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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체포, MB정권에 두고두고 짐이 될텐데...

이경희330 2009. 1. 10. 16:13

이상하다. 미네르바가 긴급 체포됐다는데, 9일자 신문을 다 뒤져봐도 그를 다룬 사설 하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네르바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복달하던 조중동으로선 이보다 더 기쁘고 복된 굿뉴스가 없을텐데, 그 흔하디 흔한 사설 하나 내지 않고 무게를 잡고 있는 폼이 신기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째 이런 일이?

체포된 미네르바가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서? 천만에! 알 사람은 다 안다. 위기설에 허덕이던 지난 해 대한민국에서 그보다 더 파워풀한 인물은 없었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이나 강만수 장관의 위세도 그 앞에선 게임이 안됐다. 그는 네티즌들이 떠받드는 세칭 '인터넷 경제대통령'이었다. 다음 아고라에 쓴 그의 글은 인터넷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에 퍼젔고, 그의 이름은 국회나 정부인사들의 만찬장 그리고 TV토론프로에서도 회자됐다.

그는 단순한 한 인물이 아니라 사회현상이었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그에 대한 열광과 신드롬으로 대한민국이 들끓었다. 그는 뉴스의 초점이었고 최고의 이슈메이커였다.

그를 '패러디'한 두 편의 칼럼 - <한국일보> 서화숙 칼럼과 <파이낸셜 뉴스> 곽인찬 칼럼 - 에 '대한민국 일등신문'과 '일류신문'으로 자처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 여러 언론사들이 연거푸 속아 넘어간 사실이 그를 반증한다.

그러면 미네르바가 체포된 사실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서? 천만에! 미네르바가 중요한 인물이면, 당연히 그를 체포한 사실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를 반영하듯, 신문마다 미네르바 체포소식을 1면에서 비중있게 다뤘고, 관련기사를 따로 배치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 정도면 사설로 다시 어루만져 주는 게 여론 형성의 자연스런 코스다. 그런데도 조중동이 - 조선일보는 년말행사인 MBC 연기대상 구설수까지 사설로 다루기도 했다 - 이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사설을 내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조중동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어쩌면 미네르바 체포에 따른 역풍 내지는 후유증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검찰 수사로 미네르바가 박씨 성을 쓰는 30대 무직자로 밝혀졌다지만, 그를 미네르바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미심쩍은 구석이 적지 않은 탓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전문대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한 30대 무직자가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나 환율폭등, 시중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로 대출금리를 올릴 거라는 사실 등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을까? 혼자서 독학하는 것만으로 경제 흐름을 읽는 이런 눈을 갖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조중동 시각이 그럴 거라는 얘기다.)

게다가 문체에 일관성이 결여된 점도 눈에 거슬린다.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란 닉네임을 쓰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러다 만의 하나, 검찰이 미네르바가 아니고 엉뚱한 사람을 잡은 것으로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그 뒷일은 차마 상상하기조차 겁난다.

그가 미네르바가 확실하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강만수 장관을 위시해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경제 독학한 30세 무직남"(조선, A5)보다 못하다는 세간의 조롱과 조소를 꼼짝없이 뒤집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무한신뢰를 받은 경제팀으로선 이보다 더한 수모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 논객을 폭력적으로 잡아 넣었다는 주위의 비난도 골치꺼리다. 그렇잖아도 사이버모욕죄다 뭐다 해서 인터넷까지 통제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온 터다. 이런 때에 정부 비판적인 글을 올렸다 해서 미네르바를 구속하는 건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MB독재의 전형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줄 수도 있다.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허위사실 유포"라는 죄목도 궁하긴 마찬가지다. 미네르바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옭아넣으려 한다면, "747 성장"이라든가 "내년에 주가 3,000" 운운하며 떠벌인 이들도 모두 동일한 죄목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이미 나오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일찌기 미네르바의 신원을 파악했답시고 "나이는 50대 초반이고 증권사에 다녔고 또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남자"라고 밝힌 정부 정보당국자나 그의 글을 실어준 신동아 측도 이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 또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네르바 체포는, 때리는 쪽에서는 일시적으로 기분은 상쾌할지 모르나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게 두고두고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사이버모욕죄를 포함, 국민 기본권을 옭죄고 있는 'MB악법들'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사건의 파장이 어느 쪽으로 튈런지 예상하기도 쉽지 않다.

▲ 문한별 편집위원 
조중동(을 비롯해서 MB정권에 우호적인 여타 신문들)이 뜸을 들이며 눈알을 굴리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런 제반 사정들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의 추이를 봐 가면서 대처하자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아마 입장이 정리된 내일부터는 '미네르바 사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조중동이 한 목소리를 낼지 아니면 어느 한 쪽에서'삑사리'를 낼지, 미네르바와 진보진영만 죽어라고 펀치를 휘두를지 아니면 하는 일마다 엉성한 정부와 검찰 쪽에도 잽 한 방 날리고 갈지, 미네르바마냥 사설 내용을 미리 추측해 보는 것도 제법 재미있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

쓸 데 없이 가방끈만 긴 먹통들보다 훨씬 지혜로운 "미네르바 포에버"~!

문한별/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