십 억 원에 경매되는 고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을 정도로 불행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의 실연(失戀)에서 기인한 성생활도 요인이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고독을 즐기던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부친의 영향으로 목사 양성소를 수료한 후 전도사가 되어, 남부 벨기에의 탄광 지대에서 전도활동을 펴던 그는 우르술라라는 처녀와 첫사랑을 한다. 하지만 침울했던 고흐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그녀는 이미 정혼한 남자가 있던 터라 아픔만을 주고 말았다. 상처가 컸던 고흐는 고향으로 돌아와 상처를 달래던 중 이종사촌인 케이를 사랑하게 된다.

 

매혹적인 케이의 자태에 한없이 넋을 빼앗겼던 고흐는 촛불로 손등을 지져가며 아버지에게 결혼을 간청하지만 허락을 얻어내지 못한다. 이종간에 결혼할 수 없다는 완고한 반대였다.

 

결국 모든 것을 잊기 위해 그림에 매달렸다. 하지만 불행한 고흐의 사랑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다섯 아이를 둔 유부녀이자 직업 창녀인 크리스틴과의 동거로 이어진다. 가난한 화가에게 크리스틴은 무료로 모델이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몸까지 바치는 헌신적 사랑을 주었다. 그러나 섹스밖에 모르는 창녀와 천재화가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다. 사랑이 없는 섹스는 고흐의 마음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의에 빠졌던 고흐에게 다시금 창작의 열정을 불어 넣어준 인물은 고갱이었다. 두 천재화가는 공동 생활과 예술에 대한 상호영향으로 주위 사람들이 동성연애자로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남성적인 고갱과 여성적인 고흐의 성격은 물과 기름 같아서 늘 다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툼 끝에 화를 삭이지 못한 고흐가 면도칼로 오른쪽 귀를 잘라내는 사건이 벌어지고, 둘은 결별한다.

 

다시 혼자 남은 고흐는 이미 정신 착란 상태에 이르렀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창작에 열중했으나 거듭된 실연은 끝내 그를 자살로 몰았던 것이다. 열정적인 풍경화와 인물화로 현대 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천재화가 고흐의 불행은 거듭된 실연과 사랑이 없는 섹스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 본 기사는 퍼스트비뇨기과 (www.drim2u.co.kr)와의 기사제휴를 통해 반짝반짝 연애통신 (www.yonae.com)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