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좌익의 소리

이명박 정부 삽질하지 말고 경제나 살리지, 역사는 왜 꺼꾸로 돌리나?

이경희330 2008. 10. 11. 10:46
다른 건 몰라도, 2007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한 것은 ‘경제를 살리라’는 간절한 명령이었다. 취임 7개월여가 지난 오늘, IMF때보다 더 어렵다는 민생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금융위기와 환율전쟁의 와중에서도 정부는 ‘삽질경제’만을 부르짖고 있다. 정말 걱정된다. 하지만, 경제라는 것이 워낙 난해하기도 하거니와 임기도 아직 4년 이상 남아 있으니 단정적 평가는 삼가려고 한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기본가치를 훼손하는 국민감시ㆍ국정원 강화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빅브라더’의 탄생

우선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 등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감청 등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의될 예정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업자가 통신망에 휴대전화와 전자우편, 인터넷쪽지(메신저)도 유선전화처럼 감청이 가능한 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2년, 인터넷은 4년 안에 설치하지 않으면 해마다 최대 10억원까지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이제 휴대전화와 전자우편, 인터넷 쪽지에 대한 합법적 감청이 가능해진다. 사업자는 이용자의 기록을 1년 이상 보관했다가 수사기관이 요구하면 넘겨주어야 한다.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된다. 정보·수사기관이 감청이나 통화내역 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도 ‘전기통신사업자’에서 ‘전기통신사업자 등’으로 확대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용카드·지하철·버스카드 사업자 등 개인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진 모든 곳이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및 통화내역 제공 요청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대상 범죄도 기존의 내란·살인·마약·유괴 등에 영업 비밀과 기술 유출이 추가됐으며, 영장없이 감청할 수 있는 대상에 ‘테러’를 추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어서 ‘인권 침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국가정보원

이 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온 국민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인터넷 사이트 방문기록이 낱낱이 노출되고 말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 범죄 따위에 악용될 가능성도 지금보다 한층 높아질 것이다. 정부여당에서는 감청된 내용이나 통화내역 등은 절차에 따라 특정한 목적(범죄수사 등)에만 활용된다고 강변하겠지만, “개인사생활정보가 기록되고 있으며, 언제든지 정보수사기관에 넘겨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허용될 수 없는 기본권의 제약이다. 국민 모두를 예비적 범죄자로 보고 상시감시체계를 꾸리겠다는 발상도 문제다. 휴대폰 감청은 국정원의 오랜 숙원이다. 정보수집 활동 중 도·감청이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제 국정원은 ‘이동통신사업자의 감청 설비 의무화’와 ‘통신사업자의 관련 정보 보관 의무화’를 통해 오랜 숙원을 풀 기회를 잡았다. 2005년 참여정부시절 한나라당은 “국정원 소속 연구단이 카스(CASS)라고 불리는 휴대전화 도청장비를 개발해 도청에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청확대에 반대한 바 있다. 그랬던 정부여당이 집권 반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 것이다.

테러방지법 제정, 유령의 부활

테러방지법은 지난 제16·17대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입법이 시도되었지만 번번이 무산된 적이 있다. 테러의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으며, 국정원의 권한이 비대화되고 군이 치안에 개입하는 등 위헌적 요소가 해소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테러방지법은 인권시민단체들로부터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9.11 이후 부시가 주도하는 대테러전쟁의 과정에서 테러방지법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정부는 ‘테러방지법’ 재추진을 선언하였다. 유령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의 핵심은 ‘국정원 주도의 대테러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인권시민단체는 그동안 국정원이 대테러센터의 중심에 서는 것을 철저히 반대해왔다. 그것은 국정원이 어두운 인권침해의 과거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정보수집기능과 집행기능을 통합행사하게 되면 비밀경찰로 전환될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공수사권 폐지, 국회와 민간에 의한 국정원 통제, 순수정보기관으로의 전환”이라는 국정원의 오랜 개혁과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조직이기주의로 흐르는 테러방지법 제정논의는 괴물의 탄생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핵심은 현행 법 체계에서도 대테러활동은 충분히 수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3월 대통령훈령 제47호 개정으로 국무총리를 수장으로 하는 국가대테러대책회의, 상임위원회와 국정원 산하에 대테러정보통합센터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훈령에 따라 국정원도 이미 테러정보통합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경찰, 군, 법무부, 행정안전부, 외교통상부 등 국가조직 업무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독립적으로 대테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테러방지법을 통하여 국정원이 모든 국가조직을 직접 지휘 관할토록 하는 것은 비밀정보기관이 국정을 좌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 대테러대응이 각 관련기관의 ‘분업망’식이었음을 고려하면, 국가정보원 중심의 집권적 구조는 권력분립원리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 과거 ‘분업망’식 대응기구가 비효율적이었다면, 각 기관간의 협조망을 견고하게 갖추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한다. 즉 대테러활동은 그 구체적 내용에 따라 기존의 법체계와 국가기구를 활용하여 대처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인권 보장과 법치주의 실현 그리고 헌법상 권력분립원리에 적합한 민주주의적 대응방식이다.

국정원법 개정, 무소불위의 정보권부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국정원은 현행 5개 국정원 직무범위를 대폭 확장하는 방향으로 국가정보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국정원은 현행 5개 국정원 직무범위를 대폭 확장하는 방향으로 국가정보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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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정원은 국정원법에 명시된 현행 5개 국정원 직무 범위를 대폭 확장하는 방향으로 국가정보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현행 국정원법에는 제3조에 △국외정보 및 대공.방첩.대테러 등 국내 보안정보 수집 △국가기밀에 대한 보안업무 △내란 및 국가보안법 등 사범 수사 △국정원 직무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 등으로 국정원 직무를 명시하고 있으나, 위 직무범위에 ‘~등’이라는 단서를 추가함으로써 그 범위를 무한정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개입 금지’ 등 국가 정보기관의 활동범위를 엄격히 제한한 1994년 ‘안기부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포괄적으로 확대된 직무범위에 따라 국정원은 직접 개입하지는 않더라도, 제9조(정치관여 금지)가 규정한 5개 항목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의 국내 정치 불개입을 촉구하고, 해외·경제정보 역량 강화를 공언해 왔다. 그러나 집권 후에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기능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광우병위험 미국산소고기로 야기된 촛불정국에서 국정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호된 질책이 쏟아진다. 과연 촛불 정국에서 국정원이 무슨 일을 했어야 한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는 온 국민을 상대로 사찰을 하고, 정보보고를 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며 국정원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 국정원은 곳곳에서 정치개입의 징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월 국정원의 한 직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비비케이(BBK) 관련 민사소송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재판 진행 상황을 묻고, 법정에 출입하는 등 물의를 빚었고, 법원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과거 국정원 연락관들이 ‘정책 조정’ 운운하며 정부부처는 물론 기업체, 심지어 검찰청과 사법부의 판사실까지 무상으로 드나들던 시절이 다시 올 지도 모른다. 한편 국정원은 최근 언론사를 담당하는 언론단을 신문단·방송단으로 분리ㆍ재편하는 등 국내정보 수집을 강화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언론단의 인원과 업무가 많아 단장 1인이 통할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조직을 나눴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언론사 정보수집 강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정원이 남긴 역사적 오점은 ‘인권침해’와 함께 ‘정치사찰’ 논란이었다. 만약 정부의 의도대로 국정원법이 개정되면 ‘정치사찰 강화’는 불을 보듯 뻔한 수순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 중단되었던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보고도 부활시켰고, 이 자리에서는 대북 관련 정보는 물론 민심동향에 대한 보고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국정원을 무소불위의 ‘정보권부’로 만들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지난 10여년간의 ‘국정원 탈정치화’ 노력을 무색하게 한다. 권력자는 정보정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더구나 현 집권세력은 공안통치의 달콤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10년전으로 돌아가자”를 시도때도 없이 외치고 있지 않은가.

공안통치의 유혹, 정권몰락의 지름길

참여정부하에서 활동한 국정원 진실위는 지난해 10월 활동을 종료하면서 방대한 보고서와 함께 국정원 발전을 위한 권고와 제언을 발표했다. △국정원과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과거에 행한 월권적 행위에 대한 유감 표시 △정치 불개입 원칙 고수 △공권력 남용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명예 회복과 구제 절차 마련 △교류와 협력시대에 걸맞은 정보 수집체계 구축과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선진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등이 포함돼 있다. 정권의 좌우를 묻지 않고 민주주의 국가라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치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테러방지법 제정, 국정원법 개정으로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경쟁력 있는 정보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무한경쟁의 국제화시대에 국가정보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국익을 위해 필연적인 것이다. 냉전이 종결된 이후에는 경제ㆍ환경ㆍ에너지 등 모든 분야에서 정보전쟁이 더욱 첨예해지고 치열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정원의 역할은 점점 확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정원의 역할 확대는 ‘제대로 된’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때만 가능하다. 이 점에서 국정원은 아직도 한참 멀었다. 참여정부 시절만 보더라도 도청X파일이 불거져 나왔고(비록 과거의 일이었지만), 일심회 사건 등 국가보안법 사건이 이어졌으며, 제18대 대선직전에는 부패척결 TF 문제로 정치적 공방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 수지킴 살해사건 등 국정원이 개입된 오욕의 역사는 아직 청산되지도 않았다.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을 바로세우는 대신, 국정원법 개정 등을 통해 정치사찰과 공안통치에 악용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로 되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살리기라는)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통치기반의 강화에만 몰두한 나머지 국정원을 공안통치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면, 그것은 곧바로 정권몰락의 지름길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