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풀려난 김지나씨(32) 김경자(32)씨가 4일 오후 안양 샘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상황과 심경을 토로했다.
아프간 반군 탈레반 피랍자 21명 가운데 가장 먼저 풀려난 김지나씨(32) 김경자(32)씨가 4일 오후 안양 샘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상황과 심경을 토로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전문.
아프간으로 가기 전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현지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가기 전 일단 그쪽 문화에 대해 서로 공부했고, 거기 계신 분들은 현지 의상이나 차도르 같은 거 준비해주신다고 해서 갔다. 가서는 아이들 머리 깎아주고, 축구하고, 놀아주고, 약을 주는 일을 했다. 13일 낮 출발해 북경, 두바이, 카불 거쳐 14일 저녁에 마자리샤리프 도착했다. 15일은 집에서 쉬고 16일, 17일은 근처에 있는 동네 아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했다. 18일 밤 마자리샤리프에서 카불로 이동해 이튿날 칸다하르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외교부에서 아프간 여행 자제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았나
"몰랐다"
피랍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모두 기억이 단편적이어서 나중에 함께 모여 피랍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가즈니에서 주유를 하기 위해 20분 정도 주차했고, 그 다음에 운전사와 운전사 조수가 자기 친척들이라며 앞 마을에 내려주겠다고 2명을 태웠다. 40~50분 후 멀리서 총 가진 2명이 정차하라고 신호를 보냈고, 운전자가 속도를 내서 계속 가려고 하니까 총을 발포했다. 차 오른쪽 엔진인가에 맞아서 급정거했다. 자고 있던 팀원들이 모두 깨어났고, 차를 옆으로 뺐다. 총 쏜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타이어에 쏴서 멈추게 했다. 총 쏜 사람이 차에 타서 카메라, 핸드폰 다 압수하고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전세를 내서 빌린 버스였다. 오전에 떠났고 낮 2시 40분에 납치당했다"
억류 생활과 그 과정에서 종교행위를 했는지, 탈레반의 개종 강요가 있었는가
"5일 정도는 다 함께 있었고, 처음에 나눌 때부터 한국에 가는 거라며 데리고 다녔다. 각 팀마다 경우가 달라서 다른 팀은 모르겠다. 억류된 다음부터는 예배는 하지 않았다. 기도를 할 때는 눈을 뜨고 대화를 하는 것처럼 했다. 두 세 사람이 창문에서 망을 보면서. 큰 소리를 낸 적도 없고, 그쪽 사람도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통역하시는 분이 너희가 무슬림이라면 지금도 풀어줄 수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석방된 이유는 무엇이며 석방 이후의 심경을 말해달라
"저희도 석방된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 조건이 없었다고 말을 들었다. 석방된 후에는 일단은 목사님과 심성민씨 피살 소식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잡혀서 탈레반이 비디오를 찍었는데, 분장을 한 상태로 가발을 쓰고 총칼을 들고 비디오를 많이 찍었다. 지금도 카메라가 두렵고 무섭다. 풀려나서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 근처 불꽃놀이를 듣고 총성인 줄 알고 잠을 설치기도 했다"
출국 전 유서를 작성했나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자는 의미에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의무적으로 한 게 아니어서 팀원 중에 절반 이상이 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소개해주고, 그런 걸 참여하고 싶으면 제출하고 가는 것으로. 아프간팀이 구성된 후에 유서를 쓸 사람은 쓴 것이다. 저(김지나)는 부모님께 감사하고 살아온 삶이 감사한 삶이었다는 내용을 썼다. 저(김경자)는 간단한 기도 제목을 써놓은 정도다"
아프간 현지 일정을 짠 사람은 누구이며 출국전 여행자제 안내판 앞에서 사진 찍은 이유는 무엇인가
"배목사와 현지 인솔자들이 같이 의논한 것으로 안다. 가서도 의논을 해서 잘 모르겠다. 사진을 찍은 이유는 그 사진을 못 봐서 모르겠다"
석방 직전 이지영씨가 기회를 양보했던 상황을 설명해 달라
(김경자)"8월 12일 오전, 탈레반 한 명이 와서 지영이와 지나를 지목하더니 한국에 갈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다. 피랍 이후 흩어졌을 때 걔네들이 했던 말이 늘 그랬다. 한국에 갈 거라는 생각보다는 사람들을 또 두 명과 한 명으로 나누는구나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 혼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때문에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두려워서 울고 있었는데, 지영이가 세 명이 다 같이 가면 안 되느냐고 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기가 남겠다고 했다. 걔네들이 뭘 쓰라고 메모지를 주더니 ‘마더 파더 브러더’하더라. 지영이가 안 쓰려고 했다. 왜 쓰라고 하는지 몰랐다. 편히 있다는 식으로 쓰라고 해서. 어머니한테 전해주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원해서 쓴건 아니니까"
(김지나)"사람이 찢어질 때마다 이틀 후면 한국 간다는 말을 버릇처럼 했기 때문에 저희 3명은 석방을 믿을 수 없었다. 이동할 때마다 한국을 간다고 했다. 이틀 후면 한국 간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한명씩 찢어놓은 줄 알았다. 영어가 아니라 바디랭귀지로 했다. 이지영씨 혼자 두기로 한 상태에서 너무 걱정이 돼서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세 명과 합류할 것이다. 우리가 합류되는 걸 보고 가겠다. 그건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 지영 언니가 와서 물어보니, 출발할 때 간다고 했는데 하루 더 머물고 4명 있는(임현주, 고세훈 팀)으로 합류됐더라"
1주일 뒤에 이지영씨의 메모를 공개한 이유와 어머니만 계신 이지영씨가 `부모님께`라고 적은 이유는
"지영 언니 메모를 전해주면 어머니 마음만 아프니까 하지말라는 말도 있었고, 어머니가 부산에 있다고 하더라. 언제 올라오실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가 올라오셨다고 해서 글씨라도 보면 반가워하지 않을까 전해 드렸다. `부모님께`라고 한건 처음엔 2~3줄만 썼다가 탈레반이 왜 이거밖에 안되느냐. 마더 파더 그러니까 얼떨결에 쓴 것 같다"
나머지 인질들의 석방 합의 소식을 언제 들었고 당시 심경은?
"수도병원에 있을 때 뉴스로 듣고 알았다. 19명 모두 나온다는 소식에 굉장히 기뻤다. 하지만 성민이, 목사님 생각 때문에 펑펑 울었다"
서명화씨가 바지에 피랍일지를 썼는데 어떤 상황에서 일지를 작성했나. 입고 있었던 바지인가 아니면 갖고 있던 다른 바지인가
"어떤 상황에서 썼는 지는 안 물어봤다. 명화가 입고 있던 바지는 맞다. 저희와 헤어질 때까지 입고 있던 바지는 같았다. 5일 정도 같이 있었다. 종이나 이런걸 뺏기지 않았다. 그때까진. 12명으로 나뉜 다음에 책이나 이런걸 뺏겼다. 그쪽 팀도 11명으로 나뉜 다음에 뺏겼을 것이다. 나는 빈 노트를 뺐기지 않아서 거기에 기록했다. 숫자가 써 있는 걸 보면 다 가져가더라. 기록할 때도 숫자도 한국말로 풀어 쓰거나, 일기처럼 안 보이게 하기 위해 서술형으로 썼다. 제가 갖고는 있다. 인질생활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 밖에 못하니까 적어두고 싶었다. 어떻게 이동했는지 모르고, 달력도 만들어야 했고. 풀려날 거라는 확신을 했다"
김지나씨가 쓴 일지 내용 공개할 수 있나
"개인적으로 편지를 쓴 게 있어서 좀 그렇다. 개인적인 부분만 빼고 공개하는 것은 생각해보겠다"
고 심성민 씨랑 함께 있었는데 심 씨가 살해된 것을 전혀 몰랐나
"몰랐다. 낮에는 대부분 실내에 있는데 그시간에는 산책을 해도 좋다고 했서 나갔다. 네 명이서 밖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성민이만 오라고 하더라. 남자들이 쓰고 있는 차도르를 씌웠다. 어디갔냐고 하니까 한국 갔다고 하더라"
앞으로도 이런 선교활동 갈 것 같나
"당분간은 못 갈 것 같다. 지금 구체적으로 그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이번 사태가 인간적인 실수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인가
".....(침묵)....."
(한참뒤에)"동료들이 죽었고, 그게 그렇게 빨리 정리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 뜻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침묵)....."
(한참뒤에)"그렇게 거창한 것까지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이번 단기 선교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침묵)....."
이번 아프간 방문이 봉사인가 선교인가
".....(침묵)....."
기자회견에 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시고, 정부에서 많은 어려움 있었다고 알고 있다.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려 드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죄송하다고 하는데 어떤 점들이 죄송한가
"저희 때문에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시고 정부에서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큰 것은 일단 저희때문에 가족들, 교회, 국민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건 자체에 대해 평가할 정도로 여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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