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방

거창함으로 시작해서 늘 피곤함으로 끝맺는 사랑...

이경희330 2010. 12. 16. 01:34

오래된 연인들, 오래된 부부사이에 흔히 쓰는 말-

'회사일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제발 잠 좀 자자)...'

'요즘 집안일 때문에 나 너무 피곤해(그냥 좀 디비 자라 이 짐승아)...'

'너 많이 피곤해 보인다. 좀 쉬어야 겠다.(너 좀 안보면 안 되겠냐? )...
 

그래, 정말 그렇겠지.
남은 인생 정말 피곤해지지 않으려면 피곤할 만큼 일해야 할 것이고,
여기저기 스트레스 주는 일과 사람들로 인해 골머리도 앓아야 할 것이다.

회사를 다니든, 사업을 하든, 가사를 돌보든,
하다못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들에게조차
졸라리 피곤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근데, 시작하는 연인들, 시작하는 부부들은
왜 이 '피곤'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걸까?

마음씨 좋은 조물주께서 처음 인간을 만들 때부터
시작하는 남녀는 피곤하지 않도록 무슨 특별한 장치를 해 놓으신 걸까?
'내 귀에 도청장치' 처럼.

아니면,
처음엔 괜찮았는데, 함께 한 시간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더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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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할 때,
빡센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시 졸고 있을 때,
며칠 밤을 새우고 난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 들려할 때,

아마 많은 남자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평소에 그렇게 말 안 듣는 곧휴가 분기탱천해서 황당했었던.
그러면서 아마, 이런 생각도-

'아니, 이 쉐이는 정작 하려고 할 땐 죽은 듯이 있다가, 피곤해 죽겠는데
왜 고갤 쳐드는 것이야, 뭘 어쩌라고...'

하면서 그냥 열만 받다 만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에잇, 기왕에 슨 거 아까우니 딸이나 한번 ,,,이란 생각으로
크리넥스 꽤나 축냈을 것이리라.

도대체, 피곤해서 죽겠는데 곧휴는 왜 고개를 쳐드는 것일까?
(물론, 매번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썰은 없지만,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개똥논리를 뭉쳐보니까, 그 원인은 바로

'본능'

즉,
졸라 피곤하다는 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신호이고,,,
그건 잘못하면 다시는 떡을 못 치는 상황, 즉 모든 생물들에게 있어
본능 중의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종족번식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따라서 위기의식을 느낀 뇌가 곧휴에게-

'얌마, 잘 때 자더라도(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하고 하자고 그래 봐'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잘 생각해 봐,,, 안하고 싶냐?'

라며 꼬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시나 우리의 몸은 알수록 신비하고 오묘하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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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만날 시간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피곤해서 떡을 못 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래서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면서도(그건 그냥 안다)
그냥 믿어주는 척 하며 돌아눕는 사람의 뒷모습은 슬프다.

그 말은,

'너는 더 이상 꼴리지가 않아.' 라는 얘기이며,
'네가 더 이상 여자로(남자로)느껴지지가 않아' 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므로.


사랑의 처음은 늘 거창하다.

밤새 잠 못 자고 통화를 해도 졸리지가 않고,
밤새 그 짓으로 날밤을 까서, 담날 아침 쌍코피를 쏟더라도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다.
몸의 피로함을 마음에서 나오는 엔돌핀이 모두 가리고 있어,
멍청한 뇌가 몸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함이리라.


사랑의 끝은 늘 피곤하다.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피곤하고,
만나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술 한 잔 하는 것도 피곤하다.
만지고, 빨고, 사랑하는 일도 다 귀찮고 피곤하다.
마음에선 엔돌핀 대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이를 눈치 챈 멍청한 뇌는 짜증과 신경질로 피곤함을 호소한다.


거창함으로 시작해서 늘 피곤함으로 끝맺는 사랑-

그 피곤함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이별의 아픔을
그렇게나 모질게 경험했으면서도,
늘 사랑받지 못해 안달하고, 사랑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란...

오늘,
나의 사랑은 얼마나 피곤하십니까?