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4단체가 8ㆍ15 광복절을 맞아 78명의 기업인 사면을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이번 사면 대상 가운데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사면 여부다. 김 전 회장은 20조원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253억원을 선고받은 뒤 상고를 포기해 2006년 11월 형이 확정됐다. 2007년 말 참여정부 임기 말에 특별사면 받았지만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돼 그동안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왔다. 김 전 회장의 사면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그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다. <선데이저널> 취재진이 최근 한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사면을 받기 위해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을 통해 은밀한 제안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는 자신의 사면 대가로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여러 자료들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현재 김 전 회장의 사면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고심하고 있다. 특히 김 전 회장의 은밀한 제안을 수락할 경우, 차기 대선에서 이 자료를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사면을 둘러싼 ‘빅딜설’을 <선데이저널>이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지난 3월 22일 저녁. 서울 남산 힐튼호텔에 나타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우그룹 창립 43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500여명의 옛 대우맨들도 모습을 타나냈다. 비록 현재 대우그룹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옛날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대우맨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1년 전 같은 자리에서 퀭하게 마른 모습에 거동조차 힘들어했던 김 전 회장은 이날 건강을 상당 부분 회복한 모습이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김 전 회장은 테이블을 옮겨다니며 인사도 하고 갑자기 단상 위로 올라가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자신감 넘치는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직 그를 믿고 따르는 대우인회 회원들은 뿌듯해했다. 건재함을 과시한 김우중 전 회장과 옛 대우맨들은 다시 대우의 깃발을 세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행사를 주최한 대우인회와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대우그룹의 명예회복’에 맞췄다. 지난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47차례 총회를 거친 세계경영연구회 역시 10개 분과위원회 가운데 명예회복분과위원회를 가장 핵심 축으로 하고 있다.
김우중 재기설 실체
그 동안 김 전 회장 의 재기설은 본국에서 꾸준히 재기되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재기설의 실체가 뚜렷이 드러나지도 않았다. 다만 재기의 무대가 한국보다는 베트남,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옛 대우그룹의 네트워크가 강했던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했다. 실제로 그가 주로 머무는 지역이나 숙소가 대우인터내셔널을 비롯해 옛 대우의 주력 계열사들의 해외지사가 위치한 지역에서 자주 목격돼 이들 기업들을 위한 고문역을 맡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가능케 하고 있다. 특히 최근까지 신병 치료차 머물렀던 베트남은 김 회장의 새로운 사업 무대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은 그가 현지에 건립한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에 기거했던 데다 그간 베트남에서 쌓아온 네트워크 및 고위층 인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김 전 회장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하노이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입안했고, 2005년 귀국 이전 베트남 국토개발 사업을 자문할 정도로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을 기점으로 삼아 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인터내셔널이 획득한 미얀마 가스전도 김 전 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기의 걸림돌
그러나 틈틈이 재기를 노리고 있는 김 전 회장에게 걸림돌이 있다. 바로 18조에 이르는 추징금이다. 이 거액의 추징금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김 전 회장의 재기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대우그룹 출신의 한 인사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제안한 ‘대우 재건 프로젝트’에서 추산한 자금 규모는 총 33조원이다. 이 돈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및 사장단에 대한 정부의 추징액 23조원과 그룹 재건 소요 자금 5조원, 일반 투자 약 3000억원을 유치 받아 2년 반으로 예정한 재건 활동이 성공할 경우 10배의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3조원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만약 이 금액의 절반에 달하는 추징금을 뺀다면 대우그룹의 부활을 시간문제일 수 있다. 때문에 김 전 회장의 사면은 석탄일, 8·15 광복절, 성탄절 등 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우그룹 부도에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 않은 점 등 여러 이유로 실제 사면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 전 회장의 사면과 관련한 보다 구체적이 얘기들이 청와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재계도 김 전 회장의 사면에 적극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기업인 78명에 대한 사면을 청와대에 공동으로 건의한 것.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22일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제단체들의 의견을 취합해 총 78명의 사면 요청 대상자 명단을 경제단체 공동명의로 지난주에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사면요청 대상자 명단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고문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본지 취재진도 우연찮은 기회에 김 전 회장의 사면과 관련한 얘기를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김 전 회장 측은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을 통해 정권 측에 두 개의 은밀한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는 만약 자신을 사면해줄 경우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되어 참여정부까지 이어지는 대형 비리에 대해 보다 자세한 자료를 내어준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김 전 회장은 지난 1999년 대우그룹 퇴출 저지 정관계 로비 의혹을 비롯해 각종 대형 이슈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단 한 번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입을 연 적이 없다. 다만 그가 무기사업을 비롯해 각종 이권 사업과 관련해 정부 측에 상당 규모의 로비를 했을 추측만 있었다. 특히 김우중 전 회장, 무기중개상 조풍언,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은 국민의 정부 도덕성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고 정가 관계자들이 예상할 뿐이다. 또 다른 은밀한 제안은 역시 지난 10년 정권 간 정관계 유력인사들이 해외에 숨겨놓은 비자금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정관계 인사들의 해외비자금 추적 역시 현 정권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어서 이 역시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보여준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리헤텐슈타인, 스위스 등 이른바 조세피난처와의 공조를 통해서 유력인사들의 비자금을 추적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루트를 자세히 알고 있는 김 전 회장이 입을 열 경우 역시 적지 않은 폭발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청와대에서는 김 전 회장의 사면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와대가 김우중 X 파일을 입수할 경우 이는 2012년 대선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이러한 빅딜이 실제 사면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청와대는 아직까지 국민 여론이 좋지 못하다는 점을 의식, 김 전 회장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후 관련 내용을 언론에 슬쩍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여론이 호전적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사면에 대해 상당히 심사숙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근까지 김 전 회장의 사면을 주도했던 정권 실세가 얼마 전 터진 영포게이트 파문으로 인해 ‘아웃’됐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가 아웃된 후로 청와대 내에서 사면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김 전 회장의 사면을 결정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는 편이다.
만약 김우중 전 회장이 전 정권 비리에 대해 입을 연다면 그 첫 번 째 타깃은 조풍언 게이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60년대부터 군납사업과 무기 중개로 많은 재산을 모아온 조풍언 씨는 지난 97년 대우그룹이 부도난 후 2년 뒤인 99년 대우그룹 핵심계열사 중 하나였던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 258만주(전체 주식의 71.59%)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홍콩 소재 투자회사 ‘홍콩 KMC’의 명의로 매입했다. 매입 가격은 주당 1만 885원이었고 전체 매입가격은 281억원(2430만 달러)이었다. 당시 조 씨가 매입한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가격은 대우그룹이 어려워지면서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 일부를 계열사 직원들에게 우선 매각했을 때의 가격 1만5000원보다도 30% 이상 낮은 가격이었다. 문제는 조 씨가 주식을 매입했던 자금이 김 전 회장의 자금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김 전 회장은 조 씨가 대우정보시스템을 매각하기 직전인 같은 해 6월 (주)대우 미주법인의 자금 4,430만불(원화 526억원)을 KMC의 계좌로 송금했고 검찰 수사결과 조 씨는 이 돈을 이용하여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을 사들인 것. 조 씨는 김 전 회장으로 받은 돈을 국내로 송금해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산 후 나머지 2,000만불로 (주)대우통신 TDX(전자교환기)사업 인수 계약금 사용했다. 때문에 당시 조 씨는 명의만 김 전 회장에게 빌려줬을 뿐 실제로는 김 전 회장이 회사를 직접 인수하기 위한 주식거래였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향후 검찰 수사에서 이 돈은 조 씨에게 빌린 돈을 변제한 것일 뿐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조 씨는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사들인 지 8개월 만에 95만 주를 주당 3만 5,407원에 처분하고, 처분한 돈 291억원을 홍콩으로 반출했다. 검찰은 지난 2005년 김 전 회장이 해외도피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 그를 압송해 횡령 및 사기 대출 혐의 등을 수사했다. 수사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은 조풍언 씨에게 4430만불(526억원)을 송금한 경위에 대해 “지난 96년 4월 조 씨의 중개로 외국인의 돈 7500만불을 BFC을 통해 관리하다가 조 씨를 통해 4430만불을 반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김 전 회장이 이 돈을 빚을 변제하는데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우중 전 회장과 김대중 전 정권 사이에서 조풍언 씨가 가교 역할을 해 대우그룹 회생을 위한 로비자금으로 들어갔을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우 임직원들의 진술 및 관련 회계자료 등에 의하면, 조 씨에게 제공한 4430만불은 BFC에 입금된 7500만불과 무관한 돈으로 확인되어 김우중이 이 돈을 임의 사용하여 횡령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당시 수사에서 조풍언 씨에 송금한 526억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사실상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내사 중지 이유에 대해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조 씨를 조사할 필요가 있으나 그가 현재 해외 체류 중이므로 일단 내사중지한 후, 미국과 형사사법공조 등을 통해 조 씨를 조사하는 등 계속 진상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검찰은 조 씨에게 송금된 526억원이 누구의 돈인지 밝히지 못하고 김 전 회장이 임의로 횡령했다는 결론만 낸 채 수사를 종결한 것이다. 횡령을 했다면 어떤 이유로 했으며 그 돈이 현재 어떻게 됐는지 등의 알맹이는 쏙 빼뜨린 셈이다. 그리고 김 전 회장이 사면된 지금 시점까지도 526억의 행방은 밝혀지고 있지 않다. 결국 ‘조풍언 게이트’의 핵심은 ‘돈의 실제 주인과 사용처는 무엇이며 페이퍼 컴퍼니를 동원한 자금세탁‘인 것이다. 김우중 씨가 측근들에게 “나도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모른다”고 흘린 얘기를 감안하면 ‘배달 사고’일 가능성과 한 동안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나왔던 김 전 대통령으로의 유입설 등에 무게가 실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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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째 본국 추징금 미납자 명단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인물들은 대우그룹 관련 인물들이다. 특히 1위에서 3위까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임직원 다섯 명이 차지했다. 김 전 회장과 대우 임직원들은 2002년 11월과 2005년 4월에 재산 국외 도피 혐의로 각각 21조2천4백92억원과 1조7천8백65억원을 선고받았다. 전체 추징금 액수는 23조3백58억원이다. 추징금 총액의 90%가 넘지만, 지금까지 추징된 금액은 0.1%도 되지 않는 3억2천여 만원에 불과하다. 김 전 회장의 부실 경영은 국민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정부는 대우그룹을 살리려고 약 30조원이라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결국 회사가 무너졌다. 이로 인해 30조원의 혈세 대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지금까지 회수된 공적자금은 투입 자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약 8조원에 불과하다. 대우그룹의 부도로 인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소액 주주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김 전 회장은 “사업상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만 하고 있다. 현재 김 전 회장의 직계 가족들은 기업의 대주주이거나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다.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씨는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의 관장을 맡고 있으며, 옛 대우개발의 후신인 베스트리드 리미티드의 최대 주주이다. 정씨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 건물 부지를 매입하는 등 자금 동원력을 과시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차남인 김선협씨는 경기도 포천의 아도니스 골프장 대표를 맡고 있다. 김 전 회장도 여전히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다. 겉으로만 ‘빈털터리 신세’일 뿐이다. 김 전 회장은 또 하룻밤 숙박료가 1천100만원 정도인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 23층 팬트하우스를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8년 5월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CDL호텔코리아가 “호텔 23층의 9백3㎡(약 2백73평)짜리 펜트하우스를 비워달라”라며 김 전 회장을 상대로 건물 명도 소송을 내면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1999년쯤부터 25년간 장기 임대했고, 임대 금액은 하룻밤에 3백28원이다. 적은 돈을 내고 특급 호텔 팬트하우스를 이용하는 특혜를 누렸던 것이다. 1심에서는 CDL측이 승소했으나, 2심에서는 원고 패소 결정이 내려져 김 전 회장은 팬트하우스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