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V로는
안
된다
전에
한
대만
학생의
플랫에
간
적이
있는데
식당에서
TV를
보는데
자막을
틀어놓았다.
"너
그렇게
하면
청취력이
더
악화될
것이다"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TV 대신에
라디오를
들으라고
했다.
특히
전파의
음질이나
상황이
안
좋고
별
영어가
다
들리는
Talk Radio를
들으라고
했다.
며칠
전에
그
아이의
녹음기가
필요해서
빌리러
갔더니
"라디오만
들었더니
내
청취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청취력에
대해서
이런
리스트를
적은
적이
있다.
내가
여기
세미나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reduced speech, normal-speed speech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
옆에서
라디오의
한
토크쇼에
모바일
폰으로
거는
참여자의
목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차가
슁슁
지나가는
소음에
좋지
않은
음질의
전화가
간당간당
끊기는
상황까지.
공항이나
강당에서
울리는
방송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도
물론이고.
조용한
상황에서
영어를
듣고
말하는
기회는
의외로
적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거나
하지
않으면.
심지어
강의에서도
자기
말
기회를
뺏기지
않고
계속
말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
바
holding the floor라는
것인데.
나도
다른
사람
사이에
말로
치고
들어가는
데
이력이
텄지만.
2.
언어
교류
현상은
콘텍스트가
핵심
그런데
이런
전천후
청취력이
단순한
소리
비교만으로
되는
것이냐
하면
말이
안
된다.
소리는
인구
수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콘텍스트
없이
주어지는
소리는
무의미하다.
70년대만
해도
캐임브리지
영어시험에 minimal
pair 같은
콘텍스트가
없는
발음
시험이
있었다는
것은
믿겨지지가
않지만.
내가
'한국에도
한자
없애면
동음이의어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하는
멍청이들이
있다'고
한
마디
하려다가
관두었지만
정말
멍청한
짓이다.
이런
애들은
예를
들어
fast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우리
말의
동음이의어
현상처럼,
'fast1, fast2 식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어떻게
구분하냐?'
또는
'been/bean을
각각
옆에
뜻을
달아
주지
않고
소리만으로
도대체
어떻게
구분할
수가
있나?'
하는
것과
같은데,
이
정도면
무식한
게
아니라
거의
무뇌아
또는
뇌사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말
속의 한자어의
동음이의어를
영어의
homonym 현상과
비슷하게
보면
되지만
이런
식으로
언어를
쓰고
있다면
항상
콘텍스트를
배제하고
단어
단위로만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아주
위험한
상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넌
살인자이다라고
하면
안
되겠죠?'라고
말을
하면
'넌
살인자이다'까지만
선택해서
듣고
사람
잡으려고
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조선일보의
김대중이
영어
가지고
그런
짓을
했지.
이
놈
아직
살아있나?
영국
같으면
이미
산
송장이
되었을
것인데.
한국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인데.
그런
놈
하나
잡을
사람이
없고.
3.
콘텍스트
분석을
하는 transcription
청취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그
점에서
최근의
논문에
transcription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에
어떤
학자가
이
transcription에
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미국에서
공부를
하긴
하는지
궁금하다.
청취의
근간은
텍스트와
디스코스
분석을
통한
콘텍스트
연구이다.
장르
분석도
중요하고.
소리
자체의
물리적인
현상은
그에
비하면
언어
청취에서
상당히
적은
분야이다.
시간만
지나면
적응이
되는
문제일
뿐이다.
이
자기
머리
속의
데이타
(이걸
schema라고
한다)
를
활용하면서
듣는
사람도
같이
상호
작용하면서
분석해서
듣는
것을
top-down process라고
한다고
했다.
그
반대로
자기
머리는
뇌사
상태인
상태에서
물리적인
소리의
음가나
문법만
따지는
것을 bottom-up
process라고
한다고
했다.
후자의
경우의
대표적인
게
자막을
보는
것인데
눈으로
들려오는
음만
단순
비교하는
게
되어서
뇌가
죽어
있다.
자막만
치우면
끝장이고.
한
20년
그렇게
하면
몰라도.
이게
사람들에게
단기적으로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유는
당장
눈으로
보면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니
속아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
몇
년
지나서
'어
분명
들렸는데
왜
다시
안
들릴까'
하는
환상을
갖는다.
물론
환상이다.
애초에
들린
것도
아니라
잠시
'보인'
것
뿐인데
중대한 착각을
한
것이다.
자막만
치우면
아는데
이
간단한
차이를
결코
'모르려고'
하는
것은
이
정도의
수단으로
영어가
들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과
이
상태에서도
안
들린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적당히
들리는
것처럼
자기를
위안하는
게
일단
심리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한
위로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참고로
전문적인
이야기를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discourse라는
것은
예를
들어
듣기동
게시판에
처음
온
사람이
'RD, Draft, Correction'이니
하는뭐라고
하는
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하면
이
discourse community의
discourse를
못
알아듣는
것이다.
이러한
특정
영역이나
집단에서만
쓰는
언어의
구분을
register라고
하고
좀
더
구체화된
영역이나
학문의
분야로
옮겨가면
genre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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