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journal사회

"'잃어버린 10년'? 국민들은 똑똑해졌다"

이경희330 2008. 6. 4. 00:44
'해방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토론을 나누며 촛불문화제의 열기를 이어가던 시민들은 밤 11시 10분 경에야 시청 광장으로 돌아왔다.
 
시청광장에서도 시민들은 함께 온 이들과 둥글게 원을 그리고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민들에게 이명박 대통령 100일에 어떻게 대해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서울 OO고 이정현(19)군은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을 안 해주고 있다"며 "모든 사안에 대해 자세하고 국민들을 설득할 만한 내용을 발표하지 못하면서 현실적인 대안도 못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역사책에서만 보던 독재정권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며 "시민 의견을 반영하여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민주정부인데, 지금 보면 책에서나 봐왔던 군사정부의 방식을 현 정부가 닮아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울 금천구에서 온 최아무개(49)씨는 "한 마디로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며 이명박 정부 100일을 평가했다.
 
최씨는 "명령과 결단을 내리는 것을 보면 '차렷 열중쉬어' 하는 훈령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며 "국민들이 지난 대선에서 너무 많은 표를 줘 오만과 자만에 빠져서 지금과 같이 여론을 무시하고 통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회사를 운영하듯 미친 소 양보하고 FTA 체결하자는 것 아닌가"며 "하나 주고 하나 얻고 이런 방식을 국가 운영에 채택하면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씨는 마지막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때는 그래도 TV토론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이런 게 전혀 없다"며 "'잃어버린 10년'이라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똑똑해졌는지 정부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동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윤현경(31)씨는 "대통령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을 너무 밀어붙인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든다"며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고, 서민들의 생각을 많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100일 동안 서민들과 대통령의 생각이 너무 달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추진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추진력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너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청 광장에서 귀가하던 시민들이 종로 1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교통 정리를 하고 있던 교통 경찰과 시비가 붙기도 했다.
 
시민들은 "교통경찰 1명이 시민을 발로 찬 뒤 도주했다"며 "경찰이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되냐", "폭력경찰 물러가라"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사람들을 인도로 이동시키려 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다"며 "시민들의 주장처럼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갑자기 사람이 몰려오니까 경찰이 겁을 먹고 도망친 것을 뒤따라온 시민들이 오해하신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리 배후 있어요. 바로 패션 카페에요~"

패션 마니아 세 여성, 촛불 광장에 서다

 

오늘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은 할 말이 더욱 많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날이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대통령에게 '날리는' 멘트를 손팻말에 써갖고 나왔다.

 

수많은 시위대 가운데 눈에 띄는 손팻말이 있었다. '취임 100일중, 촛불시위 30일!!'

 

'아 정말 그렇구나'. 취재를 위해 다가갔는데 이 손팻말을 만들어 갖고 나온 사람들은 뜻밖에도 세 명의 여성이었다. 김송이(26), 최은실(27) 박소현(24)씨가 그 주인공. 절친한 친구로 보였지만 이들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란다.

 

"혼자 나온 사람들끼리 우연히 만났나 보군요."

 

아니란다. 엄밀하게 말하면 오프라인 상에서의 첫 대면이란다. 무슨 말인지 아리송해 하던 중에 세 여성이 입을 모아 말한다.

 

"배후 배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이렇게 꼭 써주세요. 우리 배후세력은 '패션카페'에요."

 

이들은 한 포털사이트 '패션카페' 회원들이다. 여자 그것도 20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카페란다. 이들의 공통관심사는 철저히 '패션'이었다고 한다. 회원수가 무려 10만명. 그런데 차림새를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수수하다. 우선 박소현씨 얘기.

 

"솔직히 우리는 전혀 사회에 관심이 없었어요. 맨날 패션 얘기, 옷 얘기, 남자친구 얘기만 주고 받는 온라인 친구들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이런 얘기는 아예 안 해요. 모두 촛불 얘기, 사는 얘기해요. 얼마전부터는 모금운동도 벌이고 있고 모두들 경찰에 항의전화도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평소에는 화장도 즐기고 옷 입는 것도 신경쓰는 '패션 마니아'들이 수수한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길거리 촛불소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언뜻 봐도 그냥 단순히 경험 차원에서 거리에 나와 본 사람들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이미 단련되어 나온 사람들이었다.

 

최은실씨가 말을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우리 카페 회원들이 요즘 근현대사 공부까지 하고 있어요. 광주민중항쟁도 최근에 자세히 알고 가슴이 아팠어요. 대통령께 감사할 일이죠."

 

촛불정국에서 이 카페 결속력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얼마전에는 약 300여 명의 회원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또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경찰의 동선, 대치 상황 등도 실시간으로 보내준다고 한다. 열성 촛불들이다.

 

손팻말을 내내 손높이 들고 있던 김송이씨는 "정치에도 관심 없었고 투표도 잘 안 하는 사람 많은 카페였는데 이제 재보선 같은 것에도 관심이 간다"면서 "아까도 유재석 결혼발표 글이 올라왔는데 많은 회원들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음모 아니냐'고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패션마니아로 빨리 돌아가고 싶으시죠'라고 물었다. 아니란다.

 

"시위라는 게 무섭고 폭력적인 것으로만 알았는데 광장에서 많이 배운다"고 말한 최은실씨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사태가 잘, 아주 잘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당연히 꼬박꼬박 나와야죠. 우리의 뜻이 관철될때까지요. 반드시 지킬 거예요. 꼭이요."

 

이들은 옷 입는 패션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패션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