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journal사회

일요신문에서 밝히는 중,고교 운동 선수 성폭력 실태

이경희330 2008. 11. 26. 01:28

만지고 벗기고… “선배들이 무서워요”
지난 5월에 열렸던 전국소년체전 모습. 학생 선수들은 시합을 핑계로 학습권을 침해받고 폭력을 당하는 등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소문으로만 알려져온 학생 운동선수들에 대한 성폭력이 상당 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9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발표한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고교 학생 운동선수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려 63.8%가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제로 성관계를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도 12명이 있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부터 11월 1일까지 6개월간 이화여대 산학협력단과 인권위가 실시한 것으로 전국 중·고교 학생 운동선수들의 성폭력, 학습권, 폭력 등 인권침해 전반에 관해서 이뤄졌다.

인권위의 관련 보고서 전문을 입수해 그 실태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봤다.

1139명 중 725명 응답

운동부 학생들의 성폭력 피해 실태에 대한 인권위의 분석 결과 언어적 성희롱, 시각적 성희롱, 강제추행, 성관계 요구, 성폭행 등 단 한 번이라도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운동선수는 63.8%에 달했다. 전체 1139명의 응답자 중 725명이 그런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것. 유형별로 살펴보면 ▲언어적 성희롱이 656명(58.5%)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고 ▲강제추행(412명·25.4%) ▲강제적 성관계 요구(17명·1.4%) ▲직접적 성폭행(12명·1.1%)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내 몸이나 외모를 갖고 농담하거나 놀린 적이 있다’는 항목이 666명(58.5%)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내 몸을 허락 없이 만진 적이 있다’(223명·19.6%)였고 ▲강제로 키스 혹은 뽀뽀해달라고 강요당한 적이 있다(128명·11.2%)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야동을 보거나 야한 그림을 붙여놓은 적이 있다(121명·10.6%) ▲내 옷을 벗기거나 벗으라고 한 적이 있다(72명·6.3%) 등도 적지 않았다.

성관계 등 수위가 높은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는 대개 선배와 친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한 경우’는 친구(6명)와 선후배(10명)가 대부분이었고(기타 2명) ‘강제로 성관계를 한 경우’도 친구(2명)와 선배(7명)가 가장 많았다.

반면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자들에 의한 성폭력의 경우 ‘내 몸을 허락 없이 만진 경우’가 52건으로 가장 많았고 ‘뽀뽀를 강요하거나 강제로 키스한 경우’가 32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일부에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지도자들에 의한 직접적인 성폭력은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남학생들 '위험한 합숙'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받거나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경험은 남학생 운동선수들의 경우가 여학생보다 조금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17명이었는데 그중 10명이 남학생이었고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도 전체 11명 중 6명이 남학생이었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남자 학생선수들은 합숙이라는 공동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성폭력이 자주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실례로 인권위의 인터뷰에 응했던 럭비선수 황 아무개 군(중학 2년)은 “막 성기를 잡아 뜯는다든가 만지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민 아무개 군(중학 2년·배구)도 “주로 쉴 때 선배가 와서 ‘나도 예전에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옷을 벗으라고 하고 중요부위 같은 곳을 만졌다”고 답했다. 민 군은 ‘선생님에게 왜 알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선생님도 가끔씩 그런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합숙소에서 당한 성폭력 사례들이다.

대처 방법 아직 미숙

성폭력을 당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설문(유효케이스 1115명·복수응답 2개까지 허용)에 대해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응답(1538명)이 소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응답(552명)보다 훨씬 많았다. 항목별로는 ‘싫다고 분명히 말하고 하지 말라고 요구하겠다’고 답한 경우(665명·59.6%)가 가장 많았다. 화를 내고 자리를 떠나겠다(336명·30.1%)고 답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인권위에서는 “폭력은 체벌로 인식돼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경향이 있지만 성폭력에 대해선 거부감이 강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소극적인 대처의 경우는 ‘가족, 선생님, 친구 등 주위에 도움을 구하겠다’에 응답한 학생이 483명(43.3%)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얼굴을 찡그리는 등 불만을 표시하겠다는 응답이 189명(17.0%)이었고, 가장 심각한 경우는 ▲기분은 나쁘지만 참거나 모른 척하겠다는 응답은 153명(13.7%)이었고 ▲그냥 넘어가겠다는 응답도 83명(7.4%)이나 됐다.

성폭력에 대처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높은 응답을 보인 항목은 ‘불만을 말하면 선수생활에 불리할 것 같아서’(33.2%)였다. ‘그런 이유로 운동부를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한 경우도 181명(16.3%)이나 되는 것으로 볼 때 운동부 학생들이 성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선수 생활에 대한 위협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밖에 ▲수치스럽고 당황해서(354명·31.9%)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329명 29.7%) ▲말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327명 29.5%) 등의 응답도 적지 않았다. 인권위에서는 이에 대해 “피해 현장에서 학생선수들이 적절한 대응방식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설사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현실인식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성폭력을 당하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더욱 큰 상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학생의 경우 ‘성폭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항목에서 전체 565명의 응답자 중 300명(53.1%)의 학생이 응답한 ‘화가 난다’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반면, 여학생의 경우 전체 응답자 532명 중 291명(54.7%)이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항목에 응답했다.

폭력적 상황 비일비재

인권위 조사결과 학생 운동선수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성적인 것뿐만 아니라 언어적, 신체적 폭력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1139명의 학생들 중 기합, 얼차려, 욕설, 구타 등 폭력을 단 한 가지라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898명에 달해 78.8%의 학생이 폭력을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훈련과 상관없이 욕설 또는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109명의 전체 응답자 중 483명(43.5%)이 훈련과 상관없이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일주일에 1~2번 이상 당했다’는 응답자도 136명(12.3%)이나 됐고 ▲한 학기에 1~2번(122명 11.0%) ▲한 달에 1~2번(88명 7.9%) ▲1주일에 3~4번(83명 7.5%)이라고 답한 학생도 꽤 있었으며 심지어 ‘매일’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56명(5.0%)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폭력은 대부분 합숙장소(125명)와 훈련장(196명)에서 발생했지만 라커룸이나 시합장소, 이동 중인 차량 안에서도 일어났다.

폭력을 행사하는 ‘주범’들은 코치나선배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인권위에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지도자의 폭력이 학생·선수들 간의 폭력과 구타 문화를 재생산하는 주요한 요인이다”며 “폭력이 주로 일어나는 장소가 훈련장과 합숙소인 만큼 앞으로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 확립, 군기잡기 등의 형태로 이뤄지는 비공식적인 폭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수업 빼먹는 경우도 허다

운동부 학생들의 교육 실태 역시 성폭력이나 폭력 이상으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 운동선수인 A 양은 “중학교 때 과외를 했었는데 (과외 선생에게) ‘더하기 빼기부터 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되게 쪽팔리고 자존심도 상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부 체육고의 지도자들의 경우 학생들에게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증언도 상당수 나왔다.

인권위 조사 결과 고교 학생들이 하루에 정규수업에 참여하는 시간은 시합이 있을 땐 평균 2시간에 불과했고, 시합이 없을 때도 4.4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82.1%의 학생들이 시합 등으로 수업에 빠진 후 보충수업을 받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