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좌경의 악령에 빠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 驅魔를 |
최근 로마 교황청 소식통에 의하면, 악령든 환자와 대자연 숭배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악령을 쫓아내는 ‘구마사 신부’를 한 300명가량 전문적으로 양성할 계획이라는 것을 교황청이 발표한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 한 30년 전에 본인은 미 8군 등에서 흘러나온 책이 헐하기도 해서 근무처에 팔러 온 행상인으로부터 구입한 책들 가운데에는 ‘구마사’(the Exorcist)란 팜플렛이 끼여 있었다. 구마사(驅魔師)란 문자 그대로 귀신 또는 악령이 든 환자에게서 귀신 또는 악령을 쫓아내는 사람을 일컫는데, 주로 중세 때부터 가톨릭에 그런 전문적인 구마사의 역할을 하는 신부가 ‘주교의 허락’ 하에 그 일을 하였던 것으로 서문에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서문에는 구마의 절차상에 해당 신부가 반드시 읊어야 하는 ‘구마 기도문’이 실려 있었는데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한 문단(패러그래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언젠가 대수재 때 지하 창고에 보관해둔 많은 책들이 흙과 쓰레기 등이 범벅이 된 침수로 하는 수 없이 그 책도 버리고 말았다. 그 책에는 귀신들린 실제 사례가 많았지만, 지금 기억나는 한 편의 사례는 뉴욕에서 있었던 일로서 불과 7,8세밖에 안 된 남자 어린이는 자라면서도 영어를 전혀 못하고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를 제멋대로 지껄였다고 한다. 어린이 부모는 정신과 의사에게 보여 보아도 별 도리가 없고, 결국 의사의 권에 따라 언어학자들에게 보여 보았다. 희랍어를 하는 언어학자는 희랍어 단어는 더러 나오지만, 희랍어만은 아닌 것 같다며 고대 희랍어를 연구하는 학자에 대한 소개를 해주어 그에게 보였더니, 그의 진단은 영락없이 난해한 ‘고대 희랍어’였다. 그것도 아주 유창한 말솜씨라는 것이다. 가톨릭이 구마 신부의 힘을 빌어 그 고대 희랍어 학자와 악령과의 대화에 의하면, 그 악령은 고대 희랍에서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쟁쟁한 학자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어린이에게서 빠져 나가기를 거부하는 악령을 내쫓는 데 구마사 사제와 그 고대 언어학자와의 끈덕진 공동의 노력으로 마침내 그 악령은 퇴치됨으로써 이제 그 아이는 고대 희랍어라곤 한 톨도 못 하는 모양이다. 그런 것을 보아 이 세상에 귀신이나 악령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는지 모른다. 바티칸의 구마사 양성 계획 발표를 미루어 현재 유럽은 신구교 막론하고 기독교라는 종교가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임에도 그렇게 악령 든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조치에 앞서 교황청이 먼저 취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본인은 길게 서론을 늘어놓은 것이다. 악령 든 피해자는 한 사람 뿐이지만, 길을 잘못 걷고 있는 사제의 가르침으로 무수한 신도가 정신적으로 오염되어 길을 헤매고 있다면, 그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부터 교황청의 조치가 더 시급한 것이 아닐까, 고 생각된다. 소위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집단과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신부들이 바로 그러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이 이 집단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서 조직되고, 활동해 온 것이 아니라, 주교단의 허락 없이 한 마디로 교회법을 벗어난 ‘임의 단체’이다. 이 집단은 무엇보다 ‘해방 신학’을 믿고 있는 사제들의 집단이다. 정치-사회적인 時空에 깔려 있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검은 자본주의’ 내지 ‘제국주의적인 장치’를 벗겨야 제대로 하느님의 복음이 전달될 수 있다고 보는 신학이 바로 해방신학이다. 신구교 가릴 것 없이 ‘60년대에 다국적 기업의 ’대리정권‘이 중남미에 횡행하던 상황에서 해방신학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시대정신일 수도 없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성직자들이 먼저 목회 활동보다 민중을 덮고 있는 저 억압의 기전을 벗겨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해서 총을 들고 체 게바라 일당과 협력해서 게릴라로서 싸웠으며, 이로 인해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결과로 검은 억압과 맞서 싸운 지난날의 사제들에 대한 민중의 존경심은 아직도 살아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교황청은 아직도 해방신학을 이단으로서 배척하는 입장이다. 우리의 경우는 70년대에 들어와서 ‘유신’이라는 폭압적인 정치문화로 인해서 한 때 ‘해방신학’의 공간을 맞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나 그 생명은 길지 않았다. 억압적인 군사정권이 사라진지 무려 15년이 지난 데도 그 해방신학의 유령이 아직도 살아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억압의 정치 풍토를 열망하는 듯한 손짓을 한다는 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가까운 두 가지의 예를 들어보겠다. 작년엔가, 재작년엔가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사제단이 보여준 태도를 볼 때 그들이 ’적화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면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도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문 정현 형제 신부는 미국 백악관 앞에까지 찾아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양키 고우 홈”을 부르짖은 사제들이다. 뿐만 아니라, 문 정현 형제 신부들은 주한 미 공군의 폭격연습도 집요하게 반대를 해온 붉은 사제들이다. 미군기지마다 찾아다니면서 시위를 집요하게 주도한 인물들이다. 몇 년 전에 국내의 모 시민단체와 청와대, 국정원, KBS 등이 송 두률 북한 정치국 예비 후보를 초청했지만 검찰은 그를 구속해버렸다. 권력 고위층의 압력으로 그는 2심에서 풀려났는데 개판 같은 권력에 지조 없는 사법부 판사의 덕분인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이 자가 풀려났을 때 상기 ‘사제단의 신부 함 세웅이란 작자의 코멘트가 걸작이었다. “지하에 계신 안 중근 의사께서 송 두률 선생이 풀려난 것에 대해서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안 중근 의사는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천주교 신자이지만, 일제 때 리델이란 프랑스인 성직자가 서울 교구장으로 있을 때 왜경인지 총독부인지가 안 의사가 교인인지의 여부를 물어 왔을 때 그 교구장은 “신자가 절대로 아니다”라고 거짓 확인해준 바 있다. 그러한 천주교 서울 교구일진대 서울 교구의 함 세웅 신부가 무슨 낯과 염치로 ‘안 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 회장 직을 뻔뻔스럽게 맡은 것도 뭐한 일인데가 그것도 모자라 안 의사를 송 두률이라는 붉은 인사와 연결시키는지 참으로 천주교가 이렇게 타락할 줄을 안 의사인들 생전에 알았겠느냐? 더욱이 천주교 교리와 붉은 유일사상의 전체주의와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함 신부는 청와대에 끼리끼리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박 형규 목사와 더불어 그 행사에 단골로 초청받는 해바라기성 인물이다. 천주교 안에는 별 희한한 사제가 다 있다. 부산 대교구에 몸 담고 있는 송 기인 신부라는 자는 노 무현의 영세 대부라는 점을 기화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자이다. 이 위원회는 그 산하에 도대체 16개인지 17개인지 알 수 없는 각종 조사 위원회를 총괄하는 막강한 대통령 특별위원회로 알려지고 있다.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 위원회가 하는 일은 한 마디로 요약해서 1905년 우리의 국권이 상실되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약 100년 동안에 있었던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것이 그 취지이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역사 뒤집기’를 한다는 것이 역사 학자들도 아닌 주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별의 별 좌익분자들이 그 구성원이 되어 친일파와 그 후손들을 이 잡듯이 찾아내고, 그 후손들이 소유한 재산을 찾아내 몰수케 하는가 하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발생했던 각종 공안 사건들을 거꾸로 뒤집어 반공법-국가 보안법을 위반해서 이미 단죄돤 좌익 사범들을 복권시켜 국가 예산으로 보상을 베풀게 하는 따위의 국기를 문란케 했던 집단이 상기 위원회이다. 이런 ‘역사 뒤집기’는 그 배경을 좀 더 깊숙이 파고들면, 우리의 건국사와 헌정사를 폄하하는 대통령의 ‘지난날의 地下歷史觀’(해방 후의 역사는 불의와 위선으로 채워진 친일파의 기득권 세력이 차지한 역사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바꾸어 말하면, ‘역사 뒤집기’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國基紊亂 행위임이 분명하다. 이런 일이 ‘국가 공권력’(대통령 특별위원회)이라는 합법성을 위장한 형식을 빌어 조직적으로 발생해 왔다는 것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특히 북한에서-있어 온 어떤 의미에서는 ‘숙청’과 ‘혁명’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역사 뒤집기’의 총괄 책임자로서 천주교 사제를 앉혀 놓았다는 것은 국민에게 마치 이 역사 뒤집기가 ‘윤리-도덕적’인 척 하면서 실상에 있어서 ‘숙청’을 위장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이다. 천주교는 이런 더러운 일에 천주교 사제가 이용되었다는 것을 번연히 알 터인데도 모르는 척 방관해 왔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기만이 아닐 수 없다. 이 송 기인이라는 자는 작년엔가 천주교 방송 미디어인 ‘평화 방송’에 출연해서 “주한 미군은 자기네 이해관계로 한국에 와 있는 것이지 결코 우리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우리 끼리’ 남과 북이 합의하면, 주한미군의 철수가 가능하다”라고 친북좌경답게 역사 뒤집기의 총수다운 능청을 떨었다. 술을 좋아해서 낮에도 반주로 소주 한 병을 곧잘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차라리 술에 곯아 그런 헛소리 했다면,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은지 모르겠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얼마 앞두고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무엇을 노리는지 정체불명의 묘한 ‘내부 고발자’를 �세워 삼성 그룹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 얘기로 넘어가보기로 한다. 친북좌경성과 연결시켜 이 사제단의 그러한 행위는 주한미군 철수와 평택 미군기지 건설 반대만큼이나 이 나라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시민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사제단의 행위는 이미 “우리들은 스스로 사제가 아니다”는 것을 스스로 표명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철면피에 가깝다.사제가 宗敎外的인 세속 일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도 우습거니와 “검찰이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 안 하면, 떡값 검사 명단을 밝히겠다”라는 국가 사법기관에 협박을 하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는 것으로 보아진다. ‘내부 고발자’라는 것도 정도 문제이지 그 고발의 범위를 보면, 대한민국의 브랜드라는 대기업을, 수출 규모에 있어서 총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대기업을 엎어버리겠다는 야심이 없고서야 어찌 그렇게 무모한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내부 고발자가 아니라 ‘대기업 파괴자’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삼성 전자의 윤 모 회장이 북에 가서 무어라고 지껄인지는 몰라도 기업인은 제발 입 조심 해야 하리라고 본다. 한국 사회에는 친북좌경분자들이 종교계이고, 정부 내이고 곳곳에 깔려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마당에 한국 검찰이 그들의 협박에 못 이겨 투망 식으로여기 저기 닥치는 대로(전방위로) 물증을 포획하는 행위를 볼 때 한국인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상하게 했다. 이 나라는 어디 친북좌경 종교-시민단체들이 다스리는 나라인가? 고. 국회의원들도 얼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이 특검화 할 성질의 것인가? 입법부는 스스로 입법부에 주어진 권한과 권위를 져버리는 일이 아닌가? 지난 12월 24일 저녁에 본인은 MBC의 ‘PD 수첩’을 보고 참으로 고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사제단의 본부가 있는 서울 제기동 성당의 김 일국 신부’(사제단의 사무총장)는 본인의 글을 읽은 탓인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능청스럽게 농했다. 내부 고발자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니까 도와 달라”는 전화가 왔기 때문에 김 신부는 “오라”고 해서 내부 고발자가 택시를 타고 오는 장면을 나타내는 우스꽝스러운 동영상을 MBC는 보여주었다. 본인의 짐작으로는 기자회견을 하기 얼마 전에 ‘사제단과 내부 고발자가 조인트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부 고발자는 삼성에서 나온 지 몇 년 되었으며, 한 때 한겨레 신문사의 편집위원으로 있었지만, 자신의 고발이 여의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오래 전에 고발하리라는 계획이 ’사제단이든 어떤 집단이든 그런 집단과 더불어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첫째로 김 일국 신부는 ‘내부 고발자’를 ‘강도를 만난 피해자’로 비유하면서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내부 고발자를 숨겨 재워 주면서 보호하는 것은 교회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이 나쁜 일인가?'라고 그는 반문하기도 했다. 우리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브랜드이자 우리 국민의 젖줄이기도 한 대기업의 파괴에 이를 정도의 고발자를 강도를 만나 피해를 본 사람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악을 응징하려는 고발도 누가 보더라도 사회 통념상 어느 정도의 일이 아닌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 3칸을 다 태우거나, 곱사를 고치기 위해 곱사등이를 홍두깨로 때려 갈기면, 곱사는 고칠지 모르나 곱사등이는 죽게 된다. 이럼에도 과연 김 용철 변호사를 강도를 만난 피해자로 표현하는 신부가 어디 제대로 理性을 가진 사람인가? 둘째로 김 신부는 문 규현 신부가 북으로 가서 임 수경 대학생을 데리고 온 일로 3년 징역형을 받았지만 아주 떳떳한 것으로 자랑을 늘어놓았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corderito)을 찾아 데려오는 일은 교회가 당연히 할 일이라고 한다. 제 발로 북에 가서 ‘영웅 대접’을 받은 친북좌경의 대학생이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한다면, 북에는 적화되기 전에 가톨릭 신자들이 괘나 많았다. ‘사제단 신부들은 북에 가서 그 많은 양들을 데려올 용의는 없는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공식적으로 북한동포의 인권탄압에 대해서 성명서 하나 발표한 적이 있는가? 김 신부는 지 학순 주교가 구속되었을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고 하면서 지 주교와 ‘사제단의 관계를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지 주교는 노 태우 정권 때인가 북에 가서 여동생 집에 머물면서 “북한을 자유케 해달라”고 미사를 올린 반공 주교인 점을 김 신부는 알고 있기나 한가? ’사제단이 아직도 해체하지 아니 하고 친북좌경을 걷고 있는 상황을 내려본다면, 지 주교는 대성통곡을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끝으로 로마 교황청은 악령을 내치는 구마사 신부의 대대적인 양성도 필요하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친북좌경의 악령에 빠져 주교의 가르침도 듣지 않고 사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제멋대로 날뛰는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해체하는 한편, 소속 사제들을 교회 밖으로 내치든가, 아니면, 올바르게 인도하는 가르침을 베풀어 주었으면 한다. 서울 일원동 성당의 신부는 ‘사제단 소속으로서 강론 시간(’말씀의 전례‘) 에 “하느님의 복음이 아닌 다른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는 여신도에 대해서 “성당에 안 나와도 좋다”라고 말하자 모 남자 신도가 “사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항의하자 신부의 보디가드인 건장한 청년 몇 명이 그 남자 신도의 팔을 꺾어 틀어 억지로 성당 박으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주한 교황청 대사는 한국의 사정을 정확히 교황청에 보고라도 하는가?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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