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규제를 풀고 보험.증권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를 허용하는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법안이 13일 발표됨에 따라 찬반 논란이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자본의 확충, 정부 소유 은행의 원활한 민영화,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 촉진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특히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형 금융회사의 출현을 위해 국내 산업자본을 금융산업으로 끌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금융업과 제조업의 차단막을 내리는 것이 적절한지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하다.
◇ 기업.연기금.사모펀드 은행소유 허용
정부는 이해상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연기금과 사모펀드(PEF)가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대폭 열고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직접 보유할 수 있는 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높이기로 했다. 지방은행 지분의 보유한도는 현행 15%가 유지된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국책사업에 투자해도 산업자본으로 분류되는 점을 감안해 일정 요건을 갖춰 승인을 받으면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금융자본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PEF도 지금은 산업자본이 유한책임사원(LP)으로서 10%를 초과해 출자하면 산업자본으로 간주돼 은행을 인수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30% 이상 출자한 경우에만 산업자본으로 분류된다.
PEF의 운용 주체인 무한책임사원(GP)이 은행에 투자한 PEF가 아닌 다른 PEF를 통해 제조업체를 갖고 있더라도 이들 PEF의 LP가 서로 다르면 산업자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산업자본이 PEF를 통해 은행에 보다 많이 투자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외국 은행도 국내 은행의 인수 기회가 많아진다. 외국 은행이 해외에서 지배하는 비금융회사의 자산이 2조 원 이상인 경우 산업자본으로 보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 국제 신인도가 높고 대주주가 산업자본이 아닌 경우 해외 보유자산은 산업자본 판단 기준에서 제외된다.
이를 통해 국내 은행이 다양한 주주들로부터 출자를 받을 수 있게 돼 대형화가 가능하고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우리금융지주 등 정부 소유 은행은 민영화도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다만 은행에 대한 대기업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 감독은 강화하기로 했다.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 초과해 가지면서 최대주주이거나 은행경영에 참여할 경우 사전에 적격성 심사를 받야 한다. 최대주주가 된 기업이 해당 은행과 불법 내부거래를 한 혐의가 있으면 금융감독원이 직접 조사를 벌인다.
연기금이 은행을 인수하려면 은행과 제조업체의 동시 지배에 따른 이해상충 방지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금감원의 검사권도 받아들여야 한다.
PEF가 은행의 최대주주가 되려고 할 때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유한책임사원(LP)인 기업이 PEF 운용 주체인 유한책임사원(GP)에 영향력을 행사해 은행을 우회적으로 지배할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LP가 PEF의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등 중대한 위법행위가 적발되면 1개월 내에 은행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 대기업집단 지주사 전환 유도
정부가 은행지주회사를 제외한 보험 또는 증권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를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지주회사의 대형화를 물론 금융업과 제조업 계열사가 뒤얽혀있는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단순화, 투명화하자는 뜻도 담겨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보험지주회사는 자회사 형태로 제조업체를 지배할 수 있지만 보험 자회사가 제조업체를 직접 손자회사로 거느릴 수 없다. 보험사가 고객 자산을 제조업체에 쓸 경우 이해 상충이 생길 수 있고 보험사의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증권지주회사의 경우 증권 자회사가 제조업체를 산하에 둘 수 있다. 금융투자회사는 고객수탁자산이 아닌 자기자본으로만 비금융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만큼 고객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보험지주회사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수직적 관계인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둘 수 없으며 지분 100% 보유를 전제로 증손회사까지 거느릴 수 있다. 증권지주회사는 100% 지배를 조건으로 증손회사와 고손회사 등을 둘 수 있다. 차입금으로 보험.증권지주회사에 출자해 대주주가 되는 것이 허용된다.
업종이 다른 자회사 간의 임직원 겸직을 허용하고 업무위탁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금융지주회사 전반의 규제 완화도 추진된다.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묶여 있는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 출자한도가 폐지되고 해외 기업에 한해 전체 지분의 30~50%만 보유해도 증손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게 된다. 지주회사가 해외에 진출할 경우 자회사들의 공동 출자도 가능해진다.
정부는 현재 자회사 지분을 100% 가진 금융지주회사에 한해 연결납세제도를 도입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 놓고 있는 이를 50% 이상으로 완화하고 계열사 간 용역거래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특히 대기업집단의 비은행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 계획을 제출한 기업에 한해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 지배금지, 순환출자와 공동출자 금지, 사업지주회사 금지, 자회사 최저 지분 보유 등과 같는 규제의 적용을 최장 7년간 유예할 계획이다.
보험.증권지주회사의 제조업 자회사 허용으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전이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보완 장치도 마련됐다. 지주회사가 비금융 자회사에 신용공여를 하는 경우 현저히 불리한 조건으로 지원하는 것이 제한되며 금융당국이 이들 회사를 현장 조사할 수 있게 된다.
◇ 금융-제조업 장벽 제거 논란
금융위의 규제 완화 계획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도 일반 지주회사에 금융 자회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금산분리 정책의 전면 수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반지주회사에 금융 자회사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금융자회사가 일반손자회사를 갖는 것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지주회사에 적용되고 있는 금산분리 규제가 풀리면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이 속도를 낼 수 있지만 금융업과 제조업 사이의 방화벽이 약해져 금융에서 발생한 위험이 제조업으로, 또는 제조업의 부실이 금융업으로 전이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적 연기금이 은행을 소유할 경우 정부가 간접적으로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산업자본이 PEF를 통해 은행 경영에 간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늘리고 중장기적으로 소유 규제를 없애면 금융산업의 중추인 은행이 대기업에 좌우되며 자금 흐름이 왜곡되거나 부실화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금산분리 완화정책으로 금융기관이 재벌 대기업의 사금고가 될 수 있고 경제주체간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역시 부정적인 입장으로 관련 법안의 국회 심의 과정에서 공방이 예상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처에 전력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 금산분리 규제를 푸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고려대 "며이필상 교수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부가 제도 변화를 추진해 혼란스럽다 "은행은 대체로 지분이 분산돼 있는데 산업자본이 10%까지 보유해 사실상 지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 금융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외국자본과 힘의 균형을 이루고 대형 금융회사 출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산업자본이 은행지분을 10%까지 보유할 수 있게 해도 제도적인 여건상 지배하기는 쉽지 않다"며 "보험.증권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도 국제 기준보다 과도해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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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보험지주사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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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13일 보험사나 금융투자회사(증권) 등 비은행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놨지만 당장 대기업의 지배구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 등 일부 보험사들이 제조업체 지분을 갖고 있어 지주사 전환의 걸림돌이 돼왔지만 여전히 보험사가 제조업체를 직접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바람직한 규제 완화 방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당장 지주사로 전환하는 기업들은 등장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 삼성, 보험지주사로 가나
보험지주사에 대한 규제 완화는 금산분리 완화와 함께 국내 최대 기업그룹인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돼 있어 관심을 끌어왔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1%를 가진 최대주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형태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를 단박에 풀 수 있는 삼성생명의 상장을 미뤄온 것도 이런 지배구조와 관련이 깊다.
현행 제도에서는 삼성생명을 상장하면 주식이 시세로 평가되면서 에버랜드가 가진 삼성생명 주식이 자산 총액의 50%를 넘게 되고 이에 따라 에버랜드가 자동적으로 금융지주사가 된다.
그러나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는 제조업 자회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지 못하고 의결권도 제한을 받는다. 결국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팔아야 하는데 이 경우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고 다른 계열사가 매입하더라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이번에 금융위가 내놓은 방안은 보험지주사에 제조업 자회사는 허용하면서도 자회사인 보험사가 그 밑에 제조업체를 둘 수 없게 했다. 삼성생명이 지주회사 체제로 간다면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사가 제조업체를 직접 거느릴 수 있도록 할 경우 보험 계약자에게 받은 자산으로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해 금융 소비자와 이해가 충돌하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비금융 지주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진일보된 규제 완화 조치"라면서도 "다만 삼성생명의 경우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당분간 지주사 전환은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지주사 전환 계획을 제출하는 기업집단에 대해 제조업 자회사 지배 금지나 순환출자 금지 등의 규제를 최장 7년간 유예해 주기로 한 것은 삼성그룹과 같은 기업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한 것으로, 기업들이 이 유예기간을 활용해 지주사 전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있다.
◇ 다른 지주사 후보군은 보험사 가운데 유일하게 지주회사 전환을 공식화한 메리츠화재는 이번 발표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다. 제조업 자회사는 물론 상호출자나 순환출자의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메리츠화재가 메리츠증권와 메리츠종금의 지분을 각각 27.0%, 5.5% 보유하고 있고 메리츠증권은 메리츠종금 지분 57.1%를 갖고 있다.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메리츠자산운용(가칭)도 메리츠화재의 100% 자회사로 곧 신설된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일단 보험지주사 설립을 활성화한다는 방향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보험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동부화재는 "장기적으로 지주사 체제로 갈 계획"이라며 "다만 당장은 전환이 어렵고 여건을 봐가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동부화재는 동부생명과 동부증권 지분을 31.29%, 14.99%씩 갖고 있으며 동부건설과 동부제철 등 제조업체의 지분도 각각 13.73%, 6.41% 보유하고 있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대한생명은 한화손해보험의 지분을 약 60% 갖고 있으며 올해 중 한화투신운용의 지분을 100% 인수할 계획이다. 지분 관계는 없지만 한화증권도 그룹 계열사여서 대한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보험지주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한화는 대한생명 인수 적법성을 둘러싼 예금보험공사와의 분쟁도 최근 정리됐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필요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한생명의 지분 매각과 상장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흥국생명과 현대해상, LIG손해보험 등도 지주사 전환 후보군에 올라있다.
-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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