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광양(光陽)에 매향(梅香)이 가득하다. 구례에서 하동, 광양에 이르는 19번·861번 도로를 따라 눈길 주는 곳마다 봄색이 완연하다. 그중에서도 광양은 봄이 가장 먼저 뭍에 첫발을 내딛는 곳. 혹한을 이겨낸 보리가 봄바람에 출렁이고 폭설을 맞은 듯 나뭇가지마다 흰 꽃이 풍성하다. 해풍에 실려 온 봄기운에 봉오리를 풀어헤친 매화가 꽃길을 만들었다. 그 길을 구름에 실려 가듯 향기에 취해가듯 두둥실 떠간다. 제아무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이른 봄볕에 겨울이 스러져가는 광양은 ‘무릉매원(武陵梅源)’이다.
투박한 가지에 꽃을 피우는 매화는 겨울 끝에 여리고 애달픈 꽃잎을 열어 세상에 봄을 알린다. 길섶에 핀 매화는 바람에 잎을 날려 눈처럼 보이고, 이른 아침 물안개 피는 숲은 뭉게구름 피어나듯 몽롱하다.
그 꽃이 망망한 수해(樹海)를 이뤄 절경을 이루니, 이즈음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양의 봄 풍경이다. 혹, 눈이라도 내리면 ‘설중매’를 볼 수 있어 행운이다.
한반도 남단 중앙에 자리한 전남 광양은 북쪽으로 백운산, 남쪽에 광양만, 동쪽에는 섬진강이 흐르는 남수북산동천(南水北山東川)의 형국을 가진 천혜의 고장.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와 호남벌을 힘차게 내달리며 호남정맥을 완성하는 광양의 백운산(해발 1218m)은 530리 섬진강 물길을 갈무리해 광양만으로 길을 터준다.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만 40여㎞. 그 산자락에 다압면 섬진마을이 고즈넉이 안겨 있다.
‘매화마을’로 불리는 섬진마을은 ‘봄 1번지’. 마을 주변 산야를 하얗게 물들인 매화나무는 10만여 그루에 이른다. 봄볕에 앞다퉈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는 푸른 기운이 섞인 청매화, 붉은 빛이 감도는 홍매화,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백매화가 한데 어우러져 장관이다. 그중 향기의 으뜸은 청매화.
마을입구로 들어서면 매화나무가 도열해 마중하니 선유(仙遊)의 세상이다. 성급한 마음에 길을 나선 가족과 연인, 노인들은 때 이른 꽃소식에 마냥 즐겁다.
매화는 겨울 끝 자락에서 꽃망울을 터트리지만 만개 시기는 3월 중순께. 이즈음 고즈넉한 산골풍치와 유유히 흐르는 강, 선비의 꽃 매화가 어우러진 낭만적인 풍경은 상춘객의 발길을 붙들고도 남는다.
매화마을 내 청매실농원은 ‘매실 명인(名人)’ 홍쌍리씨가 피땀 흘려 가꾼 매실농장. 이미 명소가 된 지 오래다. 1930년 김오천선생이 심은 70년생 수백 그루를 포함해 매화나무가 단지를 이루고, 2000여개의 옹기에는 봄이 무르익듯 매실이 익어간다.
매실차로 입을 추기고 오솔길을 따라 등성이를 에돌면 매화 천지다. 매실농원 언덕 매화꽃 너머 섬진강 풍경은 백운산 자락 매화꽃과 섬진강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발아래 골짜기를 흘러 섬진강변을 수놓은 매화의 자태도 일품. 매화는 밤이 깊어질수록 향을 더해 달빛 아래서 매실주 한 잔을 마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영화 ‘첫사랑’ ‘청춘’ ‘흑수선’ ‘취화선’과 드라마 ‘다모’의 촬영지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닐 터.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매화마을에서 구례방향으로 10여분을 달리면 다사마을.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매화가 숲을 이룬 이곳도 매화명소. 놓치면 후회한다.
매화를 더 만끽할 요량이라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경남 하동으로 발길을 옮겨도 좋을 듯싶다. 다압면 바로 맞은편 흥룡리 먹점마을은 하동의 ‘매화마을’. 섬진교를 건너 19번 도로를 따라 평사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흥룡리다. 먹점마을은 이곳에서 우측 산길을 따라 해발 450m에 자리잡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놓인 마을은 골짜기를 따라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외진 길을 따라간다. 그 옛날 난을 피해 지리산 자락으로 숨어든 사람들이 산을 깎아 다랑이논을 만들고 매화를 심었다. 마을사람들은 광양의 매화보다 이곳이 먼저 매화단지를 조성했다고 하니 들어볼 일이다.
마을에는 20여 가구가 산 자락에 흩어져 산다. 광양보다 10일 정도 개화시기가 늦지만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계곡과 다랑이논을 따라 핀 매화가 지천이다. 수확철에는 매실체험과 팜스테이도 가능하다. 골을 따라 이어진 먹점마을은 하동에서도 오지로 알려져 찾는 이가 드물지만 산골마을 특유의 풍광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화창한 봄날 섬진강 드라이브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왼쪽 섬진강과 오른쪽에 지리산을 두고 내달리는 19번 도로는 길가 양옆으로 매화나무, 벚나무, 배롱나무가 반긴다. 내친김에 구례까지 갈 참이면 산수유까지 볼 수 있어 남도의 꽃구경을 원 없이 할 수 있다.
〈광양·하동|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특산품&먹을거리:광양장도·궁시·죽필, 백운산작설차, 밤 등/숯불구이로 유명한 매실한우(061-762-9178), 삼대광양불고기(061-762-9250) 등이 맛있고 동흥식당(055-884-2257)은 섬진강재첩국이 유명하다. 또 망덕포구는 겨울에서 초봄까지 즐겨 먹는 벚굴이 유명하다. 100% 자연산인 벚굴은 어른 손바닥보다 크고 벚꽃이 필 때 가장 맛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사진).
▲주변 볼거리:청매실농원, 백운산, 옥룡사지, 매천 황현선생 생가, 광양 장도전수관, 봉암·불암산성, 김시식지, 망덕포구&배알도 등
▲숙박:시민휴양소(061-797-2607), 해뜨는 집(061-763-5827), 다우리펜션(061-762-6012) 등(namdominbak.co.kr 참조).
▲축제:17~25일까지 ‘달빛 어린 매화, 섬진강 따라 사랑을’이란 주제로 ‘광양매화문화축제’를 연다. 올해로 11회째인 축제는 추모제를 시작으로 길놀이, 매화꽃길 음악회 등 달빛 아래에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져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매화문화축제 홈페이지(http://maehwa.org).
▲문의:광양시 문화관광과(061)79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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