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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소환이 임박해오고 있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가 ‘구속영장 발부’라는 칼을 선뜻 빼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직접 증거’의 자신이 없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한 뒤 법정 공방에서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이 어떤 쪽을 택하더라도 뇌물수수 혐의로 전직 대통령을 감방으로 보내려 하는 ‘위험한 도박’을 이명박 정권은 준비 중이다.사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그동안 자신의 개혁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옆차기를 하던 ‘봉하마을’의 힘을 빼버렸다는 점에서 일단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 등의 강수를 두면 둘수록 이번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돼 거명되고 있는 ‘형님’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자신의 핵심측근들도 더 다칠 수 있다는 점이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노 전 대통령 구속을 발화점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빌미로 여권 내 원로그룹을 이번 기회에 ‘정리’할 수도 있다.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박연차 게이트에 숨어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톱’은 과연 무엇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정국은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예상해볼 수 있다. 먼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 뒤 전격 구속영장을 발부해 구속시키는 경우를 보자.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초강수에 따라 전격 구속된다면 그 후폭풍이 여권의 원로그룹까지 와해시키는 대대적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노 전 대통령을 구속시킬 경우, 그 후폭풍을 막아줄 만한 아군의 희생감수를 각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일단 부정적 의견이 많다.여권의 한 전략 관계자는 “현재로선 노 전 대통령의 구속 강행처리는 쉽지 않다. 검찰의 직접 증거 찾기도 여의치 않다. 여기에 여권이 짊어져야 할 정무적 부담도 너무 크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 발표를 통해 ‘내가 이만큼 망가졌으니 적당한 선에서 끝내자’라는 휴전 신호를 보낸 것을 이 대통령이 무시하고 끝까지 사법처리를 강행할 경우 노 전 대통령도 대대적인 반격을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불거져 나온 지난 대선과정에서의 이상득-추부길-노건평 3각 커넥션(박스기사 참조)에 대해 폭탄발언을 할 경우 여권도 그 유탄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이런 폭발력 때문에 이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강행 카드를 쉽게 빼들지 못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하지만 한나라당 내 소장파들의 시각은 앞서의 견해와 조금 다르다. 한 소장파 관계자는 이에 대해“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치는 것과 함께 현재 연루 의혹이 불거진 여권 내 원로그룹도 같이 쳐내는 대대적인 정계개편을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대통령이 지난해 말 한상률 국세청장으로부터 박연차 게이트에 관한 전모를 보고받았을 때 이미 그 종착점을 노 전 대통령으로 찍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이번 박연차 게이트를 자신의 최대 정적인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복수혈전’으로 규정할 경우 원로그룹의 희생은 그냥 무시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자신의 야심찬 개혁정책을 사사건건 폄하하며 돌을 던진, ‘노무현’이라는 불안정 요소를 확실하게 제거하려고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경우의 수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한 뒤 법정 공방을 통해 계속 그를 압박할 가능성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미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을 무리해서 구속까지는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물론 여기에는 ‘노무현 패밀리’의 신병처리 문제를 이번 사건에 연루된 여권의 원로그룹을 지키는 방패막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는 이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일종의 ‘타협’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여권 핵심 관계자들도 모두 사법처리하라는 친노그룹 등의 압력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노 전 대통령도 권양숙 여사에 대한 불구속 기소 선에서 ‘합의’를 볼 경우 자신의 사법처리는 물론 아들 노건호씨도 살릴 수 있다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그동안 자신의 개혁정책에 눈엣가시 같은 한마디를 던지며 딴죽을 걸어온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통쾌하게 복수했다는 정도의 만족감만 느낀다면 박연차 게이트는 확전보다는 ‘타협’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고 이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원로그룹 ‘정리’ 등의 거시적 정계개편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그 시발점은 노 전 대통령의 구속 강행처리가 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노 전 대통령은 검찰 포토라인에 서야만 하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 그것 자체만으로 이미 ‘노통’에게는 더 없는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복수혈전’은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정작 여권에서는 4년 후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번 사건과 같이 ‘예정된 수순’처럼 굳어질 경우 그 전례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