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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는 잡아가두고, 철거민은 떼죽음..이명박의 '막가파식 법치확립'이빚은 참극

이경희330 2009. 1. 23. 23:37

   
 

▲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서면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한 가운데 20일 오후 경찰 감식반이 사고현장에서 천으로 가린채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유성호

 
19일 밤 경찰이 다음 날 새벽 6시 신용산역 앞 5층 건물 옥상에서 농성 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들었지만 큰 사건이 벌어질 줄은 미처 예상 못했다. 재개발 현장에서 충돌은 다반사니 이번에도 고공 농성을 어느 정도 벌이다 협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경찰의 진압 작전 시간까지 미리 공개된 이상, 경찰 특공대 투입은 철거민들을 압박해 협상에 나서도록 하는 '겁주기' 정도로 생각했다.

   
 

▲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를 타고 옥상으로 투입되자,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져 컨테이너 내부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권우성

 
그러나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망자 6명은 지난 1989년 5월 이른바 동의대 사태로 경찰 7명이 사망했던 사건 이후 최대 사건이다. 지난 20년간 격렬한 집회가 여러 번 있었고 1~2명 사망한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형 사고는 없었다.

내가 잠시 잊었던 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전임 어청수 청장보다 더 강경파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최고 통수권자가 입만 열면 '막가파식 법치 확립'을 외치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점도 잠시 잊었다.

이번 진압 작전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50여 명의 철거민들이 '시너통'을 수십 개씩 쌓아놓고 있는데, 경찰 특공대는 그냥 들이닥쳤다. 컨테이너로 쌓아올린 '명박산성'을 패러디하려 했는지 대형 크레인에 매단 컨테이너에 경찰특공대를 태워 옥상에 진입시켰다.

그러고는 그 컨테이너로 철거민들이 건물 옥상에 설치한 망루를 치거나 위에서 짓눌렀다.

<오마이 TV>가 촬영한 당시 동영상을 보면 시민들이 "망루에 물이 차 철거민들이 안에 매달려 있는데, 컨테이너로 저렇게 쳐대면 사람들 떨어져 죽으라는 거냐"고 외치는 소리가 들어있다.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은 20일 낮 브리핑에서 "경찰 특공대원들이 망루 1층에 진입하자 망루 3층에 있던 농성자가 특공대원들에게 시너를 통째로 붓고 화염병을 던져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철거민들과 주변에서 지켜보던 일부 시민들은 "경찰이 컨테이너 박스로 망루를 쳐대면서 그 충격으로 시너가 터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리적 화재'의 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식 결과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번 화재의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우선 이번 사건은 김석기 내정자가 지난 18일 경찰 총수로 내정된 지 불과 이틀 만에 벌어졌다. 이는 단지 우연의 일치이거나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 격'은 아니다.

   
 
 

▲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유성호

 
 
참극은 이제 시작에 불과…. 더 큰 비극 오나?

김 내정자는 서울청장 시절 촛불 시위자를 체포하는 경찰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할 계획을 세웠다가 "시위대를 사냥하려는 거냐"는 맹비난을 받았던 전력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입만 열면 법치를 강조해왔다. 지난 1년 성과를 못낸 이유를 '떼법' 탓으로 돌리며 올해 들어서는 더욱 법질서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18일 4대 권력 기관장 인사를 하면서 주로 TK 인물로 채웠다. 이전 정권에서는 말기에나 보여주던 '고향 사람으로 권력 핵심 채우기'가 집권 2년 차에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경찰 총수가 된 김석기 내정자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촛불 시위 사냥꾼' 아이디어로 정권 내부에서 성과를 올렸던 그가 이번엔 '철거민 토끼몰이'로 주군에게 충성심을 보이려다가 이번 참극이 벌어진 것 아닌가?

김석기 내정자는 철거민들을 전광석화로 진압함으로써 이른바 그들이 말하는 '떼법'이 어떻게 최후를 맞는지 '본때'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는 단지 김석기 내정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명박 정권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정권을 운영할지 여러 징후를 보였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지난해 12월 1일 '친박계'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상황이 매우 엄중하고, 내년 3~4월이 되면 더 어려울 것"이라며 "현 정부나 체제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2월이 되면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3~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부도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이 (상황을) 구조적 문제로 돌리게 되면 현 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권 실정으로 살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체제 위협' 세력으로 평가하는 그들이기에 각종 악법을 강행 처리하려 했고, 권력 기관에 'MB 친위대'를 포진시켰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망치 한 자루'밖에 들어있지 않다. 정권에 불만을 가진 자들을 망치로 내려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법치 확립'의 전부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해임·파면했고, YTN과 KBS의 일부 기자·PD들도 거리로 내쫓았다.

미네르바는 그의 글이 정확했던 탓에 엉뚱한 죄목으로 체포됐고, "적정한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하던 철거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이 모두다 이명박 대통령의 '막가파식 법치 확립' 이 부른 참극이다. 문제는 이 참극이 이제 그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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