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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투기 장관들 vs 농촌으로 간 대통령

이경희330 2008. 2. 27. 01:16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어떻게 된 게 경제관료 출신이든 외교관 출신이든 시민단체 출신이든 장관 후보자라면 하나같이 논과 밭, 그리고 임야까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농림부 장관 후보자들이란 말인가? 더구나 그 부인들은 십수 년 전부터 농촌에 적을 둔 채 농지를 갖고 있다. 여성농업인들인가?

이처럼 우리나라 저 높은 곳에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은데 어찌하여 이 나라 농업과 농촌은 이 모양 이 꼴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딱 하나. 그들이 농촌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말 농촌에서 자연을 벗 삼아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왔더라면 혹여 만 원주고 산 농지가 100만 원이 되든 1,000만 원으로 뛰든 그 자체를 문제 삼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전국 곳곳에 농지를 사 모으는 일도 없었을 것이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농촌에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솔직히 말해 농촌에 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땅을 사모으고 선거철마다 국정현안마다 농업이 어떻고 농촌이 어쩌고 나도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고 어쩌고 하는 가식적인 행태로 일관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마을로 돌아갔다. 그곳은 농촌이다. 깡촌이라고 불려온 진짜 농촌이다. 물론 귀향 몇 달 전부터 국민 혈세 몇백억을 고향에 쏟아부었다느니 아방궁을 지었다느니 별별 논란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아직도 삐딱한 시선을 거두지 않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주장들의 사실 여부를 일일이 따져보기에 앞서 필자는 우선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로 농촌에 살기 위해 그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 그리고 장관을 지내려는 사람들, 이런 높으신 양반들이 농촌에 사는 것과 농촌에 살지 않는 것. 그 차이는 우리 농업농촌의 미래발전전략에 있어서 하늘만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연금생활자의 은퇴 후 농촌생활'은 농촌경제발전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한다. 농촌경제, 농업경제는 더욱 절실한 요구이다. 그런데 정말로 지역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지역경제발전모형'을 짜다 보면 어떤 경제학자이든 첫 번째로 분석하는 지표가 있다. 바로 그 지역에 대한 인구유입/유출 현황이다. 그 지역에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새로 들어와 살고 있는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지 그 현황을 면밀히 분석해보며 지역경제 살림모델을 짜들어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아무리 당장의 농산물 수출이 잘돼서 빵빵 돌아가는 농촌지역이라 하더라도 농촌에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고 떠나는 사람이 들어오는 사람을 압도하면 그 지역의 미래는 어둡기 마련이다. 사람이 떠나면 아이들도 떠나고 아이들이 떠나면 학교가 문을 닫고 그래서 더 떠나면 행정구역 자체가 축소되고 지역민의 복지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현실에서는 지역경제 발전대책 자체가 임시방편 극약처방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은 사람 하나하나가 농촌의 지속 가능한 '미래'이자 안정적인 '지역경제'인 것이다.

지난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우리 사회는 '젊은 사람의 귀농'이라는 새로운 인구유입모델을 경험했다. 도시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 사업에 망한 사람,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경쟁체제에 신물 난 사람들이 농촌으로 이주해 자연을 벗 삼아 새로운 인생을 모색한다는…. 그러나 그 모델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실험이다. 일단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가서 할 일이 도시에 비해 많지 않고 농사소득은 점차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잃고 있다. 입시교육 현실에서 자녀교육 또한 감내하기 힘든 어려움이다.

반면 '나이 든 사람들의 농촌생활'은 효과는 눈에 띄지 않지만 현실적인 장점이 많다. 퇴직 후 연금으로 생활하기에 농촌생활을 하더라도 농사로 큰돈을 벌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없다. 지역에서 뿌리를 박고 있는 이웃 농민들과 정부지원금을 놓고 굳이 경합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살려 마을 대·소사에 도움을 주거나 사회교육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기도 한다. 더구나 그가 농촌에 들어와 산다는 것만으로 그를 찾아오는 자녀들, 친척들, 친구들, 후배들이 오가며 지역경제에 뿌리는 돈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일단 사람이 들어와 살면 행정이 따라간다. 행정이 이것저것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지역경제와 삶의 질의 문제로 진입하게 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은퇴 후 연금생활자의 농촌 U턴'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이유이다. 유럽의 프랑스가 농촌에서 꼭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니 사람이 살게 하는 '인구유입방안'을 지역경제 그리고 복지정책의 수단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유이다.

봉하마을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단초 역할을 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들어와 산다는 것 자체가 외부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관광자원이자 그 지역에 대한 강력한 이미지 메이킹 수단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돈이 많이 돌아간다. 결국은 행정수요를 늘려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단초를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시멘트 공장이나 고관대작의 묏자리처럼 주변경관이나 환경을 해치는 부작용도 없다. 도시에서는 흔하다 못해 천시되고 무서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존재가 '사람'이지만 오늘날의 농촌에 있어서는 더없이 귀중한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농촌지역에 대한 '사회적 재산' 창출이다.

유독 농촌지역 사람들은 선거철에 눈이 빛난다. 우리 고향 사람들이 삼선 의원이 되고 국회 의장을 하고 장·차관을 하고 서울에서 크게 되는 걸 유달리 자랑스러워한다. 왜일까? 그것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재산이 단순히 금전으로 계산되는 재산뿐 아니라 명예나 학식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적 인간관계라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강남지역에서는 흔해 빠진 판사 검사에 의사 약사 교수 고위공무원들이건만 농촌지역에서는 너무도 그런 관계가 아쉽다.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은 데 들어줄 사람이 없고 비빌 언덕이 없다.

그런 농촌 사람들의 옆집에 이제 전직 대통령이 들어와 산다. 굳이 면담자리를 요청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소문으로 농촌의 일거수일투족이 전직 대통령의 눈앞에 드라마처럼 펼쳐지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장·차관을 했던 사람들도 있고 앞으로 장차관을 할 사람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농촌생활을 통해 지역민들이 하고픈 말, 그리고 그동안 말로는 할 수 없었지만 늘 가슴에 두고 있던 '정서' '감정'이라는 것이 더 높은 곳,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통될 채널이 마련된 것이다. 이것은 돈으로는 계산될 수는 없지만 더없이 소중한 '재산'이다.

필자는 그래서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농촌마을로 정착한 사건,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한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퇴임 후 인권외교와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으로 미국 내 기득권층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듯이. 이제 한국의 전직 대통령은 한국 내 기득권층에게 보다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리라 생각한다.

대통령도 장차관도 대법관도 검찰총장도 대기업총수도 대학총장도…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고향농촌마을의 품으로 죽어서나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한 살이라도 건강할 때 그리고 죽는 그날까지 고향 사람들과 함께 농촌을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충격, 새로운 은퇴 후 문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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