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의 강의평가 결과를 일반에 공개한 동국대 홈페이지>
동국대가 지난해 2학기 강의를 맡았던 교수들의 강의평가 점수를 실명으로 공개해 파장이 일었던 데 이어 한국과학기술원(이하 KAIST)과 연세대도 재임용에서 각각 6명과 5명의 교수들을 탈락시키는 등 대학가의 교수 개혁 조치가 확산되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국대 강의평가 점수 공개…교수들 반발 거세
지난달 25일 동국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2007학년도 2학기에 1941개 강의를 맡았던 교수 1049명의 강의평가 점수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전원 실명으로 공개했다. 그동안 이같은 등급정보는 학과장 등 일부 관계자들에게만 공개됐지만 올해부터는 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수강신청 메뉴에 접속할 경우 각 교수들의 평가점수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
오영교 동국대 총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버드대 등 미국의 대학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의정보를 공개해 왔다"며 "대학은 인재를 키우는 곳이고 학생들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좋은 강의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며 이같은 강의평가 점수 공개를 추진하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교수들은 즉각 반발했다. 지난달 27일 교수총회를 열고 학교 측의 강의평가 공개 강행에 대한 찬반토론을 벌인 동국대 교수회는 결국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강의평가 공개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설문 자체의 객관성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가 공개를 밀어붙인 것은 부당하다는 것.
정재형 교수회 회장은 "이번에 공개된 평가 점수는 합리성이 결여된 평가문항과 결격 사유가 있는 평가자도 참여해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하면서 "완전하지 않은 평가를 최초로 공개하면서 인기영합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오 총장을 겨냥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동국대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설문조사 결과>
그러나 오 총장은 "교수를 평가하는 16개 성과지표 가운데 강의평가 결과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강의평가가 나쁘면 승진이나 인센티브에 악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강력한 추진 의사를 밝혔고,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도 참여자의 75%가 강의평가 점수 공개를 지지하고 있어 갈등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연·고대 MBA 과정 등 대학가 강의평가 점수 공개 잇따라
동국대의 강의평가 점수 공개가 학교 측과 교수회의 감정 대립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연·고대 또한 경영전문대학원 MBA 과정에 한해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하기로 결정하는 등 타 대학들도 동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이 공개한 강의평가 결과>
고려대는 지난달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된 MBA 과정 202개 과목에 대한 강의평가 점수를 전원 실명으로 공개했다. 또한 이번 강의평가에 활용된 문항들도 함께 공개하고 앞으로도 1년 단위로 계속 강의평가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세대 또한 올해 1학기 과정부터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인터넷 시스템 보수 작업에 들어갔으며, 서강대는 올해부터 전 과목에 대해 학기 초반에 강의 '중간평가'를 실시해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한양대도 동국대의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자료 검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외국어대 또한 단과대학별로 강의평가 결과 공개 여부를 학장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에 경희대와 성균관대 등 서울 소재 주요 사립대들도 공개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같은 대학가의 강의평가 결과 공개는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무능력한 교수는 가라, KAIST 등 교수 심사 기준 강화
<출처-KAIST(위)와 연세대(아래) 홈페이지>
이처럼 교수 사회에 치열한 경쟁 체제 도입을 예고하는 칼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KAIST가 지난 3일 재임용을 신청한 교수 25명 중 6명을 탈락시켜 또 한번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동안 대학가에서 정치적 이유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교수가 드물어 이른바 '철밥통'으로 불리던 교수 사회의 관례가 깨지기 시작한 것.
실제로 지금까지 다수의 교수들이 전임강사로 임용돼 조교수 4년과 부교수 5년, 그리고 일정한 양적 성과물만 제시하면 정교수로 승진할 수 있었고 다시 7년의 재직기간을 채우면 정년보장(Tenure) 교수가 되는 것이 대학가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KAIST는 지난해에도 이미 정년보장 심사에서 35명 중 15명을 탈락시켰고 서울대 또한 지난해 2학기 승진 대상사 147명 중 55명을 유보시킴으로써 개혁바람을 예고한 바 있다.
KAIST에 이어 연세대도 4일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년 트랙(Non-tenure track) 조교수 20명 중 5명에 대해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성균관대도 3명의 교수들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시켰고 한양대는 재임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8명의 교수들에 대해 퇴출 전 3년의 유예기간을 선고했다. 서강대는 더욱 강화된 교수 심사 기준을 내세워 교수회를 긴장시켰고 서울대도 정년보장 심사에 대해 한층 강화된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긴장한 교수 사회, 지나친 '성과 중심주의' 우려
잇따른 대학들의 개혁 방침에 교수 사회는 자못 긴장한 분위기지만 이같은 변화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서울 소재 C대학의 이모(49, 남)교수도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그동안 정체됐던 교수 사회에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학문은 다른 분야들과 달리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따지기엔 무리가 있고 교수들의 연구환경을 개선하려는 학교 측의 지원 방안도 없이 무조건 결과만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비정년 트랙 교수 등 불안전한 고용 상황에 대한 문제점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경쟁을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만 따라가는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최근 들어 사립대들을 중심으로 천정부지로 치솟은 등록금 때문에 비난이 쏟아지자 이를 덮으려 교수 사회를 겨냥한 것은 아닌가 싶다"며 "등록금에 합당한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학교 측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동국대 관계자는 디시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예전부터 대학 안팎에서 교수 심사 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주요 대학들의 이같은 조처가 잇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강의의 질은 학생들의 만족도와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다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55개국 중 29위를 차지했지만 '대학 교육' 부문에선 40위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인재는 넘치지만 세계적인 대학은 전무한 현실, 무능력한 교수들에 대한 퇴출을 전면 선언한 국내 대학들이 높은 등록금만큼 가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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