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여권 권력암투는 ‘팀킬’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비열한 정치투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팀킬은 온라인 게임 용어로 같은 팀의 동료를 죽이는 비 매너 행위를 뜻한다. 현재 영포회 논란이나 선진국민연대를 둘러싼 의혹 유출의 진원지는 대부분 ‘친이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오죽했으면 야당인 민주당에서까지 “청와대 내부에서나 한나라당에서 박영준 차장의 횡포를 민주당이 막아달라고 제보를 해오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겠는가. 민주당의 ‘여당 내부 권력투쟁설’에 한나라당은 발칵 뒤집혔다. 역대 정권의 암투를 보더라도 주로 정적들이 언론에 흘려 그 효과를 극대화시킨 것에 비한다면 이번 여권의 ‘팀킬 전쟁’은 정치의 금도를 벗어났다는 지적도 많다. 그렇다면 이번 전쟁이 시작된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짚어보자. 지난해 10월경 청와대 비서동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난 바 있다.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사건의 전모는 이명박 대통령과 포항 동향인 L 비서관이 대통령 업무보고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제비서관실 모 실무 과장이 자신과 협의를 하지 않고 단독으로 일처리를 한 데 불만을 품고 그 과장에게 심한 욕을 하며 소란을 피운 것이 발단이 됐다. 그 뒤 L 비서관의 상관이었던 Y 실장이 그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L 비서관은 다음 날 다시 경제비서관실을 찾아가 “똑바로 하라”며 고함을 친 뒤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L 비서관은 그 뒤로도 “내가 여기서 밀리나 어디 두고 보자”라며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독대를 하는 ‘실세’라는 이야기도 주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흘리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당연히 그 소동이 있은 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일개 비서관이 상관인 실장이 만류하는데도 듣지도 않고 과연 백이 세긴 세구나”라는 뒷말이 많았다. L 비서관은 당시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다. 그래서 대통령과의 독대 여부도 자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기도 했다. 더욱이 L 비서관은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의 정보활동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받은 바 있다. 이를 두고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이인규 불법 사찰 파문이 터지자 “주변에 공공연하게 그런 사실들을 떠들고 다녀 결국 일이 이렇게 커진, 자업자득의 결과”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과 ‘직통’하는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은밀한 정보활동이 지난해 비서동 소란 이후부터 조금씩 새나가기 시작해 결국 이번 불법 사찰 파문으로 그 고름이 터진 것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박영준 차장 측은 자신들 정보라인의 최전선에 있었던 이인규 지원관이 날아간 것에는 정두언 의원 측 등 반대파들의 제보가 아니고서는 그런 은밀한 활동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중립성향 관계자는 “이 지원관이 지난해 국회에서도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다 의원들의 제지를 받는 등 윤리지원관실이 지나치게 위세를 떨친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번에 불법 사찰 활동이 발각된 것은 일부 실세들의 지나친 권력남용이 공무원 등의 반발을 불러온 결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이 친노세력의 조직적 반격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인규 지원관이 불법 사찰 활동을 벌인 대상인 김종익 씨가 참여정부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다는 배경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세력이 정밀한 계획을 가지고 반격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액수가 미미하긴 하지만 1000만 원 상당의 친노세력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며 이번 사건의 정치적인 의도를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출입기자는 “이인규 지원관이 봤을 때 김종익 씨를 순수한 일반인으로 판단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친노세력이 이명박 정권을 흔들기 위해 조직적으로 벌이는 반정부 활동의 중심에 선 인물을 김 씨로 보고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사찰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지금으로선 아무런 예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장이 혼미한 상태다. 특히 박영준-정두언 양측은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흘리며 치열한 권력 암투를 전개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영준 차장이 그동안 한두 차례의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았듯이 이번에도 ‘대마불사’를 보여줄지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먼저 박 차장이 이번에도 신승할 것이라는 주장을 보자. 박 차장 측은 이번 파문이 정두언 의원 측에서 권력투쟁을 유발, 여권을 벌집으로 만들어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도 자신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 차장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도 이번 파문을 접하면서 대안 없이 권력투쟁만 일삼는 소장파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으로 안다. 정두언 의원도 이번 사건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현재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결국 권력투쟁만 일삼는 소장파가 이번에도 패배할 것이다. 명분 없이 권력다툼만 벌이는 것을 국민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은연중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대통령실장에 임태희 의원이 내정된 것도 박 차장 측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임 내정자는 이상득 의원의 양아들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현 주류의 핵심 실세다. 여기에 정권 출범 초기 박영준 차장과도 비서실 인사를 주도하며 호흡을 맞춰왔다. 이 대통령이 임 내정자를 대통령실로 불러들인 것도 향후 박영준 차장 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의 라인업을 크게 깨뜨리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간접 사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박 차장 라인인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이 이번 청와대 개편작업을 주도한 것도 그의 ‘생존’을 보장하는 안전판으로 통한다. 청와대 개편 작업 초기 일부 수석의 유임설이 흘러나온 것도 박 차장 라인이 기존 권력구도를 그대로 가져가려는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젊은 행정관들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가 박 차장의 ‘입맛대로’ 개편안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권력투쟁의 서막이 올랐고, 그 와중에 이인규 지원관 파문이 터지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박 차장은 이번 파문이 일어나기 전 자신의 영향력 아래 청와대 개편을 주도한 뒤 내심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길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박 차장이 이번에야말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기류도 강한 편이다. 먼저 임태희 대통령실장 내정자 기용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사실 이상득 의원이 그동안 박영준 차장을 정점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절반의 통치를 해왔는데 이번 파문으로 더 이상 박 차장에 대한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 자신의 또 다른 심복인 임태희 의원을 대통령실장에 기용했다는 것이다. 임태희 내정자와 함께 박 차장을 투톱으로 기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장파와의 적당한 타협을 위한 희생양으로써 박 차장을 내칠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면서 ‘형님’ 이상득 의원은 임태희 내정자로 말을 갈아 타 계속 국정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시킬 것이란 얘기다. 박 차장 라인의 인사 비리가 결국 그를 낙마시킬 것이란 예상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현재 언론사에는 박 차장의 인사전횡과 관련된 각종 제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는 그동안 박 차장이 여권 내부투쟁에서 싸우던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정두언 의원 등이 박 차장의 권력 사유화를 제기할 때였던 2008년 무렵에는 인사 비리가 큰 문제가 되던 시기가 아니었다. 당연히 박 차장 측은 “문제가 심각하지도 않은데 소장파의 사욕 때문에 권력투쟁을 일으키고 있다”라며 이 대통령을 설득시켰고 혼란야기를 꺼리던 이 대통령도 그 진언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박 차장 라인인 이인규 지원관의 불법 사찰 의혹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소장파의 불순한 권력투쟁 야기라는 박 차장 측의 주장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박영준 국무차장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신뢰도는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박 차장이 그동안 드러난 각종 인사전횡 의혹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이 대통령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위기정국을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그동안 적체되어온 인사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올 경우 성난 민심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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