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정의,폐악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한국교회가 22개나 포함, 한국교회는 이제 새로운 구조적 개혁과 현대 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경희330 2008. 10. 13. 11:30

우리의 과거가 한 때는 미래였고, 우리의 미래도 언젠가는 과거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는 심상치 않을 염려로 가득 차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우리의 삶과 사회 그리고 교회공동체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텍사스의 홍수와 중국의 지진, 기후의 온난화 등 그 징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징후가 극대화되어 현실적 이상이 인간의 사고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가톨릭이 들어와 자리를 펴고 프로테스탄트가 들어와 교육과 사회건설에 크게 이바지 하면서 1980년대까지 수적 배가를 경신하며 급성장해왔다.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한국교회가 22개나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다양한 성장요인에도 불구하고 성숙하지 못한 병리현상을 동시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새로운 구조적 개혁과 현대 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종교는 사회가 갖고 있는 공허함과 자기 기만에 대한 의미있는 해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새로운 피를 수혈하지 못하는 위기에 직면해 버렸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신세대들의 사고 전환으로 젊은자들로 하여금 케케묵은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되어 가고있다. 즉 교회는 다음 세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예배 분위기와 프로그램, 대형마트같은 넓은 주차장이 그들을 되돌릴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는 성직자와 직분자의 변화보다 평신도들이 모이고 함께 나누는 생명적 조직이 더 중요하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모두가 형제 자매라 불리었다.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형제 자매보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 하는 계급적 호칭으로 변했고 형제 자매는 이단과 사이비에게 물려주고 말았다. 

교회는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역이 성취되는 곳이다. 교회가 다양화되고 여러 측면에서 그 기능을 논하고 있지만 본질과 사명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모여 있을 때가 아니다. 흩어졌을 때 세상을 향한 존재로 세상을 사랑과 나눔으로 섬기는 모습이어야 한다.

 흩어지고 다시 교회로 모임을 반복하면서 섬김과 수양으로 진정한 이 땅의 주인으로 삶의 현장에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을 바울사도는 선한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많은 돈을 들여서 힘의 능력으로 우리가 강건해 질 수 있을까? 어둠의 주관자들과 악한 영을 상대함은 오직 선한싸움에 필요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베트남전쟁시 연합군의 구호는 '먼저 보고 먼저 쏘자,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였다. 섬뜩한 느낌의 단어이지만 전쟁터에서는 맞는 말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전쟁을 하면서 살아간다. 평화적 삶을 찾기엔 너무 멀리 와 있다.  

기쁜소식을 전하는 길은 '자기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교우의 본'이라고 성서는 이야기 한다. 예수를 구주라고 부르며 따르는 자들은 그가 말하는 중요한 본질적 사명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교회는 신앙의 경주와 삶의 경주를 둘로 나누지 말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유업으로 받은 본향을 소유하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지혜이다. 신앙따로 생활따로의 이중적 삶은 옳지 않다.

교우들이 올바른 교회상을 잘 세우고 잃어버리지 않을 때, 다음 세대에게 우리와 같은 교회관을 심겨 줄 수 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미래 조직교회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새로운 교회를 찾는 근본 목적은 그들에게 오늘의 교회가 유업으로 준게 틀렸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연합하여 극상품 포도를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데 어떻게 이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는지 생각이 안 떠오른다. 무엇을 잘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하나, 둘... 헤아려진다. 하지만 참으로 어렵다. 예수는 "내 아버지집에 거할 곳이 많다...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였는데 본향을 알려 주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비결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기 때문이다. 무장한 군인과 나팔을 든 제사장, 법궤를 멘 제사장을 따라 남녀노소가 하나가 된 것이다.

교회가 처해있는 현실에 대해서 교우들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을 수 있었 던 예수처럼 어른이 청년들 안에, 아이들 안에 그들이 어른들 안에 있게끔 하나가 되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주님의 기다리심을 이야기 하고 한명이라도 더 그 안에 내가 들어가고 그가 내 안에 들어와야 한다. 우리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자   

 첫째. 이웃과 사람을 돌아보고
 둘째. 공동체와 교회를 돌아보고
 셋째. 맞는 비전이 선행되는가를 생각하자.

우리들의 미래는 준비에 비례한다. 잘 준비한 교회는 다음세대와 자신있게 미래를 맞을 수 있고, 준비하지 못한 교회는 불확실하고 쓴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교회는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시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준비하여야 한다. 준비한 자에게는 더 이상 미래는 불확실한 시간이 아니라 확실한 시간이며 설렘과 대망의 시간이 될 것이다.

ⓒ 안양뉴스 김봉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